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시대다. 인간의 역사에 갈등이 없었던 시기가 있었겠냐마는, 오늘날의 사회적 갈등은 온라인 공간을 통해 더욱 증폭된 무게감으로 사람들의 의식을 파고든다. 젠더 갈등, 연령 및 세대 갈등, 지역 갈등, 이익집단 간 갈등, 소수자들에 대한 공격적 태도, 그 밖의 온갖 종류의 집단 간 갈등은 겹겹이 누적되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을 날카롭게 하고, 상처 입게 하고, 뜨겁게 분노하게 만든다.

사실 갈등은 인류가 진보할 수 있는 원천이다. 역사적으로 갈등이 끊임없이 표출되지 못했다면, 운 좋은 일부를 제외하고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예 상태에 있을 것이다. 갈등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이해(利害)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에게 무엇이 불합리한 것인지에 대해 눈뜨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무조건적 사회통합보다는, 어느 정도의 갈등이 사회적으로 표출되게끔 하는 것이 사회의 건강성과 역동성을 위해 바람직하다.

하지만 갈등이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람들의 사회인식을 조사한 설문 및 인터뷰 자료들을 살펴보면, 한국인들의 사회적 삶과 일상적 경험들은 타인에 대한 낮은 신뢰와 약한 공동체 의식, 배타적 태도로 얼룩져 있다. 일상이 메말라 있고, 공동체적 경험이 얕으며, 타인과 의미 있는 전인격적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한국인들이 대다수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증폭된 갈등은 한국인들의 일상적 삶과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의 시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특히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어떤 갈등이 있을 때, ‘상대편’에 대한 공격적 감정이 불타오를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갈등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으면서도 동시에 고민해야할 점은 ‘최소한의 공통점 찾기’라고 할 수 있다. 갈등을 겪는 나와 상대가 있을 때 상대가 잘못했고, 상대가 나쁘다는 것을 완벽하게 입증하여, 그 상대를 끝까지 무너뜨리는 것이 감정적 목표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점은 상대방도 정확히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양자 간에 부정적·공격적 심리는 소용돌이를 치며 극한으로 치닫기 좋다.

갈등의 극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른 문제는, 그 양쪽 편이 의외로 많은 부분에 있어 같은 생각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고,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산다는 것을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완전히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과 침팬지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과 바나나도 유전자가 약 60%가량 일치하는데, 같은 인간으로, 같은 한국인으로 자란 사람들 간에 서로 공유하고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많을 것이다. 설사 관점이나 원칙 등에 있어 완전히 똑같은 부분은 작더라도, 서로 상식적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의 반경은 꽤 넓을 것이다. 서로 어느 정도는 용인해 줄 수 있는 차이의 세계 말이다. 우리가 가끔씩은 그러한 부분을 확인해야하지 않을까?

때로는 ‘다름’에 대한 강조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새롭게 개척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얼마나 같은지를 중간 과정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리 내면의 광대한 세계에 있는 많은 것들이 ‘그들’과 공유될 수 있고 서로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 그 폭과 깊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깊음을 의도적 장치와 계기들을 마련하여 확인해보자. 우리 모두가 어디까지 같은지를 먼저 확인해야, 서로의 다름에 대해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임동균(도시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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