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했던 단어가 우리 사회 전체를 떠돌고 있다. 바로 ‘펜스 룰(pence rule)’이다. 펜스 룰이란 ‘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미국 부통령 펜스가 인터뷰하면서 시작된 단어이다. 즉, 여성과 단둘이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그러한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미투 운동이 세력을 넓혀나가면서, 자신도 펜스 룰을 지키겠다는 남성들의 여론이 늘어가고 있다.

‘여성과 단둘이 있으면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가장 빠른 조치로는 업무 중 여성에게 대면하지 않고 서면이나 메시지로만 소통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불행히도 이는 개인의 판단만이 아니었다. 미투 운동의 여파를 의식한 탓인지 청와대는 해외 출장 등에서 여성을 모두 제외했다. 이는 jtbc에서 보도했듯,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 당시 정부의 정책과 다를 바 없었다. 당시 정부는 섬과 같은 외지에 여교사가 아닌 남교사를 파견하겠다는 해결책을 제시했었다.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오늘날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펜스 룰의 등장을 보니, 여전히 성폭력의 원인을 ‘여성의 존재 자체’로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폭력에는 이를 행사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로 돌리는 고전적인 성차별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 여성이 추가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문제가 발생했으니 이제 여성을 돌려보내겠다는 생각과 다를 바 없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펜스 룰을 주장하는 이유는 ‘내가 하는 행동이 성폭력이 될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슷하지만 정 반대의 예로, 그간 여성들은 ‘저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이 성폭력일지 아닐지’ 고민하며 살아왔다. 미투 운동이 활발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간 남성들이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이유로 묻혀왔던 수많은 성폭력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하자 ‘내가 겪었던 일이 성폭력이 맞구나’하고, 드디어 남성의 기준이 아닌 여성 스스로의 기준에서 성폭력 여부를 판단하기 시작했다. 

이제 한쪽이 아닌 ‘모두’가 고민할 때가 온 것뿐이다. 성폭력의 기준은 행위자의 의식적인 의도에 있지 않다. 남성들이 할 일은 펜스 룰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냐?’하고 판단해왔던 일들이 사실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해왔음을 깨닫는 일이다. 미투 운동을 시작으로 모두의 고민과 배려가 모아져야할 때이다.


임하은 기자 hani1532@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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