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수 기자 (이하 김): <라라랜드>는 지난 시간에 다뤘던 <위플래쉬>의 감독, 데이미언 셔젤의 작품이다. 한 감독의 작품에 대해 두 번 이야기 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인 미아와 세바스찬의 러브스토리라고 짧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에 빠지고 어떻게 헤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니까. 줄거리보다 중요한 건 감독이 또다시 음악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뮤지컬 영화다. 감독이 <위플래쉬>가 아니라 <라라랜드>를 먼저 만들고 싶어 했다는 흥미로운 뒷이야기부터 얘기해보자.

이주연 교수 (이하 이): 대부분의 감독들도 자주 겪는 상황이기도 하다. 만들고 싶은 작품이 후순위로 밀려나고 다른 작품을 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 말이다. <라라랜드>는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자 2009년 소개된 작품인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이하 <가이 앤 매들린>)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이 작품은 <라라랜드>처럼 뮤지컬 영화이기도 하면서 두 남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한 그의 단짝인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와 함께 작업한 작품이기도 하다. 흑백영화로 제작된 저예산 다큐멘터리 형식의 뮤지컬 영화인데 이 영화를 제작할 당시 사실상 감독은 고전 뮤지컬 영화에 푹 빠져 있었고 그 이유 때문에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소박한 제작비 규모였고 때문에 감독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이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 <라라랜드>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제작 가능성을 여러 곳에 알아 봤지만 실패했다.

김: <위플래쉬>의 성공이 없었다면 <라라랜드>도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데, <라라랜드>의 모든 콘셉트는 <가이 앤 매들린>에서 부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영화를 비교해보면 이미지와 수록곡 등 닮아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김: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위플래쉬>와 그 차기작인 <라라랜드> 모두 관객과 평단에서 엄청난 평가를 받으며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데이미언 셔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혹자는 천재가 나타났다고 하는데, ‘천재’라는 것보다 좋은 칭찬도 드물겠지만 데이미언 셔젤을 천재라고만 말하기에는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이: 데이미언 셔젤에게 ‘천재’ 감독이라는 수식어보다 더 어울리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덧붙이다면 ‘준비된 재능 있는 젊은 천재’ 감독 정도. 사실 32세에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아카데미에서 수상하는 것이 천재 감독이라는 것의 지표라고 볼 수 없지만 자국 영화협회에서 상을 수상하는 것은 영광이자 재능을 인정받는 과정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김: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로 화재였다. 특히 엠마 스톤의 연기가 돋보였다는 평이 많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미아 역할은 엠마 스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엠마 스톤처럼 감정 표현 연기의 진폭이 크고 춤과 노래도 수준급 이상으로 잘해내는 배우를 찾기 쉽지 않다. 배우 인력 풀이 탄탄하다는 할리우드라 할지라도 말이다. 엠마 스톤은 한마디로 표현력이 뛰어난 배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화룡점정은 연기 궁합이 잘 맞는 상대배우를 만났기 때문이기도 한데, 세바스찬 역의 라이언 고슬링과는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에서 함께 했었다.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의 연기 호흡이 실제 연인처럼 보여 두 사람이 사귄다는 소문까지 피어날 정도였다. 그래서였는지 감독이 세바스찬 역을 누구에게 맡길지 고민할 때 엠마 스톤이 적극적으로 라이언 고슬링을 추천했다고 한다.

김: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도 무척 좋았지만 아카데미의 영광은 <멘체스터 바이 더 씨>의 케이시 에플렉이 가져갔다. 아카데미 이야기가 나왔으니 시상식 날 벌어졌던 해프닝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작품상을 많은 사람들이 <라라랜드>가 받을 것으로 예측했는데 예상을 뒤엎고 <문라이트>가 받았다.

이: <라라랜드>가 작품상을 받기는 힘들다고 예상했었다. 아카데미협회의 성향을 고려하면 남녀의 사랑과 현실의 문제를 다룬 장르 영화보다는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회적 이슈를 고려해 볼 만한 작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상은 <문라이트>에게 돌아 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었다.

