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8일 충북 청주시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하 청주관)이 개관했다. 청주관은 덕수궁, 과천, 서울관에 이은 국립현대미술관의 4번째 분관으로 지방 도시에는 처음으로 생긴 미술관이다. 또한 청주관은 국내 최초로 ‘개방형 수장고’ 방식을 차용해, 전시보단 ‘보관’에 중점을 둔 곳이기도 하다.  -편집자주-

 

기록문화의 도시 청주, 미술품을 ‘기록’하다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면서, 전국의 크고 작은 지방자치단체들은 자신의 고장을 홍보하기 위해 역사인물이나 특산물, 유명한 랜드마크를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충남 부여군은 백제금동대향로를, 경북 의성군은 마늘과 컬링을 홍보하고 있다. 그렇다면 충청북도 청주시는 홍보를 위해 무엇을 활용하고 있을까. 청주시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홍보에 활용한다. 버스 정류장이나 가로등과 같이 시내 곳곳에 ‘직지’의 한자명과 영어 표기를 써넣어 눈에 띄게 하는 식이다.
청주시는 직지심체요절을 통해 청주시가 기록문화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다져가고 있다. 그런 청주시가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서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들을 품게 됐다. 지난해 12월 새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하 청주관)이 개관했기 때문이다. 청주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지방 분관이다. 지난 2012년부터 건립 계획을 수립한지 6년여 만이다. 청주관은 2년간의 건축 과정을 거쳐 연면적 1만 9,855㎡, 지상 5층의 규모로 지어져 총 1만 1,000여 점의 미술작품을 수장할 수 있다. 청주관의 공식적인 명칭은 ‘국립미술품수장보존센터’로 전시뿐만 아니라 작품의 수장과 보존을 전문으로 하는 ‘예술작품의 도서관’의 역할을 하게 됐다.

청주시민이자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 재학하고 있는 김선주(21)씨는 청주관 개관에 대해 “큐레이터를 꿈꾸는 미술사학도로서 작품과 관람객이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청주관 개관이 큰 의미로 다가온다. 청주관 개관이 미술관의 전시방식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청주관이 일반적인 미술관과는 다르게 “국내 최초로 개방형 수장고 형식을 채택했을 뿐만 아니라 과거 담배 공장이었던 건물의 형태를 보존해 미술관으로 개관해 역사성과 상징성을 살린”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미술관 개관에 대해 “개관 한 달째인 1월 말 기준으로 누적 관람객 수가 3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보며 청주시민들 또한 청주관 개관을 환영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청주관을 관람하면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아직 주변 공사가 완료되지 않아 접근성이 약하며, 폐공장 때부터 주위에 서식하던 비둘기들의 배설물이 미관을 해쳐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 1층 개방형 수장고의 전경. 창고형 대형마트의 모습과 흡사하다.

▲ 1층 개방형 수장고 내부에 작품을 거치하는 팔레트가 층층이 쌓여 있다. / 출처:국립현대미술관

▲ 3층 개방형 수장고에 설치돼 있는 회화 작품의 모습. / 출처: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들어서기까지

청주관은 일반적인 미술관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술관 건물은 세련되거나 고풍스러운 외관을 가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른 분관들도 그렇다. 덕수궁관의 경우 덕수궁 석조전 왼편의 서양식 건물에 자리잡고 있으며, 과천관 또한 세련된 현대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청주관의 경우, 건물을 처음 본 사람들은 ‘과연 이것이 미술관 건물인가’라는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청주관 건물의 외관은 창문이 없고 흰색 종이상자 같은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라는 간판이 붙어있지 않았다면 그저 커다란 물류창고나 공장 건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정확하게 본 것이다. 청주관 건물은 담배 공장이었다. 담배 공장의 이름은 ‘청주연초제조창’이었다. 청주연초제조창은 과거 정부에서 담배를 독점 생산하던 기관이었던 ‘전매청’ 시절에 만들어졌다. 해방 직후인 1946년 세워진 공장은 문을 닫기 전까지 청주시의 중요한 산업시설이었다. 청주시민 상당수가 이 담배 공장에서 일을 했다. 공장 규모만큼 생산하는 담배의 양도 엄청났다. 청주연초제조창이 공장 가동을 최대로 했을 당시, 한 해에 생산하는 담배는 자그마치 100억 개비였다고 한다. 한때 전국 담배의 40%를 생산하던 청주연초제조창은 대전 신탄진에 새로운 공장이 건립되면서 생산 규모가 감소하며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결국 2004년 청주연초제조창은 문을 닫았다. 공장 건물의 소유권은 청주시로 넘어갔다.

