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종로구와 중구 일대는 고층 빌딩을 신축하기 어려운 곳이다. 이 일대가 조선시대 500년 내내 수도의 역할을 했다는 이유가 크다.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파는 족족 귀중한 유적과 유물이 산더미같이 나오기에 이에 대한 보존 문제가 항상 제기됐다. 특히 도시경관에 대한 역사성의 보존이 중요한 화두가 된 2000년대 이후 건축주와 해당 관청, 그리고 문화재 관련 종사자 간에 갈등이 일기도 했다.

종로1가 부근인 종로구 공평동에 위치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하 전시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본보기가 되는 곳이다. 지난달 12일 개관한 전시관은 2010년대 이후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종로1가 부근 3,300m² 규모의 도시유적을 그대로 복원해놓았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1번 출입구에서 조계사 방면으로 걸어가다 보면, 검은색 신축 빌딩이 보인다. 전시관은 빌딩의 지하 1층에 있었다.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유리 데크 밑의 유적이 눈에 보였다. 이곳은 기존의 전시공간과 달리 직접 유적의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면서 관람할 수 있었다. 한편, 전시공간의 입구 부근에는 공평동 지역의 재개발사업이 시작된 이후 이 전시관이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 종로구 공평동 센트로폴리스 빌딩 지하에 위치한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지난 9월 12일 개관했다.
전시관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VR(가상 현실) 기술을 전시공간과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건물의 주춧돌이나 담장의 돌무더기만 남은 유적의 특성상 관람객들이 유적의 원형을 쉽사리 연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VR 기술을 통해서 유적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VR 기계 부스 앞은 전시를 보러 온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또한 전시관은 유적이 있었던 건물에 얽힌 이야기를 곳곳에 게시해놨다. 시장 터에서는 조선시대 가장 번성한 상점가였던 시전 상인들의 생활상을, 일제강점기 종로의 화신백화점 등 근대 건축물을 설계한 조선인 건축가 박길룡의 설계사무소 자리에서는 그의 일생을 다뤘다. 이에 더해 유적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도자기 파편이나 청동 화로는 당시 생활상을 실감나게 보여줬다.

전시관을 둘러보던 중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건물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지하 1층을 고스란히 전시공간으로 내주면서 많은 손해를 감수했을텐데, 이 과정에서 어떤 협의가 있었을지 궁금했다. 그에 대한 해답은 바로 전시관이 위치한 빌딩의 지상 부분에 있었다. 관할 관청인 서울시와 종로구에서 지하 1층을 전시관으로 전용하는 대신 지상층 4층을 더 지을 수 있도록 허가해줬다는 것이다. 건축주와 관할 관청 사이의 ‘빅 딜’이 공평동 유적을 살린 것이다.

‘공평동 룰’이라 불리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의 사례는 서울시내 중심부를 재개발하면서 발생하는 유물 및 유적 보존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만 여전히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가 있다. 먼저, 건축주에게 무리한 비용 부담이 지워지는 것이다. 신축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유적이나 유물이 나왔을 때 공사를 중지하고 이를 발굴조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가 클 뿐만 아니라 보상 금액이 그에 비해 매우 적다. 또한 이번 합의는 제도적인 장치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해 당사자들의 협의만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러한 합의와 관련된 제도의 보완이 요구된다.


글·사진 한승찬 기자 hsc703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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