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버다이빙 기획

태국 시밀란 리브어보드 체험기

 
배에서 자는 건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일이었다. 침대는 흔들의자처럼 밤새 앞뒤로 천천히 흔들렸다. 바깥 모습이 궁금해 방 밖으로 나섰다. 문을 열고 나가니 배 갑판으로 나가는 문이 하나 더 보였다. 그 문은 열려있었고, 바다의 모습이 얼핏 드러났다.

밖은 망망대해다. 어젯 밤 푸켓 항구에 도착해 이 배에 탔다. 배는 밤새 달려 육지가 보이지 않는 이곳까지 왔다. 이 배는 지상 3층과 지하로 이뤄져 있다. 1층과 지하를 통틀어 침실이, 그중 1층에는 다이빙 장비를 준비하는 갑판이 있다. 2층은 식사와 휴식을 위한 공간이다. 3층엔 아무것도 없다. 낮에는 햇빛이 강해 올라가 볼 일이 없지만 밤이 되면 별과 바다를 보기 좋은 곳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머물렀던 배에 대한 설명이다.

나는 태국 시밀란의 ‘리브어보드’에 타고 있다. 리브어보드(live a board)는 말 그대로 생활이 가능한 배를 말한다. 그 중에서도 태국 푸켓 근처 시밀란 지역은 리브어보드 다이빙이 이뤄지는 지역 중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서 스쿠버다이빙 중앙동아리 플라잉피시 구성원 12명과 교수님, 이외 10명의 다이버들이 4박 4일 동안 함께 다이빙했다.


첫 번째 다이빙은 체크 다이빙이다. 앞으로 사용할 장비와 내 몸에 이상은 없는지 확인해보는 과정인 만큼 수심이 얕은 초심자 포인트에서 진행된다. 장비를 준비하고 입수할 준비를 마쳤다. 입수 직전 수면을 바라보는데 기대보다는 긴장이 앞섰다.

다이빙은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스포츠인 만큼 팀워크가 중요하다. 절대로 혼자 다이빙하지 않으며, 팀은 리더와 2명씩 짝을 이룬 버디들로 이뤄진다. 버디는 서로의 위치와 상태를 다이빙 내내 확인한다. 리더는 다이빙 경로와 수심, 시간을 계획하고, 팀원들을 챙겨 즐거운 다이빙을 만든다. 하지만 시밀란은 모두가 처음 와보는 지역인만큼, 이 지역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계신 현지 마스터 2분이 예쁜 곳, 멋진 생물이 나타나는 포인트를 콕콕 집어주셨다.

떨리는 첫 다이빙, 함께 바닷속 세계로 입수했다. 바닥은 하얀 모래로 덮여있었고, 햇빛이 쨍했다. 하얀 모래 위로 내 그림자가 비췄다. 물속에서 햇빛이 쨍하다는 표현은 이상하게 들린다. 하지만 햇빛이 있는 다이빙과 없는 다이빙은 확연히 다르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빛이 줄어들어 색깔은 점점 사라져간다. 밤이 되면 땅에서도 색을 구분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원리다. 따라서 바다에 햇빛이 들면 깊숙한 곳의 바다생물과 산호들도 형형색색의 제 색을 보여준다. 이곳은 깊은 곳에서도 바다 본연의 빛을 뽐내고 있었다.

하얀 모래 위에 중간중간 조각상이 놓여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맑은 바다에서 인간의 흔적이 보이니 이질감이 들었다. 누워있는 여자의 조각상을 따라하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12간지를 표현한 조각을 보며 어떤 동물일지 추측해보기도 했다. 볼게 많은 포인트는 아니었지만 햇빛이 이곳을 아름다운 포인트로 만들어 주었다. 편안히 물속을 떠다니며 내 몸을 시밀란의 따뜻한 바닷물에 적응시켰다.