김: 이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김: 뮤지컬 영화이니 영화 속 음악에 대해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영화 속 주제가들을 들어보면 신이 난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흘러나오는 ‘Another Day of Sun’이나 미아가 파티에서 부르는 ‘Someone In The Crowd’ 또한 신이 나는 멜로디이다. 그런데 가사의 내용은 신이 나는 멜로디에 맞지 않는 것 같다. ‘Another Day of Sun’의 경우에는 영화를 다보고 나면 결국 헤어진 두 주인공, 미아와 세바스찬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영화의 줄거리를 암시한 것은 아닐까.

이: 뮤지컬 영화, 뮤지컬 모두 가사와 곡은 작품의 분위기와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적절히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Another Day of Sun’의 경우 어리지만 사랑했던 남녀가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는 이야기다. 이 지점은 미아와 세바스찬의 미래를 예측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노래는 두 남녀 주인공이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난의 길을 가지만 결국 노래 제목처럼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르듯 꼭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말하고도 있다. 헤어짐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슬픔은 있으나 정상을 향해 가고 있는 기대감을 함께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춤과 노래의 분위기는 경쾌하고 밝게 구성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 로맨틱 코미디와 같은 영화들은 영화의 끝에서 꿈을 포기하고 사랑을 택하거나 꿈과 사랑 모두를 쟁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전작인 <위플래쉬>도 그렇다. 앤드류는 뛰어난 연주자가 되겠다면서 여자친구인 니콜을 매서운 말과 함께 차버린다. 이 영화에서 그만큼 차가운 장면은 없지만 꿈을 위해서 서로 헤어지는 것을 택한다. 데이미언 셔젤은 마치 두 가지 모두 이룰 수 있는 경우는 없고 단 하나만 택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고전적인 형식을 붕괴시킨 감독의 선택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이: 일단 감독은 남녀의 사랑에 관해서는 매우 현실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현실 세계에서는 빈번한 일상이라는 매우 객관적인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거다. 특히 감독 본인의 개인사가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하버드 동문이었던 전 부인 재스민 맥글레이드와 꽤 오랫동안 사랑과 영화 관련 일을 함께 병행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데이미언 셔젤은 감독과 시나리오 작업을, 재스민은 프로듀서를 맡아 이혼 전까지 함께 해왔다. 이런 실제 결혼생활에서 부딪치는 현실적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감독의 시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듯하다.

김: 그 이야기를 들으니 영화 속에서 감독의 경험이 반영된 장면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맞다. 영화에서 세바스찬이 공연 투어를 바쁘게 다니다 시간을 내어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준비 해놓고 미아를 기다리는 장면이 있다. 집에 도착한 미아가 세바스찬의 이벤트에 기뻐하지만 달콤한 순간도 잠시일 뿐이다. 세바스찬이 미아에게 지금 당장 공연 투어를 함께 떠나자고 했기 때문이다. 미아는 자신의 꿈을 위해 직접 대본을 쓴 연극을 공연으로 올려야 하는 중요한 준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떠나자고 하는 세바스찬의 태도에 실망한 거다. 이 장면은 감독이 실제 겪었던 상황을 투영한 장면이라고 한다. 감독이 이런 장면을 구성한 이유는 현실의 사랑은 이상적으로 포장된 고전 할리우드 영화의 사랑과는 다른 것임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랑을 매우 담담하고 객관적이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현실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절대로 현실적 문제에 맞서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감독의 시각은 뮤지컬 영화의 내러티브 관습을 붕괴시키게끔 만들고 있다.

 
김: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인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보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면 당연히 미아와 세바스찬일 거다.

