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신문
문화
부유하는, 무채색의 자아들: 『82년생 김지영』그녀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한영(서울시립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 과정)  |  press@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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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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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는 등 출간과 동시에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책에 대해 비평을 기획했다. 비평은 두 명의 철학자 ‘스피박’과 ‘들뢰즈’의 논의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책을 읽었던 독자들에게는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기회가, 아직 읽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호기심에 책을 읽게 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1. 한국의 서발턴(Subaltern)들은 말할 수 있게 되었는데…

철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당시 북부와 남부로 나뉘었던 이탈리아에서 상류층에 속했던 북부인들과 달리 하류층에 속했던 남부인들이 지니고 있던 민중들의 분노와 고통을 대변할 수 있도록 서발턴(Subaltern)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언급하였다. 이후 이 용어는 인도의 여성학자이자 콜롬비아대학교의 교수인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에 의해 하위주체라는 개념을 포괄하며 본격적으로 학계에 퍼지게 된다. 이때에 서발턴이란 상위주체들이라 할 수 있는 지배계층의 헤게모니에 종속되거나 여러 종류의 억압으로 인해 자신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노동자, 농민, 여성, 피식민지인 등을 지칭한다. 주변부에 위치해 있던 하위주체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본격적인 탈식민주의 이론이 시작된다.

이 서발턴 개념은 경제개발이 급격히 진행되던 1980년대에 직장을 얻기 위해 상경하였던 한국 농촌 여성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한국 여성들은 남자들과 달리 여자라는 이유로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한 집안의 누이로써 혹은 한 집안의 어머니로써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하는 운명 속에서 놓여 있었다. 이 시기 많은 여성들의 대학 진학률은 남성들과 비교할 때 현저히 낮았으며 결혼을 하여 한 가정의 아내나 어머니로써의 삶만을 살도록 강요되었고 이 과정에서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오랫동안 억압당해왔음에도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변화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몸을 움츠리고 살아야만 했다.

당시 이들의 목소리를 사회와 세상에 대신 들려주는 것은 여성 소설가들의 몫이었다. 식민지 시기 신여성이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바람과 달리 서울이란 중심부에 소속되지 못한 채 방황하고 혼란을 겪는 어린 화자의 모습을 다룬 박완서의 연작소설 『엄마의 말뚝』(1980)이나 결혼한 여성들의 불안과 히스테리를 섬세하고 날선 감각과 미학으로 도려낸 오정희의 소설집 『불의 강』(1977)과 『유년의 뜰』(1981), 그리고 구로 공단의 한 공장에서 실제 여공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집필한 신경숙의 『외딴방』(1994)등은 음지에 가려져 있던 여성이란 하위주체들의 목소리를 대신 발화하려 한 여성 작가들의 뜻깊은 결과물들이었다.

그렇지만 사회가 이전과 달라짐에 따라 그간 하위주체로 인식되었던 여성들의 지위 역시 바뀌게 되었다. 9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의 가족 구성원이 대가족에서 소가족 형태로 변모됨에 따라 한 가정에서 태어난 여성들도 남성들만큼이나 동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생겨나게 되었고 결국 많은 여성들이 대학에 진학하여 적극적으로 사회에 진출하는 현상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런 모습을 잘 반영하듯 이 시기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여성 소설가들은 전 세대의 여성 소설가들이 그려냈던 것과는 다른 형태의 인물들을 창조해내었다.