 


배가 든든했다. 다이빙 휴식시간엔 누텔라 바른 토스트 위에 바나나를 올려 아메리카노와 함께 먹었다. 평소 동해에서 다이빙할 땐 매일 점심으로 라면을, 그릇도 없이 종이컵에 나눠먹었다. 물도 2~3병 정도를 담아와 모두가 간신히 나눠 마시곤 했는데, 이게 웬 호사냐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빙 전 브리핑을 들으며 포인트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마스터는 이번 포인트에서는 만타레이와 참치, 잭피시 떼가 자주 발견된다고 말했다.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입수하자마자 바라쿠다 떼가 나타났다. 바라쿠다는 50cm 정도 길이의 은빛 몸에 까만 줄무늬를 가진 물고기다. 입이 뾰족해 우리말로는 ‘창꼬치’라고 불린다. 몇십 마리씩 떼로 다니며 먹이가 될만한 물고기를 에워싸거나 시속 30km의 속도로 유영해 뾰족한 입으로 작은 물고기를 찌른다. 섬뜩한 물고기이지만, 대부분의 수중생물들이 그렇듯 다이버에게는 관심이 없다. 덕분에 바라쿠다 하나하나를 관찰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주변에 사냥할 물고기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지 가만히 대열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아름답고 조그마한 수중생물보다는 커다랗고 떼로 다니는 수중생물들에게 더 경외감을 느낀다. 사람마다 다양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 다이빙의 현지 마스터 쿤 퍼피는 작고 희귀한 생물을 찾아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눈 앞의 바라쿠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쿤 퍼피는 조그마한 갑각류와 갯민숭달팽이를 찾기 위해 바위 사이사이를 수색하고 있었다. 바라쿠다에 더 가까이 가고 싶어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모두의 취향을 존중해야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다 문득 나와 조원들의 남은 공기량을 확인했다. 조원들보다 나의 공기량이 훨씬 적었다. 수면까지 상승할 때 필요한 공기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전체 공기량의 25% 정도는 남기는 것이 원칙이다. 팀으로 이루어지는 다이빙의 특성상, 팀원 전체가 상승해야 한다. 리더는 비상시의 상황을 대비해 공기를 적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리더 교육생인 나는 그러한 부분이 매우 부족했다. 힘들지만 숨을 아껴서 쉬었다. 숨까지 아껴 쉬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러웠다.


2층에 올라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 먹는 내내 배는 달렸다. 리브어보드의 최고 장점이다. 육지에서 다이빙할 경우, 배로 갔다가 다시 육지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먼 포인트에 가기 어렵다. 하지만 리브어보드에서는 휴식시간에 배가 알아서 이동하기 때문에 육지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심지어 모두가 잠든 밤에도 배는 달려서 멀리있는 아름다운 포인트를 가기에 최적이다.

만타가 자주 등장한다는 포인트까지 가는 데에는 2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다들 이전 다이빙을 기록하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망망대해가 좋아서 선글라스를 쓰고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희귀한 수중생물을 찾아다니는 중이라고 생각하니 옛날이야기가 하나둘 떠올랐다. 황금 양털을 찾기 위해 나선 아르고호 원정대처럼 만타레이와 고래상어를 찾아 이 망망대해를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니 즐거워졌다.

그러던 중 먼 수면 위에서 까만 무언가가 튀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나는 말이 생각을 앞선 듯 소리 질렀다. “Dolphin!” 그건 돌고래였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돌고래 몇 마리가 수면 위로 톡톡 뛰어오르고, 대부분은 물위에 지느러미만 드러내며 유영하고 있었다. 돌고래들은 새까맣고 반지르르했다. 돌고래는 지능이 높은 포유류이다. 그래서 배가 궁금해지면 배를 졸졸 따라오기도 한다. 아쉽지만 우리를 보지 못했나보다. 돌고래 떼는 점점 멀어져갔다.

 


수온 28도에서 다이빙하는 게 어떤 일인가. 적도 지역인 이곳에서는 수영복만 입고도 춥다는 생각 없이 다이빙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동해의 경우 봄에는 수온 10도, 여름에는 20도를 넘나든다. 대중목욕탕의 냉탕이 20도 정도라는 점을 생각하면 비교하기 좋겠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다이빙할 때는 5mm~7mm 정도의 두께의 딱 달라붙는 사이즈의 수트를 입어야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매 다이빙마다 두껍고 꽉 끼는 수트를 입고 벗는 일은 쉽지 않다.

