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베지닥터 황성수 의사

▲ 베지닥터의 황성수(67) 씨
종교, 건강, 윤리 등을 이유로 국내 채식주의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개선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베지닥터’는 채식주의자 의사들의 모임으로 채식에 대한 의학적 근거를 확보하고 이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1991년부터 26년째 채식을 하고 있는 베지닥터 소속 의사 황성수(67) 씨를 만나 국내 채식주의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는 채식이라는 용어가 채소 외의 식물성 식품을 포함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식물식으로 표기할 것을 요구했다.

식물식을 한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동물권이나 공장식 축산업과 같은 사회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 지구상에서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것들을 파괴하며 살고 있다. 파괴를 하게 되면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 없다.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동물은 물론이고 공기를 죽이고 땅을 죽이고 물을 죽이고 있다. 그건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다. 죽이는 나를 살리는 나로 바꿔야 한다. 그것은 음식을 바꾸는 것으로 실현 가능하다.

식물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주변의 시선이 옛날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됐으나 지금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 우리나라는 통일적이고 획일적인 문화가 강해 ‘다름’을 긍정해주지 않는다. 먹는 음식이 다르면 사람 간의 관계가 단절된다. 사람 관계에서는 ‘식’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식구’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가족끼리의 유대감을 만드는 것이 음식인데 이것이 다르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식물식주의자로 살아가는 데 불편한 점은 무엇인가
일단 갈 만한 식당이 거의 없다. 식물식 식당을 가려면 멀리 이동해야 하고 그 중에서도 좋은 질의 식물식을 할 수 있는 곳은 매우 드물다. 요 근래 파악해본 바로는 아주 좋은 질의 식물식 식당은 전국에 서른 개가 채 안 된다. 그럴 정도로 한국에는 식물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다. 그리고 식물식을 제공하는 단체 급식이 거의 없다. 학교·군대·병원·교도소·고속도로 휴게소 모두 식물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식물식을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지금은 사회가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이 변화는 굉장히 느리다. 서양에서는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식물식주의자가 조금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나가고 있다.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안타깝다.

이런 어려움을 직접 겪어본 적이 있나
당연히 있다. 25년 동안 근무했던 병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식사를 했다. 이런 회식자리나 동창회 같은 친목모임을 가면 항상 고기 판을 벌인다. 그런 자리에서는 먹을 게 없다. 그 당시에는 식물식 식당도 없었기 때문에 나 같은 식물식주의자가 먹을 만한 음식이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돈은 똑같이 내고 밥 한 공기에다가 채소 몇 가지밖에 먹지 못했다.

식물식주의자를 위해 개선해야 할 환경이 있을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한다. 국가에서 강제적으로 육식을 금지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다만, 식물식주의자의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나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을 때 먹을 수 있는 급식 메뉴 혹은 반찬이 없다면 그건 강제금식이나 마찬가지다. 포르투갈 정부는 얼마 전 단체급식에 반드시 완전 식물식 메뉴를 포함시키도록 권고를 내렸다. 우리나라도 빨리 개선돼야 한다.
또 대부분의 식당에서 음식의 성분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도 불편하다. 열을 가하면 표가 잘 나지 않기 때문에 육류를 썼는지 아닌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어떤 요리사들은 멸치나 계란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며 음식을 내 주고는 하는데 이런 점은 세심히 고려해줬으면 한다. 식당에서 모든 음식에 상세한 성분표기를 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식물식주의자가 먹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표시해 두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 비건[Vegan](완전 채식)이 먹을 수 있다는 의미로 ‘V’자만 붙여놔도 좋을 것 같다.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다. 밥을 안 먹고는 살 수 없지 않나. 그런데 단순히 먹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섭취하는 식품이 어떻게 밥상까지 올라오는지도 알아야만 한다. 식품을 생산·유통하는 방식은 토지, 물, 공기와 같은 지구촌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이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자기 삶과 가치관이 변화할 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적 문제들 역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리_ 이세희 수습기자 ttttt72@uos.ac.kr
사진_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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