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전시회를 찾았던 경험을 떠올려보자. 벽면을 가득 메운 그림, 은은한 조명과 함께 혹자는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던, 왠지 작품에서 잠시나마 눈을 때면 안될듯한 정적이 마음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공연은 어떤가. 공연 나름이겠지만 화려하게 꾸민 배우들과 귀를 울리는 배경음악을 감상하면서도 ‘앉아만 있자니 왠지 좀이 쑤신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예술을 즐기기 위해 찾아온 자리에서 이런 불편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 아쉬운 일이다.

참여형 예술(interactive· participatory art)은 이러한 기존의 예술과 그 관람방식에 도전장을 던진다. 참여형 예술에서는 말그대로 관객이 예술에 참여한다. 작게는 관객의 행동에 따라 예술경험의 질이 달라지거나, 예술품이 그 모습을 달리하기도, 크게는 관객들이 예술가 집단이 되어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을 만들기도 한다. 예술작품이 관객을 부르고 관객이 다시 예술작품을 만드는 상호작용 속에서 관객들은 기존에 겪을 수 없었던 깊은 경험을 하게 된다. 예술가들은 관객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나가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어 더 멋진 예술을 기획하게 된다.

참여형 예술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여기에 뉴미디어 작가인 모리스 베나윤은 고대 그리스의 일화를 가져온다. 한 화가가 커튼을 그렸더니 다른 사람이 그것이 진짜 커튼인줄 알고 젖혀보려고 했다는 이야기. 베나윤은 이 화가를 참여형 예술가라고 말한다. 어쨌거나 화가의 그림이  관람자의 행동을 유도했고 그것이 특정한 경험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기록 속에도 참여형 예술가가 하나 있다. 신사임당이 벌레를 그렸더니 닭이 와서 그것을 쪼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 컴퓨터 기술과 만난 한 예술작품. 사람이 지나간 자리를 잔상으로 표현한다.

기술의 발전은 참여형 예술에 날개를 달았다. 옛날부터 예술가는 상상속의 이야기들을 재현하기 위해 연극·영화나 그림·조각품을 만들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예술품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있어 예술가의 전문성, 관객들이 이미 갖고 있는 상상력, 지적 능력 등에 크게 의존했다. 한정된 시공간에서 일방적이고 수동적으로 관객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탓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예술가와 관객들은 더욱더 상상을 현실로 가져올 수 있게 됐다. 큰 어려움 없이 원하는 소품이 마음대로 배치된 무대가 꾸며지거나 블록, 소형 컴퓨터와 카메라를 이용해 앞에 선 사람의 모습대로 모양을 바꾸는 ‘조각품’도 만들어진다. ‘소리를 색으로 바꿔 보여주는 방’, ‘관객의 실제 걸음걸이에 따라 흘러가는 영상’도 마찬가지로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등을 이용한 작품도 속속 나오고 있다. 작품에 참여한 관객들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영상·소리와 함께 현실 속 ‘무대’를 탐험하고 심지어는 ‘가상의 무대’를 즐기기도 한다.

근현대에 이뤄진 사회 기조의 변화도 예술의 변화를 가져왔다. 본디 예술가는 자신의 사상과 메시지를 다양한 형식으로 압축한 뒤 그것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일종의 엘리트 집단이었다. 이는 계급주의 사회의 기조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점점 개인의 자율성이 강조되면서 예술가는 무대 뒤편에서 관중석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미 만들어진 작품을 통해 경험을 얻어가기만 했던 관객들은 이제 자신이 직접 경험을 만들어가게 됐다.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정신이 가져온 참여형 예술을 통해 예술가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쉽고 다양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됐으며 관객도 작품을 통해 더 직관적이고 깊은 경험을 얻게 됐다.

요즘은 국내에서도 여러 종류의 참여형 예술이 눈에 띈다. 참여형 전시를 위한 전시관이 생기기도, 대학로에서는 다양한 참여형 연극이 벌어지고 있다. 교양이 개인의 틀을 넓혀나갈 수 있는 폭넓은 경험을 의미한다고 했을 때, 분명 가만히 앉아서도 충분히 교양을 쌓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직접적인, 더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면 참여형 예술을 관람, 아니 함께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서지원 기자 sjw_10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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