5월의 달력은 기념일과 붉은색 휴일이 많다. 어린이날, 어버이날...그리고 올해는 대통령 선거일까지. 그러나 이면에는 치러야할 수많은 의례가 있어 하루하루 바쁜 일상과 얇은 지갑에 치여 근심이 어른거린다. 환호성도 잠시, 오월은 의무로 충만한 달이어서, 꽃 피고 신록이 물드는 오월임에도 그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은 최소한 어린이날을 통과한 어른들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어느 생물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효”란 생명의 본연을 거스르는 것이라, 강제하고 의무로 부과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생명체는 어디까지나 종족번식과 보존을 위하여 “내리 사랑”이 자연스러운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린이날은 어떠한가? 이 또한 영국 산업혁명시대에 어린 아이들이 공장에서 중노동에 시달렸던 사례를 굳이 기억하지 않더라도 어려운 환경에 놓인 어린이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권을 확보하고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충분히 긍정적이다. 극심한 악조건 하에서는 “내리 사랑”마저 펼칠 수 없을 터이고 이러한 어린이들에게는 국가나 사회가 대신 부족하게나마 내리사랑을 펼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4학년 담임이었던 여선생님. 교대를 갓 졸업하고 첫 담임이 우리 반이었다. 주말만 되면 우리들은 선생님 하숙집인 고개 넘어 친구집 사랑채로 갔고 선생님 방에서 배 깔고 엎드려 몽당연필로 숙제하고, 선생님이 해주는 석유곤로 밥도 참새주둥이처럼 입벌려 맛있게 먹었다. 그 밥에서는 우리가 항시 먹던, 나무 때서 하는 가마솥 밥과는 다른 희미한 도회지 냄새가 났고 아직도 그 냄새가 선연하다. 살아가면서 결코 선생님을 잊은 적이 없고 만나보고 싶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지난달 별안간 옛 친구들로부터 선생님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43년만의 만남이었다. 기억에 선명했던 21세의 아리따웠던 선생님 대신 60대 후반의 낯선 분이 계셨고 우리는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음성, 그 웃음소리는 그대로였다. 최소한 10년에 한두차례만 만났어도 이러한 단절감은 없었을 터인데, 무엇에 쫓겨 그리 바삐 살았던가. 그나마 선생님이 건강하셔서 앞으로 볼 날이 많으리라는 것이 작은 위안이었다.

오월의 그 분주한 기념일이나 휴일들이 강제와 의무만이긴 했을까. 그 행복했던 순간을 감사하고 기억하고 유지시키는 선물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선거일의 투표도 의무이자 동시에 선물이다. 이날만큼은 최소한 내가 국가의 최고의사결정권자라는 자부심에 취해도 된다.

이러한 삶의 양면성은 법률에도 마찬가지로 녹아있다. 어떠한 관계의 법망도 잘 살펴보면 일방적인 의무나 권리는 없다. 그저 이면에 가려서 또는 시간의 갭(gap)으로 인하여 안보이고 인식되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의무와 권리는 동전의 앞면처럼 붙어있고 가끔 권리는 행복, 선물로 대체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양쪽의 무게는 끝내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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