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수 기자(이하 김): <덩케르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덩케르크에서 벌어진 철수 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다. 기록에 따르면 영국군 22만 6000명과 연합군 11만 2000명을 적진에서 구출해냈다고 한다. 영화는 육지와 바다 그리고 공중에서 탈출을 위해 힘쓰는 영국군의 모습을 조명한다. 일단 영화를 본 소감을 듣고 싶다.

이주연 교수(이하 이): 2차 세계대전 때 있었던 실제 사건으로 전쟁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특히 지금까지 선보였던 <다크나이트> 3부작, <인셉션>, <인터스텔라>등에서 사용했었던 아이맥스 촬영을 고수한다는 소식은 나에게도 일반 관객들에게도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다른 전쟁영화들처럼 전투장면의 스펙터클에 집중할 것이라 예상했다. 뛰어난 감독이라고 평가 받는 크리스토퍼 놀런도 이제는 자신만의 익숙한 표현 방법에 매몰되어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겠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것은 나의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김: 기우였던 것은 다른 전쟁영화와는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영화 내적인 이야기를 할 때 조금 더 자세히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감독이 왜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소재로 삼았을지 이야기해줄 수 있나.

이: 감독이 영화의 소재로 역사적 사건이었던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영국인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이야기이다. 감독 역시 어린 시절부터 자주 들어왔던 2차 세계대전 관련한 대표하는 이야기 중 하나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작품의 소재로 선택한 데에 좀 더 직접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바로 영국 국민들의 정신을 지탱하고 있는 “덩케르크 정신”을 감독이 영화적인 시각으로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분에 상관없이 영국인들은 자신의 작은 보트와 요트를 기꺼이 이용하여 군인들의 철수를 도우러 나선다. 그리고 결국 성공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건이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영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하나의 영국이라는 정신을 굳건하게 하는 정신이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휩싸였던 전쟁의 한복판에서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이 보여준 희생과 휴머니즘은 철수작전을 성공할 수 있게 하는 기적을 보여줬다. 믿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은 감독을 충분히 매료시켰을 것이다.
김: <덩케르크>가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다양한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한데, <메멘토>는 ‘기억’이 소재였고 <인셉션>은 ‘꿈’이었으며 <인터스텔라>는 ‘우주’였다. 많은 소재들을 뒤로하고 ‘전쟁’을 소재한 영화를 제작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더구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훌륭한 평가를 받는 전쟁영화들이 버티고 있는데 말이다.

이: 이 작품은 감독의 작품 경력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기존 영화들과는 달리 전쟁을 바라보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영화를 만드는 방법, 스타일의 측면에서 그의 영원한 고민과 탐구과제인 영화적 사실성 구현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이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주의 감독으로서 크리스토퍼 놀런만의 면모를 확실하게 구축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 그동안 배우들의 연기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해왔는데 <덩케르크>의 경우 배우들의 연기보다 배우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볼 만할 것 같다. 왜냐하면 주인공들이 대부분 신인 연기자이기 때문이다.

 
이: 배우 캐스팅의 측면에서 매우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톰 하디’, ‘킬리언 머피’, ‘마크 라이런스’, ‘케네스 브래너’와 같이 인정받는 연기파 배우들이 영국군을 구하는 역할에 포진되어 있는 반면 일반 병사들은 ‘핀 화이트헤드’와 ‘해리 스타일스’처럼 연기 경력이 거의 없는 젊은 배우들로 구성되어있다. 당시 전쟁에 참여하고 있던 젊은 군인들의 나이와 배우들의 실제 나이와 거의 일치한다. 18세에서 20대 초반 정도로 당시 앳된 젊은 병사들의 나이대와 비슷하다. 감독은 전쟁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 병사들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 처절히 자신과 싸워나가는 그때 그들의 모습을 유사한 나이대의 배우들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캐스팅의 선택은 감독이 지속적으로 목표로 삼고 있는 사실성의 확보를 위한 영화적 선택이기도 하다.
김: 연말, 여러 매체에서 올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고 있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를 것이라고 하는데 지켜봐야겠다. 이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다른 전쟁영화들과의 차별점
김: 계속 이야기가 나왔지만 <덩케르크>는 관객들에게 익숙한 전쟁영화와는 다른 차별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전쟁영화를 기존 장르의 법칙으로 다루는 것에서 벗어나 새롭고 혁신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영화는 이미 존재한다. 예를 들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 클린트 이스트 우드의 <아버지의 깃발> 등의 작품에서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입각한 전쟁의 영웅 탄생 플롯은 이미 제거된 지 오래다. 오히려 전쟁이 인류에 가져다주는 폐단, 전쟁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 전쟁으로 인해 개인이 겪게 되는 내면적 갈등과 자기 파괴, 전쟁 영웅 탄생의 아이러니 등을 지적하며 전쟁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전쟁을 바라보는 세계관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것을 담아내는 스타일 역시 시대와 각 감독들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표현되면서 기존 전쟁영화의 관습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케르크>는 일반 관객은 물론 평단에게도 좋은 평가받았다. 전쟁영화의 관성을 다른 영화처럼 허물었다고 하더라도 <덩케르크>만의 매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맞다. 대중과 영화 전문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몇 안 되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이 뻔한 전쟁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다. <덩케르크>가 이제까지의 전쟁영화와 다른 점은 전쟁영웅 탄생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병사들이 겪는 불안, 고통, 죽음의 공포를 그들의 주관적 관점에서 생생히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을 탈출시키려고 나서는 사람들의 휴머니즘을 강조하고 있다. 격렬한 전투 장면이 등장하지 않고 배우들의 대사가 절제됐다는 점, 인물들의 개인적 사연도 제거돼있는 부분은 스타일적 측면으로 다른 전쟁영화와는 다른 특징이다.

