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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선 할머니는 지금도 증언을 계속하고 있다일본군'위안부' 기획
임하은 기자  |  hani1532@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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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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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에움길> 상영 이후 진행된 토크콘서트에서 이옥선 할머니가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이옥선 할머니는 지금도 증언을 계속하고 있다’는 나레이션과 함께 영화 <에움길>의 상영이 종료됐다. 무대가 밝아지고, 이옥선 할머니는 다시 무대에 올랐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 영화<귀향>의 조정래 감독, <에움길>의 이승현 감독이 함께 했다. 지난 20년간 이옥선 할머니의 일상은 끊임없이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또 증언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할머니는 1927년생, 91살이다. 고령의 나이와 세월도 할머니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증언하는 일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수천 번, 수만 번은 더 이야기했을 그날들의 증언이 무대에서 다시 시작됐다.

이옥선 할머니는 15살 때 일본군‘위안부’에 끌려갔다. 태어나보니 나라가 없었고,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13살 때부터 울산의 한 여관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이 보낸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일이 생겼다. “웅장한 남자가 앞에 와서 길을 툭 막는거요.” 할머니는 말을 이었다. “남자가 둘인데, 사복을 입어서 군인인지, 형사인지, 수사인지 모르겠어요. ‘어데가니?’, ‘너 이름이 뭐야?’ 문의도 없이 덮어놓고 한사람이 팔 하나 쥐고, 또 한 사람이 팔 하나 쥐고 이래 무작정 끌고 가는거요. 나는 그래 끌려갔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중국에 갔다.

“열다섯 살이 무얼 압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긴데.” 당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하루에 40명에서 50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했다. 일을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사람을 모아놓고 그 중 하나를 가운데 세워 칼을 그어 죽였다. 폭력이 만연했다. 할머니는 “이놈들이 한 일을 생각하면, 며칠 밤을 이야기해도 다 못해요”라며 마음이 복받친 듯 말을 이어갔다. “열두살, 열세살 짜리는 한 대만 때려도 넘어가 쓰러지는데, 말 안듣는다고 때리고 차고 쓰러서 넘어지는가 봐서 깔고 누워서 칼로 이렇게 가슴을 오려. 가슴을 오리면 뭐가 나옵니까? 피밖에 나오는게 없지요. 이렇게 해놓고 보고 강간을 합니다. 이놈들 잘했는지 보시오. 할 짓을 했는가 하고.”

할머니는 “그래놓고는 (일본이) 우리가 돈벌러 간거라며 사죄를 안합니다”며 “위안부라는게, 우리나라에서 특공부대(에게) 위문품 하나씩 던져주는 것 만키로 한겁니다. 우리가 어째서 위안부(위문품)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는 강제입니다 강제”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한국 딸들 데려다가 몇십만명 죽이고 살아생전에 밖으로 나온 할머니들이 얼마 안됐어요. 다 죽고, 몇이 안남았어요. 그런데도 이놈들이 끝까지 사죄를 안하고 있어요”라고 호소했다.

해방 후에도 이옥순 할머니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돈을 받은 적도 없어 차비도 없었고 길도 몰랐다. 그렇게 중국에서 살다가 2000년이 돼서야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돌아와보니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사망신고가 돼있어 국적도, 주민등록증도 가질 수 없었다. 할머니는 “우리 엄마가 나 없어졌다는 소리 듣고 한국 이판을 다 돌아댕기며 찾았으요”라며 “중국 가 있는 사람이 한국에 어떻게 있겠어요? 그래서 집에서는 ‘우리 옥선이는 누가 어디로 데려가 죽였나보다’ 하고 사망 신고를 해버렸어요”라고 했다.

1년 6개월 간의 법정 공방을 통해 국적을 되찾았지만, 고국은 이옥선 할머니에게 싸늘했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자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우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도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에 대한 언급 없이 돌아왔고,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항의 시위를 위해 나섰다. 그러나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항의 시위를 하러 가려고 했는데, 경찰이 그걸 먼저 알고 마을 가운데 길을 파내버려서 나오지를 못했다”며 이옥순 할머니는  그런 정부의 태도에 화가 나서 힘들게 얻은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정부는 할머니의 접수를 거부했다.

영화 <귀향>에서 다나카 역을 연기한 배우 이승현 씨는 영화 <에움길>의 감독이 됐다. 다나카를 연기하면서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알게 됐고, 이후 영화 제작사에 계속 참여해 2000년대부터 촬영된 할머님들의 영상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됐다. 이 감독은 “나눔의 집 안에서 할머니들의 소소한 삶과, 아픔을 가지고 살아오시면서 느끼셨던 감정을 영화에 녹이려 했다”며 소감을 밝혔다. 자리에 참석한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은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위안부 영화를 만들 것이다”는 다짐을 드러냈다.

꼿꼿이 걸으며 나눔의 집 할머니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던 영화 속 이옥선 할머니와 수만 번은 반복했을 할머니의 마지막 부탁이 떠오른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죄를 받겠습니까? 우리 할머니들 죽기 전에 사죄 받을 수 있게 힘 써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글·사진_ 임하은 기자 hani1532@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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