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이용해 게임 개발이 이뤄진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게임은 소위 ‘공돌이’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자신들의 취미를 반영한 게임이 부족한 것이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게임 TIS-100의 소재는 바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다.

TIS-100에는 게임 진행에 있어 핵심이 되는 스토리가 없다시피하다. 예술성을 강조한 게임처럼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게임 화면에는 그저 게이머가 풀어야 하는 문제와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텍스트 편집기가 놓여있을 뿐이다. 게이머는 두 숫자를 더하거나 빼는 등의 간단한 명령어(어셈블리)만을 이용해 곱셈과 나눗셈이 가능한 계산기, 소수 찾기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한다.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면 ‘입력값’에 대해 올바른 ‘출력값’이 나오는지 검증을 거치고 모든 값의 검증이 끝나면 퍼즐의 다음 단계가 제시된다.

이 게임은 일반 게이머들뿐만 아니라 이미 프로그래밍에 익숙한 공돌이들에게도 새로운 유희를 선사한다. 게임 속 프로그래밍은 극히 제한된 명령어만으로 동시다발적으로 계산을 수행하게 되는, 일반적으로 접해볼 일이 없는 병렬 프로그래밍 환경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중하게 잘 설계된 게임에서는 각 단계마다 문제풀이에 있어 새로운 종류의 제한이 걸려있고 게이머는 문제를 풀어나가기 전 제작자의 의도를 파악해 큰 밑그림을 그려나가야만 문제를 수월하게 풀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레고 블록을 쌓아나가듯 시행착오를 겪으며 명령어 하나 하나를 추가해나가다가 문제를 풀어내는 순간 찾아오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눈을 떠보니 어두침침한 성 속에 혼자 남겨져 있다.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니 기괴한 문양들이 그려진 벽면과 탈출구로 보이는 듯한, 지금은 잠겨있는 문이 있다. 문양에 손을 갖다 대니 문양이 빛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저것 짚이는 대로 손을 대다보니 모든 문양에서 빛이 사라졌다. 아마 적절한 문양만을 골라내야 문이 열릴 듯한 직감이 든다. 하지만 문양은 스무개나 돼서 모든 문양 조합을 시도해볼 수는 없다. 그런데 손에는 무전기가 하나 들려있다. 혹시나 누군가 답해줄까 하는 희망에 무전기를 켜고 내가 처한 상황을 말해본다. 잠시 후 그 퍼즐을 푸는 방법을 알아냈다는 목소리에 희망을 찾고 문양을 하나하나 골라 나간다.

위는 게임 ‘We Were Here’의 콘셉트다. ‘We Were Here’에서는 두 플레이어가 완전히 독립적인 공간에서, 그 흔한 채팅 기능도 없이, 두 명이 동시에 말을 나눌 수도 없는 무전기를 이용해 협력해 나가야한다. 한 명은 모험가로서 실제로 퍼즐과 조우하는 역할을, 다른 한 명은 자료실에서 모험가가 처한 상황을 전해 듣고 자료실을 뒤적이며 그 퍼즐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는지 조사·전달해야한다. 이때 여타 게임과 달리 모험가에게는 퍼즐을 풀 수 있는 아무 단서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두 게이머의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다. 처음 주어지는 퍼즐에는 아무런 시간제한이 없지만 단계를 두 플레이어에게는 강한 시간제한이 걸린다. 지하실에 물이 차올라 익사하려는 순간 밸브를 잠그는데 성공하거나 추위로 몸이 얼어붙어 시야가 흐려지는 가운데 퍼즐을 풀어내는 짜릿함은 친구와 함께 즐겨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외국인과 즐겨도 무방하다.

 
테트리스가 퍼즐 게임에 액션 등의 요소가 추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이후 반대로 다른 장르의 게임에서 퍼즐 요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Trine’은 슈퍼마리오, 메탈슬러그 등으로 대표되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에 상상력과 직관력을 요구하는 퍼즐 요소가 적극적으로 도입된 사례다.

게임에는 전사, 도적, 마법사 3명의 캐릭터가 등장하며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며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캐릭터를 교체할 수 있다. 판타지 풍의 게임 속에서는 물레방아, 사람보다도 더 큰 나무덩굴, 상자 더미, 회전하는 톱니바퀴 등 상호작용할 수 있는 수많은 물체들이 있다. 플레이어는 물길을 돌려 물레방아를 돌린 다음 물레방아 위에 올라타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도 덩굴에 물을 줘 ‘잭과 콩나무’처럼 덩굴을 키워나가기도 하는 등 게임 속의 요소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끊임없이 이른바 즐거운 스트레스를 겪게 된다.

한편, 플레이어는 어떤 캐릭터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을 다양한 방법으로 타개해나갈 수 있다. 염력과 같은 신비한 힘을 이용해 물체를 이동시키거나 마우스로 그리는 대로 상자, 널빤지를 불러낼 수 있는 마법사, 로프를 이용해 물체에 매달릴 수 있는 도적, 방패를 이용해 떨어지는 물건에도 피해를 입지 않는 전사 등 플레이어는 다양한 캐릭터를 이용하며 ‘이번 퍼즐은 어떻게 풀어나갈까?’하는 즐거운 고민을 해나가게 된다.


서지원 기자 sjw_10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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