이를테면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를 분리해냄으로써 스스로의 입지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이를 통해 더 이상 감성적이지 않고 보다 냉철하게 세상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은희경의 『새의 선물』(1995)속 어린 화자나 연애와 결혼 제도를 철저하게 분리시킴으로써 성(性)의 개방을 자본주의적 거래로 환산시켜 그것을 스스로가 활용할 수 있도록 보여준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2002)속 여성 화자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지금 이 시기의 한국 여성들을 과연 전 시대의 여성들처럼 억압받고 차별받고 있느냐에 대해선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여성들이 대학에 진학하여 사회에 진출하였고 여성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다양한 권리와 혜택들도 훨씬 늘어난 데다 대중 매체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여성들은 더 이상 전처럼 상위주체에 억눌린 채 자신들의 목소리를 숨기기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며 오히려 남성들보다 더 많은 권리와 혜택을 받음으로써 역으로 남성들이 스스로가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현재 한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남성과 여성들 사이에서 대립과 갈등이 크게 초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것이 남혐(男嫌)과 여혐(女嫌)이란 단어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이며 고전적인 가족 형태의 해체와 함께 결혼율과 출산율이 끊임없이 낮아지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결과물이 그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 문학계에서 한 편의 소설이 굉장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바로 조남주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2016)이다. 1978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사회학과에서 수학한 뒤 10년 간 방송 작가로 일을 해왔던 그녀는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2011)으로 제17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서번트 증후군에 걸려 남들보다 지능이 낮은 자신의 아들 일우에게 놀라울 만큼의 청각적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 한 아버지가 이런 일우의 능력을 이용하여 당시 방송사에서 개최한 오디션 프로그램 ‘쓰리컵 대회’에서 우승하여 일확천금을 누릴 계획을 꿈꾸지만 이들에게 상금을 주지 않으려 하는 프로그램 피디가 또 다른 계략을 꾸며 이들의 우승을 저지하려한다. 이런 작품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소설이 나왔던 당시 한국 사회에 유행처럼 번지던 오디션 프로그램을 소재로 함과 동시에 이것이 지닌 언론사의 문제점을 조남주가 교묘하게 고발해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음으로써 우리는 그녀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소설가임을 알 수 있도록 해준다.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인권이 전 세대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남성들에 의해 발생되고 있는 여성 차별에 대해 고발해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를 테면 남성들과 동등하게 경쟁을 하여 회사에 입사하여도 결혼을 하거나 임신을 하게 되면 잠시 회사를 떠나 있어야 한다거나, 아이를 키우다가 다시 일을 하려해도 전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해 비정규직으로 재입사를 하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것들, 게다가 남성과 달리 신체적으로 나약하기 때문에 발생될 수 있는 차이점들, 그리고 아직도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유리천장과 같은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소설로써 비판해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과 달리 여성들이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게 된 지금의 시대 상황에서 작가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된 것일까. 
 
   
 
2. 통계 수치가 만들어낸 무채색의 인물들

성 차별이 남아있는 사회 구조를 고발해내기 위해 이 소설은 주인공 김지영이란 개인의 목소리를 독특하게 형상화해내기보단 그녀가 한국 여성 전체를 대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녀를 기표 및 상징화시키는 작업을 시도한다. 제목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듯 이 소설의 주인공은 1982년도에 출생한 김지영인데 흥미롭게도 실제 한국에서 1982년도에 출생한 여성들 중 가장 많은 여성들이 김지영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소설 속 김지영은 작가가 소설의 특별한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해 창조해낸 독특하고 개성적인 화자이기보다는 실제 한국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김지영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창조된 상징적인 기표로 읽을 수 있다.

이런 문학적 특징 때문에 이미 몇몇 논자들은 이 소설을 르포 문학으로 읽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르포문학은 논픽션과 유사한 개념이나 그것보다는 문학성이 강조된 것으로 현실의 파악이나 묘사에 있어 강한 주관이나 정치적 입장이 표명되고 문학적인 감동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는 보도기사와 구별되지만 소설이 갖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억제한다는 점에서 일반 소설 문학과 차이점을 갖는다.

