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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파주출판도시를 거닐다‘2018 책의 해’ 특집
글·사진_ 김세훈 기자  |  shkim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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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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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해’를 맞아 기자들은 책이 만들어 온 발자취를 확인하고, 책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고, 앞으로 책이 만들어갈 새로운 가능성들을 탐사해보았다.  -편집자주-

   
 
파주출판도시의 첫인상

파주출판도시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몇몇 특색있는 건물들이 기자들을 반겨주기는 했다. 하지만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곳은 출판‘도시’라기보다는 출판‘단지’에 가까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넓었다.

목가적이면서도 오밀조밀한 서울 외곽 관광지를 생각했다면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광활함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눈에 띄는 표지판이나 지도도 없었기 때문에 기자들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 무작정 걸어야 했다. 파주출판단지는 2007년 출판, 인쇄, 유통 등을 담당하는 250여개 업체들이 입주하면서 처음 문을 열었다. 초창기에는 말 그대로 출판에 종사하는 업종들을 모아놓은 ‘단지’였으나 최근에는 출판사들이 자체 운영하는 갤러리와 서점, 카페 등을 통해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하지만 파주출판도시가 관광지로서 특별한 장점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체험의 장소가 빈약했다. 활자박물관이나 출판정보센터 등 소소한 볼거리들이 있기는 했지만 드넓은 공간에 비해 즐길만한 콘텐츠는 많지 않았다. 출판사와 인쇄소들은 각자의 업무를 처리하기에 바빠 보였다.

   
▲ 출판도시 중심길. 자동차 몇 대씩 지나다니는 걸 제외하면 사람의 모습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 출판도시에는 이처럼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카페와 서점, 갤러리가 스무 곳 남짓 된다.
‘분위기’는 있으나 아쉬운 북카페

이러한 한계를 의식한 듯 상당수의 출판사들은 자체 서점이나 북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다만 아쉽게도 기자들이 방문한 날은 평일인데다 징검다리 연휴였기 때문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어떤 북카페는 연휴를 활용해 재단장을 한창 진행 중이었다.

도심 속 북카페들은 전원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독특한 인테리어를 채택하는 등 여러 수단을 강구하지만 출판도시 내의 북카페들은 주변 환경 자체가 전원적이므로 자연스럽게 고즈넉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제외하면 내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서울의 북카페나 동네서점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넘치는 시간을 활용해 분위기에 한껏 취해볼 생각이 아니라면 굳이 책을 보러 파주출판단지를 방문할 필요가 있을까.

   
▲ 출판도시를 거닐다보면 이런 귀여운 모양을 한 건물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문화와 지식의 전령, 출판사

출판도시는 ‘건축’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애초에 출판도시의 설립 목적 중 하나가 ‘출판’과 ‘건축’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출판도시 홈페이지의 소개란에 따르면, “책 만드는 일이야말로 건축하는 일과 흡사”하며 “출판도시는 저마다 스토리가 있는 독특한 건축물로 채워지는 하나의 커다란 건축전시장”라고 소개돼 있다.

확실히 출판사 건물들은 올망졸망 모여 자신의 정체성을 뽐내고 있었다. 유리와 대리석을 통해 현대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건물 맞은편에는 중세 성당을 연상시키는 건물이 벽면에 넝쿨을 잔뜩 휘감고 있었다. 출판사의 업무환경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몇몇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어떤 곳은 휴무였고, 또 다른 곳은 너무 바빠 인터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미리 연락을 하고 방문했어야 했다고 자책하던 와중, ‘21세기 북스’ 출판사에서 인터뷰를 승낙해줬다. 남정연 편집자는 기자들의 두서없는 질문들에도 침착하게 답변했다.

책이 만들어지는데 걸리는 기간을 묻는 질문에 남정연 편집자는 “작가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책의 기획 단계부터 완성까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가 걸린다”라고 말했다. 책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질까. 남정연 편집자에 따르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이미 잡지나 신문에 기고된 글들을 모아 묶어 내는 것이다. 둘째로는, 출판사에서 책의 콘셉트를 정하고 이에 맞는 저자를 섭외하는 방법이 있다. 남정연 편집자는 출판사에서 저자를 섭외하는 경우 주로 교수와 같은 전문가를 섭외한다고 귀띔해주었다. 그 밖에 투고 형식으로 들어오는 글들도 있지만 실제 책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책의 해를 맞아 출판시장이 더 활성화 된 것을 체감하는 지에 대해, 남정연 편집자는 “아무래도 여러 행사들이 있으면 사람들이 좀 더 모이기는 하겠지만 수치상으로 체감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며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문득 책과 동거동락하는 편집자의 입장에서 좋은 책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남정연 편집자는 “독자가 선택해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1년에 수백 종의 책이 나오는데 이 중 독자와 만나는 책들은 극소수다.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책이 결국 독자와 만나지 못하면 저자와 출판사 모두 보람을 느끼기 어렵다. 책은 결국 읽히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독자들이 읽어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편집자가 생각하는 좋은 책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도 출판계 종사자에게 들으니 새로웠고, 그 동안 잘못 알고 있었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어 유익했다. 우리는 질문에 세심히 답해준 편집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출판사를 나왔다.

