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자취, 그리고 사람들

▲ 민주개헌 논의 재개를 촉구하는 교수들의 시국 토론회
‘故 황승원 학우를 아시나요?’
故 황승원 학우는 2011년 7월 2일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다 이마트 냉동 창고에서 질식 사고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반지하 월세방에서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힘들게 살면서도 혼자 공부해 검정고시로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러나 입학금과 등록금을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했고 빚 청산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무리한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이러한 故 황승원 학우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반값등록금이 사회이슈로 부상했다. 당시 총학생회는 반값등록금을 공론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고 민주당 박영선 정책위원장은 9월 15일,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를 선언하면서 “우선 서울시장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서울시립대학교의 등록금부터 반값으로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민주당 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우리대학의 등록금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고 이후 민주당 경선에서 박원순 후보가 야권을 통합하면서 박영선 후보의 ‘반값등록금’ 공약을 이어받았다.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11월 2일 서울시는 우리대학으로부터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해 182억원을 지원해달라는 예산안을 공식 접수했다. 서울시가 이 예산안을 받아들이면서 2012년부터 본격적인 반값등록금이 실시됐고 현재는 입학전형료, 입학금까지 폐지돼 학생들의 금전적인 부담이 점점 더 감축되고 있다.

이처럼 ‘반값등록금’은 길고 긴 노력과 희생의 결과였다.?故 황승원 학우의 어머니는 우리대학 학생들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 그 편지에는 ‘황승원 학우를 잊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메시지와 황승원 학우의 빚 1000만원을 갚아주자던 우리대학 학생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있다. 이러한 노력과 과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서울시립대 학생으로서 누리는 ‘반값등록금’이 얼마나 값진 결과인지를 알 수 있다.


손명훈 수습기자 smm0038@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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