이 소설의 첫 시작은 명절날 남편의 친가에 방문해 제사 일을 돕던 주인공 김지영이 정작 외가에는 가지 못하는 상황을 인지하고는 처음으로 남편과 친가 식구들에게 화를 내고 남편과 함께 차에 올라타는데 여기서 그녀는 난데없이 대학교 시절 만났던 차승현이란 남자 선배의 목소리와 말투를 내게 되며 그 동안 자신이 지닌 채 발화해 왔던 여성으로서의 목소리를 망각하기에 이른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 남편은 아내를 정신과에 데리고 가고 아내가 어떠한 계기로 이러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소설은 순차적으로 그녀의 출생 때부터 결혼하여 한 아내가 될 때까지의 그 인생 궤도를 차분하게 따라가지만 생각보다 그녀의 삶에 특별한 사건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을 살펴볼 수 있을 뿐이며 그녀가 왜 자신의 목소리를 잃고 남자 선배의 목소리를 내게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원인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문학적 특징 때문인지 이 소설은 일반 서사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플롯이라든지 개성적인 인물의 성격 형상화가 부재한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시학』에서 서사 문학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플롯을 들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인물의 성격을 들고 있는데 이미 이 소설 자체가 명확하거나 흥미로운 플롯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자연스럽게 인물의 개성적인 성격 형상화 역시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주인공 김지영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살면서 만나오는 주변 인물들의 성격 형상화 및 목소리 역시 개성이 부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어머니라든가 첫째 언니, 막내 남동생, 그리고 대학생 때에 만나는 여자 선배, 대학 동기, 그리고 남자친구와 현재의 남편이 되는 남자, 병원에서 그녀를 치유하는 의사와 같은 인물들은 각각의 고유한 특성과 개성을 보유하고 있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전체대명사와 같은 대상들로 평범하게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이 『말의 미학』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을 예로 들면서 인물들 각각이 지닌 고유의 다성성(多聲成)이 충돌하여 카니발(Carnibal) 현상을 일으킨다고 했을 때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속 인물들은 특정한 사회 현상의 문제를 대변하기 위해 등장한 통계학적 단성성(單性成)의 자아들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소설에서 활용되고 있는 실증적인 통계학적 수치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그런 수치들로 인해 형상화된 상징적 기표들이라 할 수 있다. 즉 소설 속 많은 인물들은 그 세계 속에서 고유의 가치와 색체를 지닌 채 살아가고 발화하는 자아들이기보다 객관적 수치들이 만들어낸 무채색의 수학적(數學的) 자아들인 것이다.

3. 자본주의와 미분화된 욕망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왜 김지영이 소설 초반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고 대학교 시절 남자 선배의 목소리를 얻게 되었느냐이다. 이는 단순히 현대인에게 흔히 발생되고 있는 정신질환의 일종으로만 볼 수 없는데 바로 우리가 계속 살펴보았던 서발턴들의 목소리가 정말로 이 시대에도 계속 유효하게 작동되고 있느냐는 지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보일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작품 속에서 김지영은 불안한 현대인의 초상(肖像)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라 할 수 있으며 자신이 맞닥뜨린 사회 구조 앞에서 불안해하며 좀처럼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을 품지만 그것을 바꿔나갈 의지와 능력이 부재하는 지극히 평범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를테면 김지영은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애의 행동을 담임 선생님에게 이르자 남자는 원래 좋아하는 여자애를 괴롭힌다는 선생님의 말에 혼란을 느끼고 좀처럼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밖에도 힘겹게 회사에 들어가게 되지만 여성들은 출산을 하게 되면 다시 회사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거나 하는 사회적 구조에도 좀처럼 이해를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남성들에 의해 생겨난 여성 직원들을 향한 성차별적 발언이라든가, 결혼을 하여 출산을 한 뒤에 아이를 키우다가 외부인들로부터 듣게 되는 여성 비하 발언 같은 것에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를 하며 쉽게 눈물을 드러내는 나약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듯 김지영이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여전히 기성세대들에 의해 주조되며 생산되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삶과 직업관이 이분법적으로만 분리되어 있는 전근대적이며 시대착오적인 사회 구조이다. 그리고 김지영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사이의 이분법적 도식과 그것을 증명해내는 어떠한 구조적 문제를 좀처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혼란스러워한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논리로만 설명될 수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인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해체주의(解體主義 : deconstruction)를 언급하면서 근대 시대에서부터 생산되어 온 이분법적 세계, 이를 테면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 지배국가와 피지배국가 같은 상하(上下)구조를 해체하여 평등한 구조로 탈바꿈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과 같이 보수적이며 또 오랫동안 독재 정권이 자리 잡아왔던 나라는 이러한 탈구조주의 운동이 서구나 유럽과 같은 선진국들에 비해 활발히 진행되어 그 본질적인 구조를 탈바꿈시키지 못했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학교라든가 직장, 사회, 그리고 가정처럼 기성세대들이 여전히 선점하고 있는 조직에서는 그러한 이분법적 가치관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현대 한국의 많은 여성들은 이러한 전근대적인 사회 구조를 타파하고자 스스로의 욕망을 성취하려하며 많은 분야에서 자신들만의 놀라운 성과를 이룩하기도 했다. 이는 김지영의 대학 선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그녀는 힘겹게 대기업에 입사하지만 그곳에서 받게 된 여성으로서의 차별과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나와 이후 피나는 노력을 하여 고시에 합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대학교의 여성 후배들에게 전설적인 선배로 입에 오르내린다.

