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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절, 과연 여성만의 책임일까요
김수빈 기자  |  ksb9607@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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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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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6일, 청와대가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을 내놨다. 해당 청원은 9월 30일에 처음 게시돼 30일만에 23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동의를 얻었다. 청와대는 처벌 강화 위주의 낙태 관련 정책은 임신중절을 줄이려는 본래의 입법 목적과 달리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임신중절 실태조사부터 시작해 정부 차원의 임신중절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답변했다.

청와대의 움직임으로 인해 ‘낙태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여성단체 및 시민단체들은 지난 2일 세종로 공원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한 2017 검은 시위’를 진행했다. 종교계의 반발도 있었다. 한국천주교회는 지난 3일부터 낙태죄 폐지 반대를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이처럼 낙태죄 폐지에 관한 사회적 찬반 논의가 뜨겁다.

   
 
현행법에는 한계 있어


우리나라에서 임신중절은 범죄다. 형법 제269조에는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한 의사 역시 형법 제270조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임부나 배우자에게 우생학·유전학적인 질환이 있거나 △강간·준강간으로 인한 임신이거나 △임신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등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임신중절을 허용한다.

하지만 현행 법규에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임신중절을 줄이기 위한 본래의 입법 목적과는 달리 처벌 위주의 법규가 오히려 임신중절수술 음성화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임신중절이 법적으로 금지돼있기 때문에 수많은 여성들이 불법업소나 비전문가에게 임신중절수술을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0년 조사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행해진 임신중절수술 추정 건수는 16만8천여 건이지만 이중 합법적으로 수술을 행한 건수는 1만여 건에 불과하다.

예외 허용규정에도 한계가 있다.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에 따르면 합법적인 임신중절수술도 임신 24주 이내인 임부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성폭행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이 임신중절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성폭행 피해 사실이 입증돼야만 한다. 병원은 낙태죄 처벌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거나 수술을 거부하기도 한다. 경찰 조사와 강간죄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수술이 가능한 기간인 24주가 지날 우려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불법수술을 받는 사례도 있다. 또한 성매매로 인한 임신 등 강간 외의 기타 성범죄로 인한 임신은 모자보건법 제14조에 해당되지 않아 임신중절을 할 수 없다.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측은 임신중절로 인해 태아의 생명권이 박탈되므로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행법상에서도 이미 모순이 존재한다. 바로 우생학·유전학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규정이다. 생명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임신중절을 제한하면서도 장애와 질병에 대한 차별은 허용하는 내용이 법 조항에 포함돼있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에 관한 쟁점

낙태죄 폐지 논의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논리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중 어느 것을 더 우선시할 것이냐는 물음이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여성단체들은 여성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당사자인 여성의 선택이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이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임신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국가가 금지하는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한편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임신중절로 인해 태아의 생명권이 박탈당한다고 말한다.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제한되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하여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힌 2012년 낙태죄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이 대표적이다. 위헌의견도 있었다.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임신 유지 여부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고려하지 않는 처사라는 것이다. 하지만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법적으로 태아는 사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임신 24주 이전의 태아는 모체로부터 독립해 살아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한편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대립한다는 이분법적인 시각으로만 임신중절을 둘러싼 논의를 바라봐선 안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임신중절을 둘러싼 문제는 단순히 누구의 권리가 우선되어야 하냐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바라보는 시각과도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보건복지부의 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임신중절 사유 중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답변이 35%로 가장 많았으며 ‘경제상 양육이 어려움’이라는 답변이 16%로 뒤를 이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임신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를 낳아서 키울 사회·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임신중절을 선택하는 것이다.

임신중절에 관한 현행법은 여성에게 임신중절의 책임을 묻는다. 임신을 원치 않았고, 아이를 낳아도 기르기 힘든 상황이지만 합법적으로 임신중절을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임신중절을 할 수 없어서 태어난 아이들을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시키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조국 민정수석은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현행법에는 남성과 국가의 책임이 완전히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와 남성에 대한 책임은 곧 출산과 양육의 책임이 된다. 국가가 나서서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강제하기 전에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사회적 인프라와 인식변화가 우선돼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신중절에 대한 현행법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까. 먼저 차별을 정당화하는 우생학적 임신중절 허용규정을 삭제하고, 보다 넓은 범위의 성범죄를 포함한 임신중절 허용규정을 추가해야할 것이다. 임신주기에 따라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미국의 경우 임신 12주까지는 약물과 수술을 통한 임신중절이 모두 가능하다. 임신 3개월에서 6개월까지는 태아가 어느 정도 성장해 임신중절을 할 시 임부의 건강에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임신중절수술을 할 경우 전문의와의 상담 등 절차를 거쳐야한다.

청와대는 2018년부터 지난 7년간 진행되지 않았던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에도 현재 낙태죄 위헌심판이 제청돼있다. 임신중절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은 바뀌어 가고 있다. 임신중절뿐 아니라 우리사회가 여성의 출산과 육아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점검해야할 것이다.


김수빈 기자 vincent0805@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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