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기획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코인맵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서울에 위치한 서른여 개의 오프라인 비트코인 사용처를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음식점, 숙박업소 등 비트코인을 취급하는 다양한 업소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도상의 업소들은 모두 유령업소가 돼있었다. 가끔씩 전화를 받아주는 반가운 곳도 있었지만 더 이상 비트코인을 받지 않거나 급당락하는 환율로 인해 잠시 비트코인 결제를 중단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비트코인으로 결제가 가능한 숙박업소가 있었지만 사전예약이 온라인으로 이뤄져 현장 결제를 체험해보기 적합하지 않았다. 확인해보지 않은 업소는 이제 다섯 곳도 남아있지 않았다.

▲ 이태원에 위치한 비트코인 센터의 모습. 현금을 제시하면 얼마의 비트코인을 받게 될지 보여주는 화면이 있다.
다행히도 신촌 근처의 한 음식점에서 전화를 받아줬다. “안녕하세요, 아직 비트코인으로 결제가 가능한가요?”라고 기자가 대뜸 묻자, “당연하다”며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직원이 내일 근무하러 온다”고 했다. 주말에도 영업을 계속 한단다. 드디어! 하지만 아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기자의 목표는 개인 ‘지갑(사용자의 비트코인 거래내역을 정리해 잔액을 보여주고 입금·송금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으로 직접 비트코인을 사고 그것을 직접 써보는 것. 따라서 비트코인을 살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국내에는 비트코인을 투자의 대상으로 사고 파는 사람들을 위한 ‘인터넷 거래소’가 많았다. 하지만 이를 이용하면 내 ‘지갑’으로 자유롭게 비트코인을 쓰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비트코인 ATM’을 이용하면 내 지갑으로 비트코인을 바로 살 수 있다고 한다. 코인맵에서 서울의 ATM을 두어 개 확인할 수 있었지만 아직 운영 중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이태원에 위치한 ‘비트코인센터’를 통해 비트코인을 직접 내 ‘지갑’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정보를 찾았다.

정오, 이태원의 한 건물에서 ‘비트코인 센터’라는 간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올라간 계단의 끝에는 웬걸, 굳게 닫힌 문이 있었다. ‘이렇게 돌아가는 건가’하며 하릴없이 센터의 페이스북을 들어가봤는데 오후 한 시부터 문을 연단다. 잠시 후 다시 찾은 센터는 문이 열려있었다. 안으로 발을 내딛자 갑자기 ‘Hello’라는 말이 들려왔다. 당황스러웠다. 통역이 가능한 직원이 한 명 있다고 들었는데 하필 부재중이라고 한다. 통역기를 깔아오지 않았는데 과연 비트코인을 손에 넣고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까. 다행히도 직원은 기자의 영어를 참고 들어줄 만큼 친절했다.

▲ 휴대폰 카메라로 업소가 제공하는 QR 코드를 스캔하면 다음과 같이 ‘지갑’에 송금 정보가 뜬다. 수수료는 사용자가 임의로 지정할 수 있다.
한국 돈을 내밀자 컴퓨터 스크린으로 현재 환율과 계산된 비트코인을 보여주며 그 양에 동의하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수수료가 조금 있다고 한다. 몇백원 수준으로 크게 부담되지 않아 괜찮다고 했다. 잠시 기다리자 내 ‘지갑’에 비트코인이 계좌에 입금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기자의 십만원은 0.0183 BTC가 돼있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신촌의 어느 골목, 비트코인 결제 가능 업소라는 간판이 보였다. 그길로 가게에 들어가 점심을 주문했다. 밥을 다 먹고나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쓰윽 꺼냈다. 기자가 알고 있던 비트코인 사용법은 다음과 같았다. 휴대폰에서 지갑을 실행하고, 송금을 누른다. 상대방의 비트코인 계좌를 입력하고 원하는 금액을 입력한다. 이제 송금을 누르고 거래내역을 보여주면 끝.

카운터 앞에 서서 “비트코인으로 결제할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직원도 휴대폰을 꺼내며 무언가를 실행했다. “QR코드를 보여드리면 될까요?”라는 질문에 “그래 달라”고 말했지만 QR코드 스캐너가 갑자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돈을 받아가는 쪽이 자신의 입금 계좌와 희망금액이 들어있는 QR코드를 보여주면 돈을 주는 쪽이 그것을 스캔해서 쉽게 송금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몇 번 ‘잠시만요’를 남발하다 스캐너를 찾고 실행시켰다. 휴대폰 카메라를 ‘딱’하고 QR코드에 갖다대니 ‘촥’하고 업소의 비트코인 계좌가 뜬다. 마치 접촉으로 교신을 한다던 <E.T.>의 한 장면 같았다. 그 계좌 정보 밑에는 희망 송금 금액이 BTC(비트코인의 단위)와 현재 환율로 계산된 ‘원’이 같이 표기됐다.

정확히 기자가 먹은 카레 값이었다. 비트코인 결제를 위해서는 거래 확인자들에게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 수수료의 크기도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었다. 거래가 확인될 때까지 몇 분이 안 걸리는 거래의 수수료는 천원 정도, 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거래는 몇십, 백원 정도라고 지갑이 말해줬다. ‘앗, 혹시 거래 확인이 느리면 가게에 오래 잡혀 있어야하는 건가’하는 생각에 천원어치 수수료를 선택하고 ‘확인’을 눌렀다. ‘어떻게 결제를 증명하지’ 생각하고 있는데, 그냥 결제 내역을 보여주기만 해도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렴한 수수료를 선택해도 됐을텐데... 왠지 비트코인을 잃어버린 느낌이었지만 거래 확인자들에게 ‘팁’을 후하게 줬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형체없는 돈으로 점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지갑을 꺼내 괜스레 남은 비트코인을 확인해봤다. 그새 환율이 바뀌었는지 이천원의 이득을 보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면 비트코인을 인쇄해서 고이 보관해야지’라고 생각하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글_ 서지원 기자 sjw_101@uos.ac.kr
사진_ 김수빈 기자 vincent0805@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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