이러한 모습은 비록 여성일지라도 현대 사회에서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할 것 없이 노력을 한다면 보다 나은 환경이 마련된 사회 구조 속에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물론 그것은 아직도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이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 소설은 그러한 사회 구조의 모순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탈구조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 포스트모던 시대에 있어 더 이상의 상하(上下)구조는 의미를 지닐 수 없게 되며 그간 이분법으로 구분된 채 존재했던 차이들은 데리다도 언급하였듯이 뒤로 밀려나버리게 된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사회 층위가 다양하게 나뉜 현대 사회에서 그 차이가 극복될 수 없는 것은 바로 남녀가 지니고 있는 생물학적인 몸이다. 사회 구조가 성 평등을 조장하고 거기에 맞춰 많은 부분들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더라도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선택당한 채 껴안게 되는 몸의 차이만큼은 여전히 극복될 수 없는 지점이다. 특히나 남성과 달리 여성들은 어머니로서의 몸, 모성으로서의 몸을 부여받는데 이는 여전히 여성으로 떠안아야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작용한다.

이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김지영의 첫째 언니 김은영으로부터이다. 첫째 언니는 공부를 무척 잘해 서울의 명문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지방의 국립교대에 입학할 수 있는 높은 수능 점수를 얻게 되고 이 두 개의 학교 중에 어느 곳을 진학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런데 이때 언니의 인생 설계에 또 한 번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바로 어머니인데 그녀는 여자가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고 일을 할 때 가장 좋은 직장이 초등학교 교사라면서 취업이 불투명한 신문방송학과보다 지방에 위치해 있더라도 교사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교대에 진학할 것을 권유한다. 이에 첫째 언니는 잠시 두 가지의 갈림길을 놓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 결국 어머니의 말을 따라 지방의 교대에 입학하기로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첫째 언니의 선택에 무척 감정적으로 슬퍼하는 것은 어머니이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혹시라도 자신처럼 어머니로서 희생만하는 삶만을 살게 될까봐 슬퍼하는데 이는 결국 첫째 언니 또한 여성이기에 어쩔 수 없이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아야만 하는 사명감에 놓여 있음을 말해주는 부분이 된다. 비록 첫째 언니도 교대에 진학하기로 한 결정을 그리 후회하지 않고 나름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여자이기에 필연적으로 어머니가 되어야만 하는 사명감이 존재하며 이를 위해 남성들과 달리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 동시대에도 여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 된다.

   
 
4. 사라지고 있는, 김지영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그 사회 구조가 다양해짐에 따라 이전 시대와 달리 여성들도 남성들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고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첫째 언니의 진로 결정 문제를 살펴보았을 때 여전히 여성들에게 초등학교 교사라는 여성적인 것, 어머니로서 유망한 것, 이라는 프레임을 씌움으로써 첫째 언니는 결국 어머니로서 살 수밖에 없는 길을 선택하게 됨을 확인할 수 있게 되며 이러한 첫째 언니의 결정은 결국 그녀의 여동생인 김지영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되었으리라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어머니로서의 삶을 필연적으로 살아가야만 하도록 된 데에는 바로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이 지닌 차이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더라도 여전히 원시적이고 생물학적인 본질적인 차이인 ‘몸’의 차이가 극복될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소설 속에서도 김지영은 여성으로서 성장 과정에 겪게 되는 몸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초경(初經)의 경험이다. 김지영은 자신의 몸에 드러나는 이러한 생물학적 변화에 무척 혼란을 겪게 되는데 이는 그녀로 하여금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자세를 갖도록 만들어버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며 이는 필연적으로 그녀가 여성이란 존재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된다.

