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하지만,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은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불필요한 전쟁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전직 검사 빈센트 불리오시는 『대통령을 기소하다』에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9·11테러와 이라크 사이에 연관이 없음에도 이라크 전쟁을 지시해 인명피해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이 주장을 『자살 폭탄 테러』의 저자 탈랄 아사드가 본다면 코웃음칠 것이다. 탈랄 아사드는 전쟁은 과도함을 기준으로 규탄 받지만 테러는 그 자체로 비판받는다고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전쟁법을 준수한 전쟁은 옳은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테러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정되지 않는다. 많은 지식인들은 끊임없이 테러와 전쟁의 차이를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이들은 모든 대안을 고려한 후 국제법에 따라 치러지는 전쟁과 달리 테러리스트는 별다른 고민 없이 테러를 일으킨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최후 수단으로 치러지는 전쟁만이 정당하다는 말은 곧 모든 전쟁이 정당하지 않다는 말과 동일하다. 외교문서를 다시 전달한다든지 UN 결의안을 다시 마련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법도 제 역할을 못한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된 사람들이 모두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이라는 점은 국제법은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더군다나 이라크 전쟁에서 나타나듯 강대국은 자국의 이익에 반할 경우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다. 탈랄 아사드는 사람들이 전쟁과 달리 테러만을 무조건 반대하는 이유는 테러에 ‘경악’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살 폭탄 테러는 경악이 극대화되는 방식의 테러다.

서구의 사람들이 자살 폭탄 테러에 경악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불시에 일상이 파괴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서구 사람에 의해 서구 사람이 죽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근대적 주체를 유지하는 긴장’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근대적 주체인 개인은 자유와 공동체의 규범 사이에서 긴장한다. 자살 폭탄 테러는 자유가 무제한적으로 추구될 수 있다는 믿음이 환상에 불구하다는 사실을 폭력적으로 드러낸다. 개인과 공동체가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은 허구라는 것이다. 하지만 서구 사람들은 자살 폭탄 테러에 경악하면서도 이를 자유와 연결시키지 않는다. 자살 폭탄 테러를 전근대의 산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살 폭탄 테러범들을 세속과 종교를 분리하지 못한 전근대적 인물로 여긴다. 하지만 서구에서도 세속과 종교는 명백히 구분되지 않는다. 많은 사회제도는 종교로부터 발전했으며 미국의 대통령은 취임선서 때 성경에 손을 얹는다. 자살 폭탄 테러는 오히려 정치적이다. 정치학자 로버트 페이프에 따르면 테러범은 자기 나라의 땅이라고 생각하는 영토에 주둔한 군대를 철수시키기 위해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킨다.

『자살 폭탄 테러』를 읽으며 사람들은 저자가 테러를 옹호하려 하는가라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책의 골자는 테러와 전쟁을 구분하며 스스로가 근대적이라며 합리화하는 서구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조롱이다. 이 책이 말하듯 폭력에 대한 거부는 ‘특정한 폭력’에 대한 거부로만 나타나기 십상이다. 이때 특정한 폭력의 주체는 항상 약자다.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백혈병 문제와 여성혐오 등 사회적 강자의 이해가 초래했던 폭력에는 침묵했으면서도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끌었던 작년의 시위를 줄곧 비폭력 시위라 강조하는 일부 언론과 지식인들이 불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의 폭력과 너의 폭력은 과연 다른가.


최진렬 기자 fufwlschl@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