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고 있던 젊은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숨졌다. 20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의 죽음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책임을 져야 하는 쪽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하청업체가 고용한 것이라고, 피해자의 과실이 더 크다는 사고 관련자의 궤변은 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2018년 9월, 김천문화예술회관에서 또 다른 청춘이 스러졌다.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유학 경비를 스스로 벌기 위해 조연출로 일하던 우리대학 대학원생은 안전장치 없는 무대에서 변을 당했다.

이번에도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기시감을 느낀다. 취재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며 느꼈던 감정이었다. 사고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쪽에선 답변을 회피하거나 불성실한 답변을 했다. 책임을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전가해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느낌이 들었다.

2016년 사고가 있은 후 우리 사회는 고질적이었던 안전불감증을 근절하기로 다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또한 불의의 사고마다 언제나 고개를 들었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외침을 기억한다. 이번 사고의 본질은 ‘안전규정을 어긴 사업장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책임을 져야 할 쪽이 책임을 회피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우리들은 ‘안전규정에 대한 철저한 준수’와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이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한창 자신의 꿈을 피우는 청춘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분명 비극이다. 우리는 자신의 꿈을 좇아 성악을 공부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었던 성악가 하나를 잃었다. 분명 애석한 일이다. 꽃피우지 못하고 스러진 청춘의 꿈은,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한승찬 문화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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