사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많은 사회적 제도에 있어 분화되었고 또 평등해졌으며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이룰 수 있고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이 다양해졌음에도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는데 바로 태어나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얻게 되는 성(性)에 대한 결정권 여부이다. 우리들은 어떠한 인식도 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 성장해가다 본격적으로 나와 타자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 바로 성적 차이가 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이를 남근 선망의 일종으로 파악했으며 남아와 여아가 자신의 성 차이를 인식하게 되는 것도 바로 신체에 달린 남근(男根 : Phallus)의 파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단계 이전까지는 남아이든 여아이든 자신들을 모두 같은 존재라 파악하지만 남아가 자신의 남근을 깨닫게 되어 남성성의 세계로 진입해가는 것과 달리 여아는 자신에게 남아와 달리 남근이 부재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이를 보충하고자하는 남근 선망의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남근 선망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김지영의 가족들에서부터인데 김지영의 어머니는 자신이 계속 딸만을 낳게 되자 뱃속에 있는 아이도 딸이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남편에게 묻는데 이는 아직도 한국 사회에 남아있는 남아 선호사상에 대한 모습인 동시에 성의 선택과 결정권에 있어서는 개인의 의지와 결정권보다 타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자연발생적인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며 실제로도 딸만 낳게 될 경우에 어쩔 수 없이 그 아이를 지우거나 아니면 남아를 입양하는 방식으로 가족 내에 어떻게든 아들을 만들려는 이전의 시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생물학적인 성차가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 인해 선택당하는 현상임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다행스러운 지점은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는 그 이전의 시대보다 훨씬 복잡해지고 다양해졌고 그 구조가 세분화됨에 따라 우리가 스스로의 자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율적인 권리를 더욱 자유롭고 평등한 위치에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욕망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생산물과 함께 생산이 되며 공장에서 찍어내듯 다양한 욕망들이 산출된다고 보았고 그로 인해 개개인의 욕망은 끊임없이 생산되고 미분화되어 결국 분열된 양상을 띠게 된다고 보았다.

이를 테면 현대 사회에서 자아들은 기존 세대가 겪어온 것처럼 단순히 여성과 남성,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큰 확대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대학의 전공이나 기업의 스타일, 직장 여부에 따라 보다 그 인격이 보다 다채롭게 생성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즉 사회 구조가 다채로워짐에 따라 개인의 욕망은 다양하게 분화되었으며 우리들의 자아 역시 남성적인 것, 여성적인 것의 이분법적인 규범을 넘어 보다 다양하게 형상화될 수 있음을 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펴본 김지영의 삶은 과연 이러한 현대 사회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곳에서 살아가는 존재였다고 볼 수 있을까. 사실 그녀가 작품 내내 보여주었던 불안의 기저는 그녀가 진정으로 고유한 자아를 찾지 못했기에 발생된 현대의 불안 기제였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녀는 이미 여성과 남성이라는 하나의 이분법적인 성(性)적인 개체 항을 넘어 하나의 독립적인 인간이지만 사회는 여성과 어머니라는 프레임을 씌움으로써 그러한 독립성을 억누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수적인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한국 사회는 아직도 많은 여성들에게 여성으로서 살아야만 하는 사회 구조를 강요하고 그렇게 살도록 훈육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김지영이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드러냈던 정서적인 불안이 여성으로 보여주었던 나약함과 히스테리 혹은 우울증의 한 측면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 여성의 신체로 태어난 한 존재가 어떻게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 사고의 충돌이 존재하는 사회를 적응해나가는 과정에서 그것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스러워하는 불완전한 개체였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녀가 소설 첫 부분에서 친척집에 들렀다가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돌아오는 중에 여성으로서의 자아이자 목소리를 잃게 되고 난데없이 대학교 시절 때의 남자 선배의 자아와 인격을 획득하고 그 선배의 목소리와 말투를 흉내 내게 되는 정신분열증적 양상을 보이게 된 데에는 바로 이러한 현대의 분열된 양상이 확인되게 되는 것이다.

김지영은 출생 때부터 성장과정, 그리고 결혼하여 한 어머니가 되기까지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획득하지 못한 채 부유했던 회색빛깔의 무채색과 같은 존재였으며 끝까지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얻지 못한 채 이분법적인 사회 구조에 맞서 싸우지 못하며 그러한 구조 속에서 불안해했던 하나의 나약한 존재였던 것이다.
 

 이한영(서울시립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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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역에서 열린 ‘시민과 시립대학의 소통’

지난 15일 청량리역에서 ‘시민문화제’가 열렸다. 시민문화제는 우리대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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