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의 변

서울시립대신문 제58대 편집국장 최진렬
 
눈알만 굴리면 되기에 게으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글 읽기입니다. 누구보다 게으르다고 자부하기에, 저는 책도 누워서 읽습니다. 정기자 시절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던 중 한 구절에서 눈이 멈췄습니다. ‘나는 글로 쓰인 모든 것들 가운데서 오로지 피로 쓰인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인 것을 알게 되리라. 타인의 피를 이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빈둥거리며 책을 읽는 자들을 증오한다.’ 즉시 일어나 앉았습니다. 두 가지 부끄러움이 찾아왔습니다. 상대방의 글을 피로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과 피로 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서울시립대학교 인근 동네는 낡은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있어 부유함과 거리가 멉니다. 따닥따닥 붙어있기 때문일까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면 간간이 동네 주민들의 삶이 눈에 들어옵니다. 비좁은 원룸에서 4명이 사는 가정도 있었고 새벽이라 부르기도 이른 시간에 종이를 수거해가는 노인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은 매순간을 치열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서울시립대신문의 기자로 보낸 제 삶은 어땠는지 생각해봅니다. 제 글자는 피로 써졌을까요.

마감날 새벽. 멍하게 눈을 뜨고 마지막 기사 원고를 읽습니다. 며칠간 글자만 보다보니 종이 속 글자가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기자들이 피로 쓴 기사를 허투루 볼 수도 없습니다. 이제 저는 나가고 다른 기자들이 지면을 채울 것입니다. 부디 기자들이 피로 기사를 쓰고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달되길 바랍니다. 피가 순환할 때 생명이 유지되는 것처럼 피로 쓴 기사가 독자들에게 전달될 때 대학사회도 활력을 띨 거라 믿습니다.


서울시립대신문 제58대 편집국장 최진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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