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같은 끔찍한 비극 뒤에도 우리의 삶이 계속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천재지변, 테러, 질병과 같은 일을 겪고 나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대체로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섣부르게 짐작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컬럼비아 대학교 임상심리학자 조지 보나노(George A. Bonanno) 교수는 가까운 친구나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정서반응을 연구하면서 이러한 기존의 통념을 뒤엎는 결과를 발견합니다. 연구결과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 중 일부는 괴로움을 쉽게 극복하지 못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지 않고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아무리 끔찍한 비극이라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의 비율은 3분의 1을 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심리적 항상성, 회복탄력성

앞선 연구결과는 ‘회복탄력성(Resil ience)’이라는 개념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학자에 따라 조금씩 견해가 갈리기는 하지만 회복탄력성은 일반적으로 ‘곤란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고 환경에 적응하여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능력(Anthony, 1987)’이라고 정의됩니다. 넘어질듯하다가도 결국 바로 서는 오뚝이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 하버드 그랜트 연구’에서 방어기제 사용양태를 조사한 결과, 우울증이 심한 대상자들은 대체로 미성숙한 방어기제(반동형성, 투사)등의 사용빈도가 높게 나왔다. 반면, 우울증이 적은 대상자들은 억제, 이타주의 등 성숙한 방어기제의 빈도가 높았다.

마음을 지키는 방패, 방어기제

1939년, 하버드대학교에서는 자교생 268명을 포함해 총 814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전 생애에 걸친 발달과정을 연구하는 ‘하버드 그랜트 연구’을 시작했습니다. 이 연구는 현재까지 약 80년 동안 지속되면서 많은 연구결과를 내놓았는데요, 가장 주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는 ‘성숙한 방어기제’라는 용어를 확립한 것입니다.

‘방어기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였으나, 이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린 사람은 그의 딸 안나 프로이트였습니다. 안나 프로이트는 그녀의 저서 『자아와 방어기제』에서 방어기제를 총 10가지로 분류하고 바람직한 방어기제의 예로 ‘승화’를 제시합니다. 승화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생각이나 감정을 더 높은 차원에서 건설적인 방향으로 표출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자신의 실연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을 써내려 간 괴테나 본인의 비극적인 가정사를 배경으로 한 『밤으로의 긴 여로』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진 오닐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숙한 방어기제’는 여러모로 승화와 유사합니다. 두 개념 모두 비극 그 자체보다 비극을 받아들이는 주체들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실패 앞에서 슬픔만을 느끼고 말 수도 있지만, 실패를 다르게 해석하려는 시도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낼 수도 있습니다. ‘하버드 그랜트 연구’는 ‘성숙한 방어기제’가 잘 발달한 사람들이 결혼생활에서 더 행복하고, 사회적으로 더 활발히 활동하며, 삶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음을 밝혀냈습니다.

아픈만큼 성숙해지고, 외상 후 성장

니체는 ‘나를 죽이지 않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 말이 모든 역경이 바람직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결국 니체가 자신을 괴롭힌 정신질환을 극복하지 못했듯이,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외상을 남기는 역경들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외상 후 성장’이라는 심리학 개념을 고려하면 우리는 니체의 말에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습니다. 외상 후 성장은 “인간이 살면서 경험하는 매우 도전적인 상황에 투쟁한 결과 얻게 되는 긍정적 심리적 변화(Tedeschi, 1996)”를 지칭합니다.

우리는 역경을 통해 고통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습득한 정서조절 능력은 향후 발생한 부정적 정서 경험에서 인지능력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돕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 미국 바드대학교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하버트(Hulbert JC) 교수는 트라우마가 자제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앞선 심리학 개념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는 간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 마음은 사건을 건설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나름의 면역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 우리 마음은 우리 생각보다 튼튼합니다.

김세훈 수습기자 shkim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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