   
▲ 늦은 오후가 되었건만, 인쇄소는 책과 종이를 실어 나르는 차들로 붐빈다.
도서제작공장, 인쇄소

출판사에서 착상된 아이디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인쇄소라는 산실을 거쳐야 한다. 인쇄업자들은 책의 산파다. 파주출판단지에서 인쇄소를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자신을 한껏 드러내는 출판사 건물들과 달리 인쇄소 건물들은 수줍은 듯 도로변에서 등을 돌리고 출판사 뒤편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쇄소의 경우 내부시설이 외부로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기 때문에 이러한 배치는 전략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인쇄소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외부로 기술이 유출될 수 있으므로 어렵다’는 답변을 들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짧게나마 구경한 인쇄소 내부는 생각보다 번잡했다. 아직 책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종이뭉치들과 기계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책이라는 것이 그저 종이를 차곡차곡 쌓아서 묶어내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육중한 장비들이 내는 둔탁한 기계음으로 가득 찬 인쇄소 안 풍경은 출판이 왜 제조업으로 분류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밖에서는 지게차가 분주히 종이들을 나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책의 텍스트는 잠시 뒷전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인다. 인쇄소에서 담당하는 것은 책의 물성이다. 책의 ‘종이가 백색모조인지, 미색모조인지’, ‘판형이 국배판인지, 신국판인지’와 같은 것들이 인쇄소의 주된 관심사다. 가장 효율적으로 제작단가를 맞추기 위한 계산도 필수이다. 인쇄소라고 해서 다 같은 인쇄소가 아니다. ‘인쇄’만 담당하는 소규모 인쇄소부터 인쇄, 제본, 제책 등 책 제작 전반을 전부 다루는 대규모 인쇄소까지 다양하다. 완성된 책을 담은 종이상자들이 인쇄소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이 책들은 이제 트럭을 타고 물류창고로 이동해 전국 각지로의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 출판도시를 가로지르는 작은 하천,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 지혜의 숲 도서관을 들어가면 보이는 통로. 벌집이 연상된다
도서관은 진화 중

완성된 책의 일부는 서점뿐 아니라 도서관으로 향하기도 한다. ‘지혜의 숲’ 도서관은 출판도시에서 그나마 가장 볼거리가 많은 장소에 속한다. 장서 50만권이 8m의 높다란 서재에 빼곡이 꽂혀있는 모습은 보는 사람을 압도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단순히 시각적인 효과 말고도 이 도서관에 두 가지 눈여겨볼 점이 있다.

첫째는, 도서관의 분위기다. 이곳에서는 다른 도서관과 같은 정숙함과 엄숙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서재로 둘러싸인 통로를 통과하고 나면 탁 트인 공간에 테이블과 음료 매대가 있다. 흡사 카페를 도서관 안에 이식해놓은 것 같다. 소음에 민감한 일반 도서관과 달리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도 ‘지혜의 숲’ 도서관의 특징이다. 도서관 한 켠에서는 종종 음악 페스티벌이나 인문학 강연이 진행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복합문화공간이다. 아마 책이 사람들과 유리되기 시작한 데에는 책이 가지고 있는 ‘엄숙주의’가 한 몫하지 않았을까. 책이 반드시 심오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기 위해 반드시 조용한 장소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책이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일상과 가까워지려고 하는 모습이 반가웠다.

두 번째는 독특한 도서 분류 방식이다. 누군가는 이 도서관을 두고 ‘종이 무덤’이라고 혹평했다. 도서관이라는 명칭에 맞지 않게 전문 사서가 없고, 도서검색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다리차를 이용해야만 올라갈 수 있는 높이에 있는 책들은 대부분이 몇 년이 지나도 사람의 손길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색다른 도서 분류방식은 이 도서관에서 책은 단지 ‘패션’이 아니냐는 의혹을 짙게 만든다. 서가에 꽃혀 있는 책들의 대부분은 기증도서들이며, 기증자(기증기관)별로 분류되어 있다. 기증자는 교수와 같은 개인에서부터 연구소, 출판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문제는 이러한 배치가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우리나라 도서관의 도서들은 흔히 ‘총서’로 시작해 ‘철학’,‘종교’,‘사회과학’,‘과학’,‘공학/의학’,‘예술’,‘언어’,‘문학’,‘역사/지리’로 이어지는 십진분류법에 따라 분류된다. 이 분류법은 체계적이고 효율적이다. 그렇기에 서점이나 출판사에서도 이런 구분에 따라 책을 분류하곤 한다. 따라서 십진분류법을 따르지 않은 이 도서관의 분류방식이 불친절하다는 오명을 뒤집어써도 딱히 할 말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방식을 벗어난 도서 분류가 모두 혹평을 받는 것은 아니다.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서점으로 유명한 일본의 ‘츠타야 서점’은 기존의 분류법을 살짝 변형해 책들을 배치한다. 예를 들어, 패션-디자인-인테리어-건축-리빙-자동차 등으로 이어지는 배치는 하나의 유기적 흐름을 만들어 특정 분야의 관심을 가진 고객들을 잡아끈다. 우리나라의 ‘최인아 책방’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지금 삶이 고단한 분들을 위한’, ‘고민이 깊어지는 마흔 살들에게’,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인 그대에게’ 등 이 이 책방의 분류명이다. 이것이 서점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분류는 아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방황하는 독자들을 사로잡기 위해서 책은 딱딱한 기존의 분류법이 아니라 이와 같은 고객맞춤형 분류법을 필요로 할 것이다.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하늘에 노을이 졌다. 넓은 공간을 이리저리 배회하다 보니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앞서 말했듯 출판단지의 ‘도시화’는 아직 진행형이므로, 누구에게나 선뜻 추천할만한 장소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곳에서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단, 길거리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꼭 미리 계획을 짜서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글·사진_ 김세훈 기자 shkim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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