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날, 보러와요(2016)’의 스틸컷이다. 영화는 영문도 모른 체 정신병원에 이송된 주인공을 통해 우리사회의 강제입원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얼마 전,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은 ‘인간의 범죄행위가 어디까지 더 잔혹해질 수 있는가’를 우리사회에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범죄를 향해 사람들은 저마다 비판의 목소리를 냈고 피의자에 대한 정의로운 처벌을 외쳤다. 동시에 사건의 피의자 측에서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한 것을 통해 한동안 은회(隱晦)하던 정신질환자 문제 역시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피의자를 심신미약으로 감형해서는 안 된다’는 안건이 올라와 100만 명 이상의 공감을 받는 등 정신질환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피의자를 강경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터져 나왔다. 결과적으로 피의자는 사건 당시의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받지 못해, 사건과 정신질환 사이의 연관성이 부정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미 우리사회 저변에 걸쳐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한층 심화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신화와 정신질환자

사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논의는 오랜 과거부터 진행돼왔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도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는데, 신화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영웅,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신화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각지에서 여러 선행을 행하고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자식들을 낳아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질투한 여신, 헤라가 그를 미치게 만들었고 결국 그의 손으로 사랑하던 부인과 세 명의 아이를 모두 죽이게 만든다. 헤라클레스는 곧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신들도 용서할 수 없는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음을 깨닫는다. 이것이 바로 히드라를 죽이고 아르테미스 여신의 암사슴을 잡는 등 헤라클레스가 그 유명한 열두 가지의 과업(課業)을 부여받게 된 배경이다.

평소에는 국가와 시민에게 선행을 베푸는 모범적인 인물이었던 헤라클레a스가 스스로 가족을 살해한 범죄자로 돌변해 버린, 이 충격적인 신화 속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정신질환을 제대로 감정할 수 있는 정신의학적 기술이 부족했던 당시에도, 정신질환(당시에는 ‘미쳤다’고 표현하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일종의 논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과학적 설명과 치료가 불가능한 이 현상을 헤라의 저주, 즉 ‘신의 계시’로 여겼다.

법(法)이 그들을 다루는 방식

이후로도 정신질환자의 지위 혹은 처분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지만 가장 커다란 변화는, 체계적인 법제를 통해 정신질환자의 권리와 책임을 정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미 고대 로마를 시작으로 서구 유럽에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내용을 법제화하기 위한 시도가 나타났고 이러한 시도는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정신질환자를 다루는 법 형태의 기초가 됐다. 특히 로마시대에는 정신질환자 처벌에 관한 법제를 마련해 두었는데, 당시 역시 정신질환 여부를 감정할 수 있는 정확한 방법이 없었음에도 정신질환자가 죄를 범했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도 법률을 통해 정신질환자를 다루고 있다. 헌법에 직접적으로 그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각각 민법과 형법의 조항에서 이들의 책임에 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민법 제754조에서는 심신상실자, 즉 정신질환자의 민사상 책임능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조문에 의하면 심신상실자가 타인에게 손해를 가했을 시, 그 과정에 고의 혹은 과실이 없다고 판단되면 배상의 책임이 없다고 본다. 고의 혹은 과실(민법에서는 고의와 과실을 구별하지 않는다)이 없는 심신상실 상태에서의 행위를 법률을 통해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형법 제10조에서는 형사상 심신 장애인에 대한 처벌의 전체적인 규정을 다루고 있다. 조문의 각 항에서는 심신장애로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거나 정도에 따라 형을 감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논란의 쟁점인 정신질환 범죄자 감형의 법적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 역시 형법을 통해 심신상실자와 심신미약자의 행위를 벌하지 않거나 감경하는 방식으로 정신질환자를 법적 책임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그들의 권리, 그들의 책임

정신질환자를 다루는 법제가 갖춰져 있다는 것이 정신질환자의 권리를 잘 보장하는 사회를 뜻하는 것을 아니다. 일반인이나 여타 소수자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정신질환자의 인권과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이 존재함과 동시에, 우리사회는 그들을 향해 책임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우리사회는 오랜 논의 끝에 나온 법제로 조금이나마 보장받을 수 있게 된 그들의 권리보다 사회적 인식에 기반해 그들의 일방적인 책임을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정신질환자들은 오랜 역사의 기간 동안 차별과 핍박의 대상이었다. 중세시대에는 정신적 장애를 악마와 연결시켜 그들을 무차별적인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희생시켰을 정도였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형태는 바뀌었지만 오늘만의 방식으로 그들은 여전히 희생당하고 있다. 정신질환자들은 죄를 범하지 않았음에도 국가에 의해 강제적인 입원을 강요받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1년에서 2014년, 4년간 정신의료기관의 강제 입원율은 약 70%에 달했다. 10명 중 7명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입원을 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는 ‘우리사회가 정신질환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충분히 보장하는 사회인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아직도 정신질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제와 그들을 향한 사회적 현실은 풀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이제 다시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발생했던 한 살인사건을 돌아본다. 그 끔찍했던 범죄는 정신질환에 의해 발생했던가? 정신질환자를 향해 일반인과 같은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가? 이에 관해 우리대학 법학전문대학원 신권철 교수는 “정신질환자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그들의 권리 역시 충분히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자에게 일반인과 동일한 형벌을 묻기 위해선, 마녀사냥과 강제입원으로 대표되는 오늘까지의 우리사회가 그들에게 가한 형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권리 없는 책임만큼 가혹한 벌은 없기 때문이다.


성기태 기자 gitaeuhjin033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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