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강의 남쪽. 실개천이 흐르고 송아지 울음소리가 울리는 이 강남 땅에서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개발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강남 개발을 둘러싼 이야기가 전개되는 SBS 드라마 『자이언트』(2010)의 첫 화 내레이션의 일부이다.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될 정도로 강남 개발 속 일련의 과정들은 실로 극적이었다. 『강남의 탄생』은 불과 40여 년 만에 대한민국의 심장 도시로 변모한 강남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서문에서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는 말이 비단 정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도시에도 해당한다’라고 하면서, ‘강남 또한 대한민국 국민과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부동산 투기의 중추, 성형외과의 중심지, 유흥의 집결지, 잠들지 않는 학원가…. 강남에 붙는 이런 수식어들에는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갈망하는 뒤틀린 욕구가 반영돼 있다. 현대 한국 사회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강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촉발된 강남의 개발은 그 시작부터 욕망의 분출 대상이 됐다. 정부는 도시계획을 명분으로 강남의 토지를 원주인들로부터 헐값에 사들인 후, 이를 비싸게 되팔아 이익을 정치자금으로 사용했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70년대로 돌아가 강남 땅을 다 산다면 엄청난 부자가 됐을텐데’라는 말은 애초부터 성립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아마 정부에게 울며 겨자먹기로 땅을 넘겨줘야 했을 것이다. 한편 뒤이어 권력과 유착 관계에 있었던 기업은 정부로부터 땅을 사 아파트와 빌딩을 지었다. 아파트 분양을 통해 큰 돈을 만지게 된 기업은 계속해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 이때 재벌이 된 기업들은 내실을 다지지 않고 그 크기를 불리는 데만 집중했다. 그 결과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해 국가와 국민에게 고통과 눈물을 강요한 바 있다.

강남에서 분출된 돈에 대한 욕망은 대낮에 백화점이 무너지는 황당하고도 참담한 결과를 낳게 된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1995)에서 건축주는 건축에 드는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기둥의 크기를 작게 하는 등 부실 공사를 지시했다. 또한 참사 직전 기업 임원들은 붕괴 조짐이 이전부터 있었음에도 안전진단을 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고객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다. 이러한 추악한 면모를 통해 1,5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참사’는 금전만능주의에 따른 인명 경시 풍조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 부당한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는 모습은 강남의 높은 교육열에서도 나타났다. 강남의 명문 고등학교인 숙명여자고등학교에서 자신의 권한과 지위를 남용, 시험지를 유출해 쌍둥이 딸에게 답안을 알려준 사건이 대표적이다. 명문대학을 가기 위해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이 사건을 보면서 국민들의 사회에 대한 불신은 한층 더 높아졌다.

강남이 표상하는 욕망의 추구는 어느덧 괴물이 돼 손을 쓸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정부에서 어떠한 부동산 억제책을 사용해도 ‘강남 불패’의 신화는 여전하고, 대치동 학원가의 불은 꺼지지 않고 있으며, 유흥가의 네온사인은 아침이 될 때까지 빛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만큼 서울 내에서도 강남권과 비강남권의 격차는 커졌고, 이 격차의 극복은 우리 시대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됐다. 욕망의 도시 강남이 보여줬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찾길 바란다.


한승찬 기자 hsc703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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