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

 
작품의 남주인공 ‘이시다’는 말썽꾸러기 소년이다. 지루한 학교 수업이 끝나면 이시다는 항상 친구들 중심에서 선다. 그러던 어느 날 이시다의 학교에 여주인공 ‘쇼코’가 전학 오게 된다. 청각장애인인 쇼코는 ‘모두와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적힌 노트를 펼쳐들며 처음 보는 반 친구들에게 인사한다. 반 친구들은 처음에 쇼코에게 관심을 가지고 먼저 다가간다. 하지만 흥미가 떨어진 후에는 계속해서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쇼코를 멀리한다. 이시다도 마찬가지이다. 쇼코의 보청기를 창밖으로 던져버리기도 하고 이유없이 물을 뿌리기도 하는 등 이시다의 철없는 장난을 계속하고 다른 친구들은 이를 방관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선 이시다의 심경을 대변하듯 정말 흥겨운 소리가 흘러나온다. 시각적으로는 철없는 장난으로 고통받는 쇼코를 보여주는 가운데, 시각과 청각의 부조화는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함과 동시에 관객이 더 작품에 몰입하게 만든다. 또한 작품은 쇼코가 등장하는 부분마다 편안한 빗소리 등 일상 속의 흔하디 흔한 소리를 계속해서 들려준다. 이를 통해 관객은 쇼코가 이 흔한 소리마저 듣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며 작품에 더 몰입하게 된다.

이후 쇼코가 괴롭힘 당했다는 소문이 교사에게 알려지자 친구들은 모두 이시다를 가해자로 지목한다. 이렇게 ‘나쁜 대상’이 정해지자 이시다는 쇼코가 당했던 꼴을 그대로 당하며 어제까지 친구였던 이들에게 괴롭힘 당한다. 이후 쇼코는 전학을 가고, 이시다는 고등학생이 된다.

고등학생이 된 이시다에게서는 초반부의 활기 넘쳤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쇼코를 괴롭혔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시다는 친구를 하나하나 잃어간다. 결국 이시다는 남들과 제대로 이야기 나누지 못할 정도로 심한 죄책감과 대인기피증을 겪는다. 지난 몇년동안 이시다는 지난 일들에 대해 수군덕거리는 목소리를 눈을 감아도 계속해서 듣게된다. 이시다의 시점에서 주변인의 얼굴에는 모두 가위표가 붙어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이시다가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조차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자괴감에 자살까지 결심한 이시다는 죽기 전,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쇼코를 찾아간다. 특수학교에서 밝은 모습을 찾은 쇼코는 이시다가 자신에게 사과하려고 수화까지 배웠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용서한다. 쇼코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던 친구를 이시다와 함께 찾아나선다. 이 과정에서 이시다는 고립된 후 처음으로 친구를 여럿 사귀게 되고, 이들에게선 가위표가 하나씩 떨어져나가게 된다.
처음에, 이시다는 자신에게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쇼코를 중심으로 모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을 회복하게 된다. 쇼코에게는 냇가의 잉어에게 빵조가리를 던져주는 취미가 있는데, 이것이 작품의 배경을 한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정된 배경은 관객이 과도한 시선의 분산 없이 이시다와 쇼코의 심경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후 단둘이 있을 때 입 밖으로 말을 내뱉지 않았던 쇼코는 이시다에게 어눌한 발음으로 “좋아해(스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달(츠키)’로 잘못 알아들은 이시다는 ‘달? 달이 예쁘네’라고 답한다. 작품의 배경인 일본에서 ‘달이 예쁘다’는 표현이 ‘좋아한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둘 다 서로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 마음이 전해지지 않은 이 대목은 아련하게 다가온다.

수화가 아닌 목소리로 직접 진심을 전하려고 했지만 자신의 마음이 닿지 않은 것을 비관한 쇼코는 발코니 난간에서 투신을 시도한다. 하지만 우연찮게 이를 발견한 이시다는 쇼코를 막으려다가 그만 난간 밖으로 떨어지게 된다.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깨어난 이시다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번에는 자살에 대한 소문으로 주변이 떠들썩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이다. 하지만 막상 찾아간 학교에는 쇼코를 비롯해 자신의 걱정을 해주는 친구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시다는 쇼코에게 용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존재로 자신이 행복해도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어 학생들의 얼굴에서 가위표가 일제히 떨어지며 작품은 막을 내린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엔딩크레딧과 함께 노래 하나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쇼코의 심경을 담은 노래다. 청각장애이었던 쇼코가 작중에서 단 한마디도 시원스럽게 말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각별하다. 노래는 쇼코가 이시다에게 전하고 싶었을 마음과 그 마음을 전하지 못해 답답했을 심경을 연상시키며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노래가 끝나고 작품의 제목인 ‘목소리의 형태’에 대해 생각해봤다. 우리는 세세한 것에 무심해지기 쉬운 바쁜 일상 속에서 ‘목소리의 형태로 된 말’만이 의사전달의 전부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중에서 쇼코는 이시다와 함께 불꽃놀이를 보며 수화로 ‘귀가 아니더라도 느껴져’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는 손짓이나 눈짓으로, 때로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남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목소리에 다양한 형태가 있다면 서로의 진심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목소리의 형태보다는 그 내용에 귀 기울여야하는 것은 아닐까.


서지원 기자 sjw_10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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