청주시에서는 방치된 공장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 고심했다. 청주에서 개최하는 청주공예비엔날레의 행사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국립현대미술관 측에서 새로운 미술관을 지을 땅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청주시는 연초제조창 건물과 부지를 국립현대미술관과의 협의를 통해 무상으로 양도하기로 결정했다. 청주시는 거대한 폐산업시설과 노후화된 주변 지역에 대해 성공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폐산업시설이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 청주관과 유사한 사례로 영국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미술관이 있다. 테이트 모던은 영국 런던 템즈 강가에 있는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 건물을 이용해서 개관했다. 산업혁명 시절까지 런던과 그 근교의 전력 공급을 담당하던 화력발전소가 노후화로 인해 문을 닫게 되자, 건물의 외관을 살린 채 내부 시설을 리모델링해 세계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했다. 또 다른 사례로 경기도 안양의 김중업박물관이 있다. 제약회사인 유유산업의 안양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김중업의 건축세계를 엿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아울러 공장 건물 자체를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해 더욱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앞에서 다룬 선례들이 모두 쇠락해가던 지역을 다시 살려 지역사회에 보탬이 된 것처럼, 청주관 또한 청주시 구도심에 생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술계의 창고형 대형마트

청주관의 가장 큰 특징은, 전시 방식이 일반적인 미술관 전시공간과 다르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일반적인 미술관의 전시공간이 백화점이라면 청주관의 전시공간은 창고형 대형마트라고 할 수 있다. 백화점의 물건들은 하나하나 진열돼 있는 반면, 창고형 대형마트에 들어가면 높다란 천장에 닿을 만큼 물건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청주관의 작품 진열 방식은 후자에 가깝다.

청주관의 입구에 들어가면 왼편에 ‘개방형 수장고’라고 적힌 공간을 만나게 된다. 개방형 수장고 안으로 들어가면 작품을 놓는 ‘팔레트’가 층층이 쌓여 있고, 상대적으로 협소한 공간에 예술작품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시실에 들어간 관람객들은 한 작품 한 작품을 관람하면서 이동하지만 청주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작품 바로 옆에 또다른 작품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넓지 않은 공간에 162점이나 되는 작품들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러한 방식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청주관이 전시공간임과 동시에 수장과 보존작업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시공간의 모습보다는 박물관 수장고의 모습에 더 가까운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전시 방식은 관람객들에게 작품 감상의 폭을 넓혀준다는 장점이 있다. 그동안의 전시 방식은 미술관에 소속된 큐레이터가 ‘엄선’한 미술품만을 공간에 배치했기 때문에, 관람객이 큐레이터의 주관에 크게 영향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청주관의 개방형수장고에서는 큐레이터의 주관이 비교적 덜 반영돼,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원하는 작품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이러한 작품 전시 방식은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관람자의 자유로운 선택 존중이라는 가치를 잘 투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미술관 측에서는 이러한 전시 방식으로 인해 미술품들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해 20명 정도의 단위로 예약을 받아 가이드가 동행해 수장고를 관람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전경. 아직 공사가 모두 완료되지 않아 주위가 어수선하다.
청주관, 앞으로의 모습은 어떨까?

청주관이 위치한 옛 연초제조창 부지는 아직 완전히 개발된 것이 아니다. 청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뿐만 아니라 왼편의 공장 부지와 저장창고 등 24동의 건물이 청주시의 ‘문화산업단지’ 계획에 포함돼 있다. 청주관 옆의 건물은 차후에 복합쇼핑몰과 갤러리, 공방 등이 들어서고, 창고 건물은 문화예술공간이 들어서게 된다. 또한 기존에 2년마다 개최하고 있었던 청주공예비엔날레가 계속해서 이곳에서 개최될 예정이기도 하다.

 

글·사진_ 한승찬 기자 hsc703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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