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길었던 해외취재의 마지막 행선지는 도쿄 ‘아키하바라’다. 소위 ‘덕후’의 성지라고 불리는 아키하바라는 일본 서브컬처의 중심지다.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가볼 것을 추천한다.

아키하바라역에서 내린 기자를 반기고 있는 것은 수많은 애니메이션, 게임 포스터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며 애니메이션 주제가들은 기자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흥이 넘치는 와중에 기자가 향한 곳은 일본 최대의 애니메이션 숍 ‘애니메이트’다. 애니메이트는 일본 애니메이션 상품을 판매하는 덕후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애니메이트에서 취급하는 상품은 다양하다. 2층에서는 만화책, 3층에서는 남성 타겟의 상품을, 4층에서는 여성 타겟의 상품을 팔고 있다.

‘見たことのない夢の軌道追い掛けて~(본적 없는 꿈의 궤도를 쫓아가~)’ 3층으로 올라온 기자의 발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흥겨운 노래였다. 스크린에서는 아홉 명의 소녀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 애니메이션의 이름은 ‘러브라이브! 선샤인!!’ 일본은 현재 가상아이돌 전성기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러브라이브!’를 비롯해 ‘아이돌 마스터’, 초등학교 여학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카츠’, 남자 가상아이돌 애니메이션 ‘츠키우타’, ‘노래하는 왕자님’까지 2.5D 가상아이돌(이하 가상아이돌)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다. 전성기임을 입증하듯 애니메이트의 주력 상품들은 가상아이돌 상품이다. 애니메이트는 한국인 관광객들도 자주 찾아가는 곳으로, 감탄과 신기함을 금치 못하는 한국말들이 간간이 들린다. 스크린을 보며 서투른 일본어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해외취재 한 달 전 열린 내한 콘서트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는 팬들이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러브라이브! 선샤인!!’ 내한 콘서트가 작년 12월 10일 개최된 바 있다. 

“제가 마리라고 하면 ‘샤이니’라고 외쳐주세요! 마리~~.” “샤이니!!” 콘서트 장내는 한국 팬들이 내지르는 함성의 열기로 후끈했다. 30초 만에 매진된 콘서트 티켓을 어렵사리 구한 기자의 노력이 보상을 받는 순간이었다. 가상아이돌의 인기는 바로 옆나라인 한국으로도 이어진다. 2015년 개봉한 극장판 ‘러브라이브! 더 스쿨아이돌 무비’는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처럼 가상아이돌은 한일 양국에서 뜨겁다.

▲ 애니메이트 4층 여성 타겟 애니메이션 코너에 진열된 가상아이돌 ‘츠키우타’ 굿즈
현재 우리나라와 일본은 모두 아이돌 전성기로 남녀노소 모두 아이돌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의 초등학생 장래희망 1순위는 연예인이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란도셀 제작 업체로 유명한 기업 ‘크라레’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여자 초등학생 장래희망 2순위도 연예인이었다. 평범한 여학생이 우연하게 아이돌이 되어 가요계의 정상을 차지하는 판타지를 그린 가상아이돌 애니메이션들은 소녀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엠스타’라는 이름으로 방영 중인 ‘아이카츠’는 한일 양국의 아동들에게 인기를 구가중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평론가 후츠이 료타 씨는 트위터를 통해 “아이카츠는 아동들에게 동경의 대상”이라며 “귀여운 옷을 입은 아이돌과 일체화하고 싶다는 욕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는 것은 ‘러브라이브!’, ‘아이돌마스터’로 대표되는 비교적 연령대가 높은 가상아이돌이다. 이 가상아이돌들은 보다 노골적으로 환상을 판다. 일본의 가상아이돌 콘텐츠에서 서사가 두드러지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 오히려 매화를 각각의 캐릭터를 소개하고 매력을 강조하는 데 소비한다. 밝은 분위기에서 큰 갈등 없이 이어지는 이들 콘텐츠는 팬들에게 판타지만을 선사하는 데 집중한다. 또한 이들 가상아이돌 콘텐츠는 소비자의 욕망을 팔기도 한다. ‘러브라이브!’에는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카메라의 구도는 노골적인 남성의 시선을 대변한다. 아이돌마스터는 원작부터 남성 매니저의 시각으로 플레이하는 아이돌 양성 게임이다. 이는 가상남성아이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성 팬들은 ‘츠키우타’, ‘노래하는 왕자님’ 등의 가상남성아이돌 콘텐츠에 열광한다.   

가상아이돌의 한계는 애니메이션·영화 등의 가상공간에만 존재할 뿐, 실체로 만나고 즐길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가상아이돌 제작사는 ‘성우’를 활용한다. 현실에서 성우들이 가상아이돌을 대신해 이벤트 무대에 서거나 콘서트를 한다. 가상아이돌 팬들은 성우들에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대입해 열광한다. 일본에서 성우는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더불어 그들은 자신이 출연하는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를 부르며 가수로서 활동하기도 한다. 현실공간에서는 성우를 통해, 가상공간에서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통해 가상아이돌을 소비하는 것이다.

▲ 아키하바라의 어느 건물 벽에 붙어 있는 가상아이돌 ‘러브라이브!의 포스터
현실아이돌과 크게 다르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가상아이돌의 인기를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현실아이돌과 가상아이돌은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으며 둘의 소비 양상은 큰 차이가 없다. 에도가와대학교 매스커뮤니케이션학과 사이죠 노보루 교수는 ‘아이돌이 살아 숨쉬는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의 이중구조 - 「캐릭터」와 「우상」의 합치와 괴리’를 통해 아이돌 콘텐츠의 인기 요인에 대해 설명한다. 아이돌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의 캐릭터를 소비한다. 아이돌의 실제 성격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기획사에 의해 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캐릭터를 아이돌에게 부여한다. 실제로 한 아이돌은 자신의 성격과 달리 외모에서 풍기는 착한 이미지 때문에 ‘착한남’ 캐릭터를 연기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동시에 아이돌은 우상으로서의 상징성을 가진다. 팬들은 판타지를 가지고 그들을 예찬한다. 때문에 팬들은 아이돌의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들의 선행을 따라하려한다. 실제로 한 아이돌은 기부 캠페인을 벌여 팬들과 함께 기부를 하기도 했다. 결국 현실아이돌도 가상의 이미지로서 소비되는 것이다.

최근 ‘혼모노’라는 단어를 통해 ‘오타쿠’ 문화에 반감을 드러내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더군다나 극성적인 러브라이브 팬들은 ‘럽폭도’라는 단어로 조롱당하기도 한다. 가상아이돌은 나름의 매력을 가진 콘텐츠임은 분명하다. 가상아이돌 문화를 존중하고 관심을 가져보자.


글·사진_ 국승인 기자 qkznlqjffp4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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