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소녀상을 태우고 달린다는 151번 버스를 직접 타 보기 위해 을지로로 향하는 밤이었다. 차가운 비에 우산을 펼치려다, ‘뭐 어때…’라며 그저 걸음을 재촉했다. 얼마 뒤 정류장에 도착했다. 비는 있는 듯 없는 듯 계속해서 내렸고 어느새 옷은 비를 머금었다. 옷은 축축해졌지만 상쾌한 가을의 기운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아니, 나는 스며듦을 넘어 가을비에 완전히 젖어있었다.

창 너머로 소녀상이 앉아있던 버스가 도착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 소녀상 옆에 자리를 잡았다. 감동적이었다. 소녀상의 발에는 양말이 신겨져 있었고, 그 앞에는 꽃 한 다발이 놓여있었다. 소녀상을 위한 시민들의 선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소녀상의 눈빛은 너무 담담했다. 슬픔이 묻어나는 얼굴이었지만 도저히 소녀상이 울 수 없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잠깐, 간간히 내 귀에 들려오는 승객들의 차가운 냉소가 소녀상에게도 들리는 것이 아닐까. 또 그들의 냉소는 소녀상의 아픔이 아직 그들에게 스며들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사실 기자는 스며듦을 위해 글을 쓴다. 기자는 우리 주변의 일들을 찾고 정보를 모아 하나의 기사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하지만 단지 글 하나가 사람들을 마음 깊이 감동시키거나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게 만들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글이 좋은 것이라면 그들에게 조금씩 스며들 수 있음을 믿으며 언젠가는 그들이 기사에 젖어 우리가 전한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가 계속해서 주변의 일에 대해 스며듦을 전하고 받아들인다면, 언젠가 소녀상이 마음 놓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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