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태양의 서커스 ‘쿠자’>

 

‘쿠자’는 상자, 보물을 뜻하는 고대 인도어인 ‘코자(KOZA)’에서 유래한 단어다. 뮤지컬은 순진하고 어리버리한 행동으로 웃음을 주는 주인공 이노센트가 자신 앞에 도착한 쿠자 상자를 열며 시작된다. 상자 안에서는 인도 전통 분위기의 예술과 곡예를 뽐내는 꿈같은 쿠자 세상이 펼쳐진다. 태양의 서커스 ‘쿠자’는 뮤지컬이지만 서커스 공연의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서커스 공연보다 시각적으로 더 아름답고, 청각적으로도 더 감미롭다. 태양의 서커스는 서커스의 기원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캐나다의 서커스단이다. 따라서 공연은 서커스를 기반으로 하지만, 스토리와 라이브 음악, 고급스러운 무대예술 등 뮤지컬적인 요소를 도입했다. 모든 서커스와 연기는 라이브로 진행되는 수준급 악기와 보컬에 의해 지휘 받는다.

잠실 종합운동장에 마련된 화려한 색깔의 천막 공연장은 마치 옛 서커스 공연장에 온 느낌을 줬다. 천막 공연장이라 열악할 것이라는 기대와 다르게, 천막 내부에는 영화관의 팝콘 냄새가 가득하고, 디자인이 독특한 쉼터가 있으며, 조명으로 아름답게 꾸민 천막의 지지대가 있었다.  공연장 내부는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280도로 펼쳐진 원형 무대와 더해 적당한 크기의 공연장은 자리의 등급과 상관없이 무대를 마음껏 즐길 수 있게 했다. 관람석은 전문 공연장이나 영화관과 달리 딱딱하고 작아 간이의자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름대로 서커스의 느낌을 살려줬다.

쿠자의 곡예는 서커스 하면 생각나는 옛날 불쇼나 촌스러운 묘기가 아니다. 서커스는 기괴하고 조악하다는 이유로 현대의 고급 공연에 가려져 사양산업으로 접어들었다. 쿠자는 이러한 비판에 정면으로 맞서 고정관념을 깨버리는 작품이다. 곡예의 종류와 이를 표현해내는 방식 모두 예술적이며 고급스러웠다.

죽음의 바퀴 묘기(Wheel of Death)는 쿠자가 현대적인 서커스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곡예다. 1600파운드 무게를 지닌 두 개의 쇠바퀴가 대칭적으로 연결된 조형물이 등장하고, 두 명의 곡예가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쇠바퀴 안을 뛰며 대칭축을 회전시킨다. 놀이공원의 가장 무서운 놀이기구와 비슷한 비주얼을 가진 기구를 아무 안전장비 없이 타는 모습에 관객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묘기는 끝이 아니었다. 쇠바퀴 내부에서 달리던 곡예가들은 이내 쇠바퀴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달리는가 하면 공중제비를 돌거나 줄넘기를 넘기도 했다. 중심을 조금이라도 잘못 잡거나 발을 헛디디면 거대한 놀이기구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하고 놀라운 장면이었다. 현대적인 곡예 기구와 기법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컨토션(연체 곡예, contortion)은 사람이 어떻게 저런 자세를 취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곡예다. 쿠자의 컨토션에서는 곡예가가 입은 옷의 문양과 음악이 모두 인도 전통의 것임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모든 것이 분위기와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웠다. 컨토션 곡예가의 의상은 특별히 3D 프린트를 이용해 신축성 있는 천으로 니트 질감을 만들어냈다. 후프 묘기(Hoops Manipulation)와 해골 퍼포먼스의 깃털 의상 등 공연 의상 모두 저마다의 스토리와 예술을 담고 있었다.

공연은 동적 분위기와 정적 분위기의 반복으로 진행됐다. 의자 위 균형 묘기(Balancing on Chairs)에서는 조용히 수많은 의자를 쌓고, 놀라운 균형감각을 보여주는 자세를 취한다. 관객도 함께 숨을 죽이고 이를 조용히 지켜보다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러한 정적이고 경건한 분위기는 다음 순서인 티터 보드(Teeterboard)에 의해 완전히 뒤집힌다. 널뛰기 위에서 높이 튀어 올라 공중제비를 돌고, 동료의 어깨에 착지하는 액션은 모두를 신나게 했다. 무대에 오른 관객과의 우스꽝스러운 즉흥 콩트나, 거대한 강아지 탈의 등장 등은 유머 요소를 놓치지 않은 종합 예술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노센트는 마지막에 쿠자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이전에는 잘 날리지 못하던 연을 다시 건네받아 능숙하게 날린다. 마법 같은 동심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와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느껴졌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가슴 떨리는 마법과 풍요로운 예술을 경험하고 싶다면 쿠자 세계로 떠나보자.


 안효진 기자 nagil300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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