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집회 르포>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하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온 국가를 들썩이게 한 지난 4달 동안의 탄핵 심판 절차가 마무리됐고 박 전 대통령은 공직에서 물러나 자연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서울시립대신문의 기자는 탄핵 2년이 되는 날 박근혜 복권을 주장하는 보수단체의 집회에 참석했다. 추워진 날씨에도 집회엔 많은 참가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이 집회에 모인 이유가 무엇인지, 기자가 직접 집회에 나서 참가자들의 말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지난 8일, 취재를 위해 서울역에 내린 기자는 이렇게 빨리 참가자들을 보게 될 줄 몰랐다. 서울역을 가는 지하철에서부터 드문드문 보이던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기자가 도착한 시간이 1시 10분이라 1시 30분에 시작하는 집회보단 상당히 일찍 도착했는데, 서울역의 참가자들은 이미 꽤나 숫자가 차있었다. 이날 날씨는 젊은 기자도 추위에 살이 에일 정도였다. 기자는 강력한 추위에도 노인들이 모이게 된 이유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태극기 시위에 맞게 여러 부스에서는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이날 주최를 맡은 ‘대한애국당’ 입당 부스도 있었고, 태극기와 성조기, 군복 등을 파는 곳도 있었다.

성토와 규탄의 서울시 광장

집회는 1시 30분이 되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모두 국기에 대하여 경례!” 이곳만큼 국기에 대한 경례가 어울리는 곳이 없을 것이다. 경례가 끝난 이후엔 애국가를 제창했고 호국영령에 묵념을 했다. 이곳에서는 ‘당연히’ 애국가를 4절까지 모두 완창 했다. 그리고 묵념은 두 번 한다. 먼저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이 있고, 다음으로 했던 게 박 전 대통령 부녀를 향한 경례와 묵념이었다. 박 전 대통령 부녀를 위한 힘찬 경례 후에 집회 참가자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에 나섰다.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무대 위엔 전직 기무사령관을 했다는 A씨가 등장했다. A씨는 현재 정권에 대한 비판과 시위 참여자들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A씨는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명복을 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시위의 참여자들도 이를 안타까워했다.

이후에도 대한애국당 임원들을 비롯한 여러 연설자들이 목소리를 이어갔다. 그리고 이번 행사의 중요한 행사인 ‘탄핵 7적 규탄’을 시작했다. 기자는 이들이 진보진영이거나 탄핵을 가결한 재판관들일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오히려 자유한국당 등의 보수인사들이 대상이 됐다. 내 사람이 뺨 때리면, 혹은 맞았다고 생각되면 더 아픈 법이다.

▲ 기자는 집회 중에 우연히 받은 태극기를 들고다녔다.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으로 향하다

이들에 대한 규탄 퍼포먼스를 끝낸 후, 예정되어 있던 행진을 진행했다. 출발지는 서울역 광장, 목적지는 광화문 앞이었다. 참가자들은 차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기자도 행진에 동참해 같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태극기를 따로 들고 오진 않았지만, 누군가가 태극기를 나눠줘서 하나 집어왔다. 참가자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나라 국기를 드는 일이 이렇게 어색하기는 처음이었다.

태극기를 들고 다니자 주변 어르신들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게 있으면 기자도 이곳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는 건가. 어떤 분은 먹을 것을 건네주기도 했다. 기자는 자연스럽게 참가자들이 집회에 참석한 이유를 물었다. 다수가 대답한 주된 이유는 ‘한국의 공산화에 대한 우려’였다. 참가자들은 김정은이 방한한다는 사실과 최근 남북 간의 행보를 무척 걱정하고 있었다.

참가자 중 한 명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공산당이 나쁜 짓을 했다며 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말로 국가가 ‘걱정돼서’ 나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들은 살 날이 길지 않아 상관없지만 앞으로의 세대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들의 경험 속에서 북한과 공산당은 타협의 존재가 아니라고 확실히 각인돼 있는 듯 보였다. 여러 간첩사건과 월남전, 반공교육을 겪어왔던 사람들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 태극기 집회 옆에서는 이석기 석방 집회가 같이 열렸다.

한 장소 두 목소리, 광화문에서 벌어진 ‘냉전’

광화문 앞에서는 또 다른 시위를 벌이는 무리가 있었다. ‘사법적폐청산’과 ‘이석기 석방’을 주장하는, 태극기 부대와 양 대척점에 서있는 진보진영의 시위대였다. 이들 시위대는 대학생과 노조원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주로 구성돼 있었다.

태극기 시위대는 이들 시위대의 바로 옆 편에 있었다. 두 시위대 사이를 경찰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다시 태극기 시위대로 합류한 기자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태극기 시위는 서울역에서 했던 것처럼 ‘연설’과 ‘옳소’로 진행됐다. 그런데 이번엔 소리가 하나 더 있다. 이석기 시위대 측 연설자의 소리가 태극기 시위대의 소리를 뚫고 또박또박 들려왔다. 주변의 참가자들은 “이석기를 석방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에 욕설 등 자극적인 말을 한 마디씩 덧붙였다. 이석기 시위대 중 몇 명도 ‘적폐청산’, ‘이석기 석방’ 등이 쓰인 팻말을 태극기 시위대의 방향으로 들었다. 중간에 이석기 시위대 측 연설자의 입에서 ‘태극기’가 언급되자 양측사이의 긴장감이 돌았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다소 격하게 반응했다.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가서 살아라”가 주요논지였다. 그렇게 말을 듣고 있던 중, 옆의 다른 참가자가 기자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너 근데 태극기 맞나?”, “아, 네. 이번에 처음 참여하긴 했는데…”, “너 정체가 뭐야?”

 
이해하려면 직접 들어야한다

어느새 5시 반 정도로 시간이 지나있었다. 겨울이라 날도 이미 어둑어둑해진 뒤였다. 처음 목적은 이 추운 날씨에 어르신들이 왜 시위에 직접 나오는 수고를 하는건지 물어보는 거였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뭐가 걱정돼서 이렇게 나왔는지 직접 들어볼 기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우리나라가 소위 ‘빨갱이’들의 손에 넘어갈 중대한 위기에 서있다고 본다. 지금 본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이 나라를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물론, 그 가운데 음모론을 믿거나 잘 모르고 있는 부분도 많았다. 우리나라 좌파 세력이 북한의 지령하에 움직이고 있다고도 믿고 있고, 미국이 얼마 전까지도 북한과 종전협정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확증편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믿는 대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경험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르다. 이 믿음이 본인들에게는 신념일 것이다. 혹시 너무 답답하고 이해가 안 돼서 당장 이들이 믿음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일단 자신은 어떤 편향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고, 바로 고치려 하기보단 한번 듣고 이해하려 해보자. 이 과정 없이 합리적인 설득을 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글·사진_ 윤유상 기자 yys618@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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