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88/18>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이벤트 중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가장 크게 바꾼 이벤트를 꼽자면 단연 1988년에 개최된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임을 부정할 수 없다. 2018년은 88올림픽이 개최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로, KBS에서는 올림픽 개최 30주년을 기념한 다큐멘터리 「88/18」(연출 이태웅)을 방영했다.

이 다큐멘터리의 특징은 내레이션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독특한 타이포그래피와 KBS가 소장하고 있던 1980년대의 영상자료만을 교차편집했다. 방대한 양의 영상자료를 편집해 마치 시청자가 1980년대를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며 올림픽이 유치되고 개최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가감없이 제시했다.

정권을 장악한 제5공화국은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국민들의 눈과 귀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올림픽 유치를 추진했다.80년대 내내 사회에서 여러 불만이 생길 때 으레 나왔던 논리는, ‘올림픽이 코앞인데, 잠자코 있어라’ 였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의를 할 때에도, 점차 커져가는 민주화의 열기 앞에서도, 잠시 성화 봉송로로 사용된다는 이유로 내쫓길 처지에 놓인 도시 빈민에게도 이 말은 마치 ‘전가의 보도’ 처럼 사용됐다.

 
 
그러나 정권의 의도와는 다르게, 올림픽은 우리 사회의 진일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장기 집권을 노렸던 정권에 대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을 또다시 무력 진압하려던 정권은 그럴 수 없게 됐다. 올림픽으로 국제 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유혈 진압을 하게 된다면 올림픽을 그르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공산 진영에게 자유 진영의 승리를 과시하려던 미국은, 전두환의 장기 집권 야욕에 대해 결정타를 날렸다. 결국 올림픽은 우리 사회에 민주화를 앞당긴 촉매의 역할을 했다. 의도와 다르게 결과가 나타난 것을 보며, 우리는 이것을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부른다.

다큐멘터리에는 올림픽이 역사의 아이러니로써 작용한 또 하나의 모습이 나온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역사적인 개최식 영상에서, 개회 선언을 위해 등장한 사람은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였다. 카메라는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개회 선언을 하는 노태우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귀빈석에 앉아 있는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얼굴을 비춘다. 민주화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권력 욕심이 지나쳐 다시금 정권을 놓친 이들의 모습을 보면 쓴웃음을 짓게 돼 마치 블랙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

80년대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을 올림픽과 연관짓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다. 하지만 올림픽 없이는 80년대 한국 사회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올림픽을 전후로 해서 우리 사회가 실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80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라도 돕는 이 다큐멘터리를 감히 권하고자 한다.


한승찬 기자 hsc703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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