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역 주변에서 62년동안 굳게 자리를 지켜온 건물이 있다. 성바오로병원이다. 이번 달 22일 이 병원이 모든 진료를 마치고 폐원한다.

병원은 1944년에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 2명이 청량리 옆 제기동에 차린 시약소부터 시작했다. 시약소는 1947년 ‘성모의원’으로 확장 개원했다. 이후 6·25전쟁은 병원에 시련이자 도약의 계기가 됐다. 의료진은 왕진 가방을 들고 잿더미가 된 주택가를 찾아다니며 환자를 진료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서울의 인구 유입으로 인해 병원도 급속히 커졌다. 1957년 현 위치인 청량리에 건물을 마련했으며, 인접한 입지 덕분에 ‘전국구 병원’으로 명성을 누렸다. 통일호나 비둘기호 기차를 타고 내원하는 환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1978년에는 국내 최초의 심장전문센터인 한국순환기센터를 개설했다.

1980년대 이후 병원은 정체되기 시작했다. 회기동 경희의료원, 안암동 고려대병원, 상계동 백병원 등 인근 대학병원이 대대적인 시설 투자에 나서면서 환자 유치 경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청량리 역의 위상이 위축된 것도 타격이었다. 2008년 7월, 병원은 가톨릭대학교 중앙의료원의 다섯번째 직할 병원으로 편입됐고 결국 폐원 및 이전이 결정됐다. 성바오로병원은 다음 달 1일 은평구 진관동 은평뉴타운 부근 최신식 병원에서 진료를 다시 시작한다. 청량리에서 은평구 병원까지의 거리는 멀어 청량리 주민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병원 인근에서 만난 청량리 주민 A씨(62)는 “성바오로병원은 인근 주민들에게 신뢰를 받았다. 폐원한다고 하니 아쉽다”고 전했다.

성바오로병원의 폐원으로 과거 청량리역 주변 모습은 더욱 찾기 어려워졌다. 성바오로병원 부지는 중소형 부동산개발업체 STS가 인수해 오피스텔과 상가 등 종합복합건물을 신축할 예정이다. 성바오로병원 뒤에 위치해 있던 성매매업소가 모여 있던 ‘청량리 588’은 롯데건설이 재개발해 지역 최고층 주거복합단지를 공급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주)한양은 이번 달 6일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 동부청과시장을 재개발하는 ‘청량리역 한양수자인 192(가칭)’를 분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분당선 청량리역 건설, GTX, 면목선 등 변화의 바람이 청량리로 불어오고 있다.


박은혜 기자 ogdg0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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