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다란 뼈대와 거칠거칠한 외양은 자코메티 작품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조각들은 어딘가 병리적인 느낌을 풍긴다. 이에 대해 유명 미술평론가 데이비드 실베스터는 자코메티의 조각들이 산업사회에서 소외된 인간들의 고독과 욕망을 나타내고 있다고 평했다. <가리키는 남자>는 자코메티의 대표작 중 하나다. 한 남자가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다. 허약해 보이는 외양과 달리 그의 손짓에서는 어떤 단호함이 묻어나온다.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과 연결지어 본다면 이 남자를 ‘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길잡이’로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문학평론가 G.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면서 갈 수 있고 또 가야 할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한다. 이 말이 지금까지 널리 회자되는 이유는 현대사회에서 가야 할 길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은 이러한 현실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던져준다. 남자는 걷고 있다. 어디로 걸어가야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걷는다. 꼭 가야할 길을 알아야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코메티가 18일 동안 그려낸 제임스 로드의 초상화. 얼굴에 음영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는 특히 얼굴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 집착했다. 자코메티는 생전 “‘인간의 영혼을 조각에 담을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머리가 인간의 ‘생명력의 근원지’라 믿었기에 머리와 눈을 강조하여 표현하였습니다”라고 자신의 예술적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자코메티에게 초상화는 단순한 그림 그 이상이었던 것 같다.

 
김세훈 기자 shkim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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