김: 놀런이 이런 제거의 전략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타 다른 전쟁영화들이 전쟁의 잔혹함, 아군이 터뜨리는 폭탄이 얼마나 화끈하게 터지는지 등, 더 보여주려는 전략을 취했다면 <덩케르크>는 이와는 완전히 반대라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배우들의 대사도 절제돼 있으니 말이다.
이: 제일 큰 이유는 기존 전쟁영화와의 차별화 때문이다. 관습적인 전쟁영화의 틀을 벗어나는 새로운 장면 연출의 필요성에 의해 설정된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이유를 첨언 할 수 있겠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면 이해가 쉬워진다. 그것은 바로 어린 병사들의 무사귀환이다. 포탄이 빗발치고 죽음의 그림자가 항상 함께 하고 있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부지해 집으로 돌아가길 갈망하는 어린 병사들의 생존과 귀환에 더 집중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김: 무엇보다 영화가 흥미로웠던 것은 적군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치 영화가 적군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 독일군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병사들과 관객들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또한 배우들의 대사가 거의 없는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적진 어디에선가 날아와 꽂히는 총탄의 소리를 더욱 강조하면서 총탄이 어디로 떨어질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병사들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게끔 한다. 이때 병사들 개인이 경험하는 긴장감을 클로즈업을 통해 보여주면서 그들의 주관적 감정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김: 집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주연 영국군들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것도 흥미롭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 토미, 알렉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 속에서 이름이 불린 적은 없다. 이런 이름의 제거도 병사들이 경험하는 공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주연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그 인물에 감정이입하게 된다. 그런데 이름을 제거하면서 주연도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수많은 영국군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은유한 거다. 이는 <덩케르크>가 한 개인 병사가 느끼는 전쟁의 공포가 아니라 참전한 병사 모두가 느끼는 공포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플롯의 매력
김: 감독이 <덩케르크>를 만들며 했던 선택 중 제거의 전략과 함께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영화의 플롯이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시간에 육지, 바다, 공중에서 일어나는 일을 동시에 보여주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심지어 육지, 바다, 공중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각각 일주일, 하루, 1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들이다. 과연 플롯의 마술사라 불릴 만하다.
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대표적 특징이 복잡한 플롯를 선호하는 점이라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첫 장편 데뷔작인 <메멘토>와 <인셉션>, <인터스텔라>에 이어 <덩케르크>까지 비선형적인 플롯 구조로 인해 관객은 자신의 생각대로 사건을 재구성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관객 스스로가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관객의 주관적 관점과 판단에 의해 정리하게 된다. 이러한 효과를 위해 감독은 많은 정보의 생략과 사건의 동시 발생 그리고 시간 축의 파괴를 의도적으로 가하고 있다. 이것을 영화의 장면으로 보게 되기 때문에 관객은 혼란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장면을 펼쳐놓고 본다면 훨씬 이해도 쉽고 생각보다 단순하다. <덩케르크>의 경우 육지에서 일주일, 바다에서 하루, 하늘에서 1시간이라는 시간 축이 형성되어 있고 이 세 공간에서 일어가는 일들이 하나로 모이는 것은 병사들의 덩케르크 철수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결과적으로 덩케르크의 탈출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플롯을 복잡하게 구성해 놓은 것이다. 시공간을 파편화시켜 관객이 궁금증과 긴장감을 놓지 못하도록 한다.
김: 영화 후반부에 세 개의 플롯이 만나는 지점이 있는데 서로 다른 장소, 다른 시간대에 있었던 인물들이 조우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조우가 주는 뭉클한 감정같은 것도 있으니 주의 깊게 보면 좋을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세 개의 플롯이 만나는 장면은 <인셉션>을 떠올리게 만든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세 개의 꿈이 만나는 클라이맥스의 장면 말이다.

 
더 짚어볼 만한 중요한 장면
김: 집중해서 살펴볼 만한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혹시 그런 장면이 더 있을까.
이: 장면보다는 감독이 왜 무겁고 다루기도 힘든 70mm 필름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이 장비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일반적인 화면비율보다 좌우 전경이 좀 더 넓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화면으로 구현된 장면이 좀 더 사실적인 느낌을 전달한다고 본다.

김: 전쟁의 현장감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인가.
이: 더 큰 효과도 있다. 예를 들면 수많은 병사들이 철수를 위해 바닷가에 늘어서 있는 장면을 통해 당시 영국군의 전세가 수세에 몰리고 있음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또한 이 많은 병사들을 철수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병사들이 신체적으로 겪고 있는 고통 역시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병사 두 명이 들 것을 옮기며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오랫동안 바닷가를 가로질러 가고 있는 초반부 장면이 있다. 그들이 가로질러 가는 영화 속 시간과 관객이 느끼는 시간이 동일하게 표현되다보니 지쳐쓰러지기 직전인 병사들의 신체적 상태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된다. 감독은 신체적으로 고통받았던 병사들의 상태를 실제처럼 전달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아이맥스를 활용하고 있다. 즉 감독은 70mm 아이맥스의 넓은 화면이 스펙터클뿐 아니라 인물들의 신체적·정서적 상태를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데에도 적합할 수 있음을 <덩케르크>를 통해 입증해 보였다.


정리_ 김준수 기자
blueocean617@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