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부터 이틀 간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시선이 베트남에 집중됐다. 북한과 미국 양국 정상의 두 번째 회담이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진행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양국이 합의할 사안에 많은 관심과 기대가 쏠렸다. 회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의제는 1993년 제1차북핵위기부터 25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국제사회의 긴장을 조성해왔던 북한의 핵시설 및 핵무기의 비핵화가 실현될 수 있는 가였다.

▲ 지난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확대회담에 양국 정상이 배석해 한반도 비핵화 의제를 비롯한 '빅딜' 협상에 임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핵탄두 및 핵무기가 상징하는 살상력과 파괴력을 고려했을 때 이번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회담 당사국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 전체의 안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그야말로 ‘핵 담판’의 양상을 띠었다. 회담은 순조롭지 않았다. 경제개발과 비핵화를 맞바꾸는 세기의 ‘빅딜(big deal)’은 일시적인 소강상태를 맞았다. 회담 진행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안전보장과 정권유지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는 핵의 폐기 자체에 달린 딜레마도 큰 원인이 됐을 것이다. 아직 추가적인 협상 가능성이 남아있는 만큼 북한의 비핵화가 실패로 끝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전운동과 NPT체결로 대두된 비핵화 논의

비핵화에 관한 논의는 언제나 국제사회의 화두였다. 앞서 핵실험에 가장 먼저 성공한 미국의 뒤를 이어 1949년 소련, 1957년 영국, 1960년 프랑스, 1964년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하고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자 전 세계는 핵무기의 그늘아래 들어가게 됐다.

핵무기의 실제 사용이 미칠 파괴적인 결과는 전 세계적으로 반전·반핵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미·소를 두 축으로 대립하던 냉전시기에 힘에 의한 평형(평화)이 가능했던 것은 핵무기의 파괴력이 바탕이 된 것이었다. 1969년에는 핵무기의 추가적인 확산을 금지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체결되기도 했지만 이러한 조치는 기존 핵무기 보유국을 제외한 여타 국가들의 반발을 낳았다. 오늘날 사실상의 핵보유국은 북한을 포함해 9개 국가로 오히려 증가했다. 그럼에도 진정한 의미의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비핵화 시도는 정책적인 틀로 이어져 내려왔다. 리비아와 우크라이나 등이 앞서 핵을 포기한 선례도 이러한 맥락의 결과다.

북한은 리비아식 비핵화를 두려워한다?

 
우크라이나 비핵화 모델의 경우 경제적 보상과 안전보장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이 성공한 사례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국가로 분리된 우크라이나는 구소련으로부터 넘겨받은 수천 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신생국이었던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관리·운영하게 되자 미국과 러시아는 이를 위협으로 인식했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비핵화 정책을 수립했다. 이들이 우크라이나에 비핵화를 요구하며 내건 조건은 경제지원과 국가안전의 보장이었다. 경제 상황이 불안정한 신생국이었던 까닭에 러시아와 서방 등 주변국으로부터 제대로 된 안전보장을 긴히 요했던 우크라이나는 이러한 요구를 수용했다. 1994년 부다페스트 안전보장각서를 체결하며 서방과 러시아로부터 공식적인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리비아 역시 2003년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를 완전히 폐기한 바 있다. 리비아는 화학무기를 비롯한 대규모 무기연구 시설을 짓고 핵개발을 시도했으나 중동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과의 관계개선 및 경제제재 완화, 경제적 인센티브를 조건으로 모든 화학무기시설과 핵개발 포기에 합의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국가는 리비아의 핵 포기 선언을 바탕으로 실제로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화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와 리비아는 경제적, 정치적 조건을 수용해 비핵화를 이행했으나 결말은 그리 좋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지난 2014년 러시아에 의해 크림반도를 강제로 합병당하는 등 국가 안보에 큰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리비아 역시 2011년 발생한 리비아 내전에 의해 장기 집권한 독재자 카다피가 축출 당했다. 앞서 핵 포기의 대가로 얻은 조건이 잘 지켜지지 않거나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와 같은 비핵화 선례를 최근의 현실에서 고려했을 때 북한 역시 앞선 사례를 인지하고 섣불리 비핵화(완전한 비핵화, CVID) 협상에 임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INF와 이란핵협상, 비핵화 이행은 번복하면 끝?

언뜻 보면 비핵화 이행은 협상을 통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사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양상을 띠고 있다. 미국과 소련의 경우 냉전 종식 시점인 1987년, 중거리핵전력협정(이하 INF)을 체결해 핵개발로 대표되는 군비경쟁을 완화하고 중거리핵무기(사거리 500km~5,500km)를 폐기하는데 합의해 이를 직접 이행했다. 그러나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국가 간 외교관계의 변화에 따라 최근에 와서 다시금 흔들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 10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INF를 준수하지 않는다며 이를 비난했고 현재 미국은 INF 이행 중단을 선언하고 6개월간의 탈퇴 절차를 밟고 있다.

이란 역시 2015년 주요 6개국과 제재를 해제하는 대가로 핵 프로그램 제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핵협상을 타결했으나 최근 미국이 핵협상 탈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경제제재 복원을 고려하면서 협상 진행이 난항을 겪고 있다.

비핵화 정의와 평화체제 개념에 대한 합의 중요해

그렇다면 한반도 비핵화의 경우는 어떠한가? 북한은 1993년 1차 북핵 위기를 기점으로 25년이 넘는 시간동안 세 차례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통해 주변 지역의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켜왔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여러 차례 핵실험을 강행하며 핵탄두의 경량화 등 기술을 고도화했다고 보고 있다. 이미 북한은 세계적으로 핵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공식적인 인정만 받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의 가능성이 없다고는 보기 힘들다. 여전히 북핵을 사이에 둔 대화의 창구는 열려있으며 북한 역시 핵협상에 여전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만 협상 당사국 사이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큼 철저하고 단계적인 협상단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동시에 비핵화 합의 과정에서 인권과 자유 등 인간의 기본권을 탄압하는 북한 정권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대학 국제관계학과 황지환 교수는 “협상 당사국인 북한과 미국 사이에 비핵화의 정의와 비핵화 대상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평화체제의 개념과 방식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며 한반도 비핵화에 있어 상호간 합의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성기태 기자 gitaeuhjin033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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