이번 포인트는 시밀란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인트라고 했다. 입수하고 하강하자 기대만큼 아름다운 광경이 내 앞에 펼쳐졌다. 높게 솟은 바위 위로 연산호들이 가득 차있다. 그 위로 자잘한 물고기 떼, 큰 물고기 떼가 대열을 이루며 섞여있다. 어떻게 서로 섞이지 않고 바위 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지 신기했다. 조화로운 그 모습이 꼭 한 곡의 음악처럼 느껴졌다. 커다란 트레발리 떼는 함께 산을 타듯이 바위를 오르내렸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 많은 물고기들이 왜 아름다운 이곳에 모여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지 의아했다.

우리 팀은 포인트의 바위 몇 개를 빙빙 돌며 구경했다. 멀리 참치가 지나가기도 하고 대열을 이루고 멈춰서 있는 무시무시한 바라쿠다 떼도 보였다. 32미터 지점에서는 해마를 발견했다. 해마는 생각보다 작은 생물이라 발견하기 어려운 편이다. 말을 닮은 생김새 때문에 크고 힘차 보이지만, 실제 크기는 10cm를 넘지 않는다. 내가 본 해마는 그보다도 훨씬 작았다. 작은 생물을 좋아하는 팀원들이 유독 신나보였다.


매 포인트마다 만타레이와 고래상어로 노래를 불렀지만 여태 보지 못했다. 나는 끝까지 한탕을 노리며 기다려왔다. 우리 배는 만타가 나왔다는 주변 리브어보드들의 소문을 듣고 그 포인트를 찾아가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이쯤 되니 다들 포기하고 다음 다이빙을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이번 포인트는 조금 비어 있는 듯했다. 흰 모래바닥 위에 바위나 산호도 딱히 없고 어두웠다. 이번 다이빙은 심심할까 싶어 카메라를 빌려왔다. 팀원들의 모습을 찍는 재미로 다이빙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왔다 갔다 하다보니 어느새 상승해야 할 공기량이 돼있었다. 미안하긴 했지만, 버디의 호흡기를 빌리는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리더에게 나의 공기량을 알렸다. 리더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그런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리더가 탐침봉으로 공기통을 치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정신없이 모두가 바라보고 있는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만타레이’ 한 마리가 보였다. 만타레이는 2.5m에서 6m 너비의 거대한 가오리다. 양 날개를 우아하게 펄럭이며 유영하고 있었고, 몸통 뒤의 가늘고 긴 꼬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카메라를 꼭 쥐고 무작정 만타레이를 따라갔다.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고 또 맨눈으로 감상했다.

만타레이가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제야 같이 따라온 다른 조원들이 보였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다이빙을 마칠 준비를 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공기가 부족한 상태에서 무작정 만타레이를 따라가다 공기를 다 쓴 것이다. 이미 많이 상승한 상태였기 때문에 10m 정도만 상승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공기량이 0에 가까워지는 게 눈에 보이는데, 희미하게나마 공기가 나왔다. 아마 나같이 위험천만한 사람들을 위해 0에서 조금 더 채워 놓나 보다. 숨은 막히는데 마음은 뿌듯했다. 만타레이라면 이깟 숨쯤은 아껴 쉴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해지는 모습을 감상했다. 시밀란 섬이 보이고 섬 아래로 해가 사라져간다. 맥주 한 캔씩 들고 하나 둘 모였다. 오늘 본 만타레이가 얼마나 컸나, 고래상어를 못 봐 아쉽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또 다이빙 중 누군가 실수해서 웃겼던 이야기, 그 사람을 도와줬던 이야기가 오고 간다. 옮겨간다.

모든 다이빙이 즐겁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수온은 차고 조류도 세서 온 체력을 다 쓰고도 볼 것 하나 없는 끔찍한 다이빙이 빈번하다. 땡볕에 무거운 장비를 다 메고 서있는데 뱃멀미가 일 때면 ‘내가 왜 이러고 있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타레이를 마주치는 짜릿한 기쁨이 있다. 아름다운 바닷속 광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느껴지는 행복이 있다. 쓸쓸한 다이빙을 마치고도 ‘이번엔 정말 힘들었어’ 하며 서로 나눌 이야기가 있다. 내가 다이빙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임하은 기자 hani1532@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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