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어느 가족>은 혈연이 아니라 정(情)으로 맺어진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부부, 주차장에 버려진 아이와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이, 바람난 남편에게 버림받고 혼자 살아가던 할머니, 퇴폐업소에서 일하는 여자. 이들이 모여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얼핏 보기에 이들의 현실은 초라하다. 아이들은 가정폭력에 시달리거나 부모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경험이 있고, 어른들은 도둑질, 성매매 등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불온한 공동체가 ‘범죄 집단’으로 비춰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이들 사이에는 기존의 혈연관계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정(情)이 흐른다. 해변가에 놀러온 이들의 모습은 여느 단란한 가족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의 가족애는 아이를 유기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회구성원들과 가정폭력을 일삼던 친권자 앞에서 무력하다.

과연 이들을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원제의 직역인 ‘도둑가족’보다 의역인 <어느 가족>이 영화의 주제를 더 잘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족은 어떠해야 한다’는 사회에 맞서 ‘이러한 형태도 가족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가족이다’라고 단정하는 것보다 ‘무엇까지 가족이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필요로 하게 됐다.

▲ 영화 <어느 가족>의 포스터사진. 생면부지의 사람들로 구성된 이 공동체는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변화하는 사회, 가족관계도 변화한다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8 사회조사’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 중 ‘남녀가 결혼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을 56.4%로 지난 2016년 48.0%보다 8.4% 증가했다. 반면, ‘결혼을 해야 한다’라고 답한 비율은 48.1%로, 처음으로 과반 이하로 집계됐다. 이 통계는 변화하는 사회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은 필수이고 동거는 사회적 일탈로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최근 1인 가구 증가 및 비혼족 증가 등의 이유로 전통적인 가족관도 변화하게 됐다.

현행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혈연으로 맺어진 친족관계이거나 혼인관계이어야 한다. 그러나 특정한 가족형태만을 ‘정상 가족’으로 규정하고 그 외의 가족형태들에 대해서는 법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 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지나치게 피상적으로 이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혈연이나 혼인관계가 아닌 동거가족 구성원들이 기존 가족관계와 동등한 법적, 사회적 지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이를 통해 비혼커플, 성소수자, 고아, 독거노인, 장애인 공동체 등 전통적인 가족관계로는 품을 수 없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가족관계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이에 대해 우리대학 사회복지학과 정혜숙 교수는 “우리사회도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결혼제도를 전제로 한 가족 기능과 역할만으로는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학대, 폭력 등으로 인해 많은 가족들의 기초 안전망이 붕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인 가구와 비혼 인구의 증가 및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변화와 맞물려 다양한 공동체 형태의 대안가족들이 필요하다”며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해외 사례로 살펴보는 생활동반자법

생활동반자법을 시행했거나 하고 있는 국가는 많다. 생활동반자법은 20세기 말 덴마크에서 성소수자들의 동성결혼 허용요구에 따라 최초로 제정됐다. 이후 뉴질랜드, 우루과이, 독일, 벨기에 등 많은 국가들이 생활동반자법을 시행했으나,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면서 생활동반자법은 폐지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생활동반자법을 단순히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한 과도기적 단계로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 생활동반자법은 동성커플 뿐 아니라 이성커플과 사회적 약자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최근 동성에만 허용하던 생활동반자관계인 ‘시빌 파트너십(Civil Partnership)’을 이성에게까지 확대하면서 ‘생활동반자’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동성커플 뿐 아니라 이성커플도 결혼과 시빌 파트너십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은 생활동반자관계의 훌륭한 선례이다. 1999년 처음 도입된 ‘PACS’는 도입 당시 전통적인 가족관을 해치고,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반대에 부딪혔지만 이후 잘 정착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PACS를 맺은 파트너들은 출산과 육아와 관련된 부문에서 결혼한 부부와 동등한 사회적 혜택을 받는다. 혼인신고와 달리 간단한 행정절차로 등록이 가능하며, 해지도 한 쪽의 의사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PACS가 가벼운 가족관계만을 양산하는 것은 아니다. 2016년까지 19만 2000여쌍이 PACS 계약을 맺었으며 해지율은 10%정도로 결혼한 부부의 이혼율인 30%보다 현저히 낮은 편이다. 도입 초기에는 동성커플의 비율이 높았으나 현재는 약 95% 이상이 이성커플로, 특정 집단에 한정되지 않고 폭 넓게 활용되고 있다.

독일도 2001년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해 혼인 외에도 가족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동반자관계의 커플은 가족으로서의 권리와 부양 및 가사의 의무 등을 진다. 서구권 국가들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몇몇 지자체들은 ‘파트너십 증명제도’를 도입해 생활동반자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파트너십 증명제도’를 처음 도입한 시부야 구의 경우 파트너십 증명을 통해 가족용 구영주택 입주, 파트너의 수술동의서 작성 등의 권리를 혼인 가구와 동일하게 받을 수 있다. ‘파트너십 증명제도’는 현재 세타가야 구, 다카라즈카 시, 지바 시 등으로 점차 확대 되고 있다.

생활동반자법 정착을 위한 과제

우리나라의 경우, 2014년 진선미 의원이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을 준비했으나 실제 발의까지는 이뤄지지는 않았다. 이후 생활동반자법은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심상정 후보의 공약으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최근 생활동반자관계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됨에 따라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향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일부 단체에서는 동성애 조장과 전통적인 가족관계 파괴를 이유로 생활동반자법의 도입을 반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 교수는 “생활동반자법이 성소수자들만을 위한 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생활동반자법의 폭넓은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법과 관련된 담론들을 형성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주장에 대해 선을 그었다. 또 정 교수는 “동성애 혐오의 극복과 청년들의 건강한 성과 동거 문화에 대한 성찰은 이 법의 시행과 상관없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인권과 행복권을 위해 지속적으로 수행해야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라며 관련 사안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당부했다.

이제 막 논의되기 시작한 생활동반자법을 두고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생활동반자법의 현황을 면밀히 검토한 뒤,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 가지는 의미가 어떠해야 할지 깊이 있는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김세훈 기자 shkim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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