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4일 경찰은 서울 강서구 PC방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성수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는 헌법 제 27조 4항에 해당하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상관없이 기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된 상황이었다.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의 얼굴이 공개될 수 있었던 것은 2010년 4월 개정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 8조 2항’ 때문이었다.

1990년대까지는 언론사들의 자의적인 판단 아래 흉악범들의 얼굴이 공개됐다. 하지만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들의 얼굴이 공개될 경우,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비난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부가되면서 피의자들의 얼굴은 철저히 가려지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자에 대한 인권 의식도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자신의 모습이 언론에 드러나는 것을 꺼려해 마스크와 모자를 사용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1면에 강호순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고 공개했다.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논쟁이 있게 됐고 그 과정에서 2010년 4월에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만들어졌다. 특례법 실시 이후 김길태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신상정보가 공개된 흉악범죄 피의자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김성수를 포함한 총 18명이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은 제 8조 2항에서 신상공개 요건을 정해두고 있다.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것,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것,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

이 4가지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만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요건들은 사건마다 다르게 적용돼 왔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의자의 경우,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용의자와 유사점이 많았지만 평소 조현병을 앓고 있던 점을 참작하여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우울증 치료 전력을 주장한 김성수와는 다른 결과였다. 뿐만 아니라 ‘공공의 이익’이라는 애매한 표현은 이 4가지 요건 중 주요 난관으로 꼽힌다. 피의자의 재범방지와 범죄 예방이 가능한지 검증된 것도 아니며 피의자의 신상공개가 공익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하는지도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경찰에서도 이러한 점을 감안해 2016년 6월부터 40여개의 세부규정을 마련해두고 이에 대해 논의를 거친 뒤 해당 사항을 결정 하고 있다. 이 논의는 총 7명으로 구성되는 신상공개 심의위원회에서 진행하며 4명의 외부위원(정신과 의사, 변호사, 교수 등)을 두어 체계성을 갖춰 왔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경찰 내부적인 부담감은 적지 않다. 2차적인 피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흉악 범죄의 피의자의 신상공개는 피의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의 신상까지 공개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2016년 경기도 안산 대부도 살인사건의 피의자였던 조성호의 신상이 공개되자 인터넷에서는 조씨의 가족과 옛 애인에 대한 정보들이 나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법적 제도 장치를 명확히 하고 신상공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2차적 피해를 막기 위한 정보 공개 범위를 제한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신상공개를 위한 요건에서 밝히고 있듯이 범죄예방에 대한 목적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일관적인 법적 명확성을 더 갖춰야 한다. 심지어 “공개를 할 수 있다”고 밝히는 임의규정에서 “공개해야 한다”는 강행규정으로 바꾸어서 더 일관성을 높이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흉악 범죄 피의자들의 신상공개를 국민들의 10명 중 8명이 찬성한다는 리얼미티 여론 조사의 결과 또한 이러한 명확성에 한 몫을 보태고 있다.

주먹구구식으로 매번 다른 결과를 낳는 피의자 신상공개 방식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유효하지 않다. 구체적인 규정 마련으로 2차적 피해를 최소화하며 더 건전한 사회를 위한 제도적 차원에서의 개선이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손명훈 기자 smm0038@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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