이: 미아와 세바스찬의 관계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 설정됐다. 물론, 오프닝 장면에서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경적을 울리며 짜증 난 듯이 지나가 버리고 미아는 그에게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남녀 주연배우가 우연한 상황에서 만나게 하는 고전 할리우드의 장르영화의 대표적 내러티브의 전략을 고스란히 사용하고 있는 부분이다.

 
김: 영화에 있어서 등장인물들의 옷이나 소품 등의 색깔에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뮤지컬 영화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현실을 기반으로 사건이 전개 되고 있는 사실적인 공간과 춤과 노래가 진행되는 허구의 공간으로 나뉜다. 이때 춤과 노래가 진행되는 공간이 사건이 전개되는 현장 즉, 사실적 공간에서 진행될지라도 춤과 노래가 진행됨과 동시에 그 공간은 허구이며 환상의 공간으로 진입되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는 등장인물의 의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아가 강렬한 원색 계열의 의상을 입고 나오는 장면은 춤과 노래가 진행되는 환상의 공간에서 주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허구의 공간에서의 의상 스타일 역시 고전적이면서 우아함을 드러내는 드레스들로 구성돼있다. 미아의 파랑, 노랑, 초록, 흰색의 선명한 색감의 의상은 사실적 공간에서의 미아와의 차이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환상적인 춤과 노래의 공간에서의 미아를 확실하게 구분시키기 위한 것이다.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들은 당시에 컬러 색감을 가장 선명하고 강렬하게 표현될 수 있는 테크니컬러 필름을 주로 사용했다. 이 필름의 특징이 강렬한 색감을 잘 흡수해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뮤지컬 영화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의 의상들이 필름 친화적인 강렬한 색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허구의 춤과 노래의 공간을 더욱 더 현실이 아닌 다른 공간이며 환상적인 공간임을 구분시키기 위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김: 고전 뮤지컬 영화의 장면을 많이 오마주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나왔던 장면이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물들에게서도 ‘과거’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유물 취급을 받고 있는 재즈를 되살리려는 세바스찬과 영화배우가 하고 싶은 미아의 방 벽에 그려진 잉그리드 버그만의 포스터 등은 이 영화의 핵심 중 하나가 ‘과거’ 혹은 ‘향수’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두 인물은 영화관 데이트를 하다가 필름이 타버리는 바람에 영화 속 장소를 직접 찾아가는데, 해당 쇼트는 마치 영화 속으로 두 인물이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있다. 미아가 일하고 있는 카페 근처에는 <카사블랑카> 촬영지가 있다.

이: <라라랜드>가 ‘과거’, ‘향수’에 대한 과거를 주제로 한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잉그리드 버그만, 재즈 그리고 고전 뮤지컬의 대표작 <사랑은 비를 타고>를 연상시키는 장면들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조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오마주와 같은 요소들을 ‘과거’와 ‘향수’에 접목시키기보다는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다. 이 영화의 주제를 현실에 뿌리를 둔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는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과 헤어짐에 관한 아주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전 뮤지컬 영화에서는 찾아 볼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결말이다. 그 시절 영화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반드시 사랑을 재확인하고 행복을 찾은 결말로 끝이 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감독은 지극히 현실적인 남녀의 관계를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보편적인 관객이 많이 공감할 수 있는 결말로 처리하고 있는 거다.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은 두 사람의 행복한 결합을 기대했을 거다. 그러나 <라라랜드>의 마지막 미아와 세바스찬의 재회 장면은 관객들에게 많은 혼란과 배신감을 안겨줌과 동시에 몇 배 이상의 충격을 전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감독은 결말 지점 전까지 줄기차게 고전 할리우드 시대를 대표하는 요소들과 고전 뮤지컬 영화의 장르적 특징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두고 있다. 이유는 바로 감독이 미아와 세바스찬의 재회 장면 전까지 관객에게 익숙한 고전 뮤지컬 형식의 영화라는 굳은 믿음을 주기 위함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라라랜드>가 다른 뮤지컬 장르 영화와는 차별화된 미덕을 가지고 있음이 가늠된다.


정리_ 김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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