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숱하게 듣지만, 실제로 온전하게 타인의 입장에 서보는 일은 삶에서 흔한 일이 아니다. 2018년 타계한 영미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는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필립 로스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기실 그 사람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오해하고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학은 초·중·고등학교에 비해 훨씬 폭 넓은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한데 모여 수업을 듣는다. 원한다면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과 교류할 수도 있다. 만나는 사람의 폭이 넓어질수록,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과 마주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쉽게 이해하기 힘든 타인들 사이에서 피로감을 느끼다보면 앞서 언급한 필립 로스의 말에 선뜻 수긍할 수 있다.

설령 필립 로스의 말을 수용해 ‘삶은 곧 타인을 오해하는 과정’이라고 결론 내리더라도,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같은 오해라 하더라도 그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전적으로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그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나마 그에 대한 이해에 가깝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의 사고 역시 더 유연하고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이 단지 전공을 학습하는 공간이 아니라 타인과의 공생을 추구하는 방식을 학습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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