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참으로 가치있다. 바꿔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비싸다. 한국은 격동의 근현대를 겪으면서 민주주의를 점차 정착시키고 있다. 안정적으로 민주주의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 두가치가 조화롭게 섞여들어가야 한다. 참으로 쉬운 얘기이지만 쉽게 유지되는 나라는 없다. 쉽게 가질 수 없기에 더 소중하다. 특히나 소수자들에게 자유와 평등은 이제야 조금씩 그 권리를 찾아가고 있다. 이렇게 힘겹게 얻은 민주주의기에 신문을 만드는 행위는 분명 뜻깊고, 가슴 벅차야 한다. 자유와 평등 두 가치 모두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매 년 학생총회는 꾸역꾸역 성사율을 지키고 있다. 학부과의 학생총회는 정족수를 못채우기 십상이다. 20대의 투표율 저조는 학생자치를 넘어 사회적인 현상인 듯 하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얻어낸 것이 아닌 그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가치를 모르는 것일까 하는 추측과 민주주의 참여는 권리라는 명제 속에 20대는 투표철만 되면 혼났다. 대선, 총선, 지방투표, 총학생회 투표 등등에서 말이다. 이는 그저 학생자치에 대해 학생들이 관심이 없어서일까. 20대의 투표율은 항상 하위권에 머물렀다. 언론은 20대의 투표율을 항상 다그친다. 학교신문을 만드는 나조차도 기사의 말미에 투표를 독려하는 인터뷰를 실어보낸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떠오른다. “20대의 정치참여 부족,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마감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문득 너무 많은 짐이 20대에게 주어지진 않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스펙경쟁의 시대에 수많은 공모전과 영어공부와 학점에 시달리며 살아가면서 정치는 또 하나의 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연 내 생존보다 우선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너무 많은 짐 속에 살아가는 것이라면 비판이 아닌 짐을 덜어줄 장치가 필요하다.

물론 정치와 생활은 연계돼있다. 허나 삶 속의 정치와, 삶 자체를 살아나가는 것 사이의 무게차이는 분명히 있다. 투표를 통해 내년의 내 쌀독을 채우는 일과 당장 내일 먹을 쌀독을 채우는 것은 분명 선후관계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지금 청년을 응원하는 정책이 꾸준해지기를 기도한다. 정치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a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어느 대통령은 말했다. 그 최후의 보루중 하나가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민주주의는 비싸다. 그만큼의 가치를  민주주의를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을 청년들이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재윤 사회부장 ebuuni32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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