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의 변

습관이 하나 있다. 쓰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되는데 굳이 글로 남겨서 두고두고 수치스러워 하는, 불행한 습관이다. 사람의 기억은 한정적이라,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기록하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그런데 나는 창피하고 불행한 일을 겪으면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어도 잠에 못 든다.

불을 다시 켜고 무거운 머리를 굴려서 그 날의 실수, 상대의 민망한 반응을 큰따옴표로 인용까지 해가며 적다 보면, 결국 ‘고통의 근원’을 깨닫고 잠에 들게 된다.

그리고 대학생활의 주요한 ‘고통의 근원’이라면, 역시 서울시립대신문사다. 처음 인터뷰를 나가 말을 더듬으며 질문하고 차갑게 거절당한 날, 말이 없는 인터뷰이를 만나 어떻게든 말을 끄집어내려고 아무 질문이나 던졌던 날, 그 기사가 신문에 실리자 더 민망했던 날과 여기에 더 기록할 수 없는 불행한 사건도 많았다.

하지만 고통의 종류를 나눈다면 ‘어떨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과 ‘내가 선택한 고통’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감당할 가치가 있었기에 내가 기꺼이 선택한 고통이라면 그 고통에 끝에는 뿌듯함이 있다는 것을 알 것 같다.

돌아보면 온통 힘들었던 일만 적혀있는데 오히려 얼마나 사랑했는지 드러난다. 감당하기로 마음먹은 불행의 크기가 클수록 많이 사랑했다는 가설을 세워본다면, 신문사는 대학생활 최고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작가 김연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냐’는 질문에 김연수는 “스트레스를 얼마나 견딜 수 있냐가 기준점이 된다”고 답한다. 재능이 ‘버텨낼 수 있음’에 있다면, 꽤 재능있는 한 해였다고 자부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서울시립대신문 제60대 부국장 임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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