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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걷기’의 재발견 : 워킹 시뮬레이터 -2
서지원 기자  |  sjw_10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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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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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석양은 주위의 낙엽들보다도 붉다. 태양 앞으로 새 때가 날아간다. 그 자리에는 어느덧 찾아온 밤하늘의 별들이 놓인다. 그리고 게임을 하면서도 조작키에서 손을 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Firewatch는 산 속에 지어진 감시탑 형태의 오두막에 상주하는 산림 감시원의 이야기를 그린 게임이다. 게임은 주인공에게 산림 감시원이라는 다소 생소한 직업을 부여함으로써 게이머가 홀로 자연 속을 탐험하는 것에 당위성을 부여해 준다. 하지만 동시에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언덕 너머 다른 감시탑에 상주하며 주인공에게 종종 말을 걸어오는 인물을 등장시켰다. 이들은 게이머가 무전을 수락한다면 언제든지 주인공과의 대화를 통해 게임의 세계관을 직접 말해주거나 게이머가 추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이 게임의 배경은 1980년대 미국으로, 이는 대화에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언급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이 게임에 주요 스토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산 속의 쓰러진 송전탑의 위치를 보고하는 등 게임에 주어진 목표를 완료해 나가면서 주인공은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을 느끼거나 누군가가 캠프장을 훼손한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이 때마다 게이머는 산 속에 홀로 남은 주인공이 느낄만한 섬뜩함이나 다급함을 공유하면서도 의문의 존재를 추적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언제든,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 언제든지 넓디 넓은 산 속을 탐험하며 지도에 나와있지 않은 낡은 오두막을 찾아보기도, 울창한 나무숲 사이에서 너구리를 찾아볼 수도 있다. 산 속에는 개발진이 숨겨놓은 각양각색의 이스터 에그가 숨어있어 탐험의 재미는 배가 된다.

   
 
기숙형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주인공은 우연한 계기로 초능력을 얻는다. 바로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주가를 조작하거나 복권에 당첨되기 위해 능력을 사용하기 보다는 때때로, 소소한 선택에 후회가 남을 때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능력을 사용한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 계속해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건 어렵다. 주변의 친구가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면, 이번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불행이 닥쳐오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능력은 가장 최근의 선택을 결정한 시점으로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고 이는 게이머가 심사숙고하며 덜 나쁜 일을 선택하게 만든다. 선택은 또다른 선택을 낳고 이를 반복하다보면 게임은 어느새 엔딩을 맞는다.

웬만한 소설만큼이나 탄탄한 인물의 감정 묘사와 플롯은 게이머가 엔딩에 다다를 때마다 하나의 좋은 소설을 읽었다는 느낌을 선사한다. 하지만 장면 묘사를 계속해서 신경쓰며 감상해야 하는 소설과는 달리, 게이머에게 이미 주어진 게임 속 풍경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기 충분하다.

따라서 게이머는 인물간의 대화 그리고 그 너머의 감정을 느끼고 상상하는데 더욱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비롯되는 게이머의 판단과 선택은 게임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나간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듯 선택을 크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어쨌거나, 또 어떻게든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쉘터는 파스텔 톤의 자연 풍경으로 게이머를 초대한다. 이 자연 속에서 게이머는 무려 한 마리의 어미 족제비가 된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다양한 직·간접 체험을 하게 되지만 족제비로서의 삶은 좀처럼 체험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게임은 특이하다. 사실 게이머가 체험하는 족제비로서의 삶은 정말 간단하다. 자연 속을 기어다니며 먹이를 찾고, 위험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간단하다고 쉬운 것은 아니다. 낮에는 눈앞에 맹금류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밤에는 맹수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사람의 무릎에 겨우 닿는 야트막한 냇가는 족제비에겐 범람한 강과 다름없다.

쉘터 역시 다른 워킹 시뮬레이터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대충 만든 게임이 아닌, 의도적으로 불필요한 요소를 배제한 게임이다. 게임 잡지 가마수트라와의 인터뷰에서 제작진은 “처음에는 게임에 구현하고 싶은 다양한 요소가 있었지만 (게임의 콘셉트를 위해) 지워버렸다”며 “게이머들에게 게임을 단순히 플레이하는 것이 아닌 (게임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밝힌 게임의 목표는 ‘야생 속의 동물의 삶, 동물이 어떤 감정을 가지며 살아갈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개발자의 철학으로부터 탄생한 쉘터는 현실보다는 그림에 가까운 게임 장면도 충분히 사람들에게 다양한 감정과 몰입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어쩌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지원 기자 sjw_10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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