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거대 산업문명이 붕괴하고서부터 1000년, 녹과 세라믹조각들로 뒤덮인 황폐한 대지에, 썩은 바다 곧 부해(腐海)라고 불리는 유독한 장독을 내뿜는 균류의 숲이 확대되어,쇠퇴하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中-

 

 
작품은 시작과 동시에 황폐화된 세계의 모습을 담는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의 마지막에 이르면 또 다른 세계, 부해의 세계가 출현한다. 정점에 올라섰던 과학문명이 단 7일간의 전쟁으로 붕괴한지 1천년이 지난 후 세계의 모습이다. 한 번의 문명붕괴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생존했고 다시 산업문명으로의 회귀를 꿈꾸기 시작했다. 작중 등장하는 ‘토르메키아’와 같은 왕국이 그런 부류의 상징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모든 인류가 산업화된 세계만을 맹신하는 것은 아니다. 황무지와 부해가 뒤덮은 세계의 한복판에는 ‘바람계곡’과 같은 곳도 있다.

바람계곡은 한 때 번성했다가 쇠퇴하는 과정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근처의 부해가 뿜어내는 독기가 이곳에도 도달하지만 바람계곡은 그로부터 안전하다. 계곡에 부는 바람이 독기를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수시로 마을을 위협하는 유해한 독에 사람들은 부해를 두려워하나 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 부해를 대하는 태도에, 산업문명과 바람계곡 사이의 차이가 있다.

작중 산업문명은 세상을 뒤덮고 독을 내뿜는 식물들의 숲, 즉 부해를 적으로 규정하는 태도를 내비친다. 그들이 꿈꾸는 고도 산업문명의 세계에서 부해는 오로지 파괴해야할 대상이다. 반면 바람계곡에서는 그렇지 않다. 작품은 바람계곡의 공주, 나우시카를 통해 부해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 나우시카가 부해의 한 식물을 연구하고 있다.

나우시카는 아버지를 포함한 마을주민들이 독으로 인해 고통 받는 상황에도 독의 근원지, 부해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나우시카는 부해를 이탈한 균류를 돕는가 하면 인간과 부해의 균류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자처한다. 부해가 내뿜는 독의 유해함을 고려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부해에 대한 스스로의 연구 끝에 그녀가 발견한 사실은 충격적이다. 부해가 지구의 자정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부해는 인간이 파괴시킨 땅을 복원하기 위해 출현했다.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이기적 발전만을 고집하는 문명이 자멸했던 과거를 부해는 알고 있던 것일까? 부해는 다시 그 과오를 범하려 는 인간에 맞서 독을 뿜기 시작했다. 작품은 산업과 기술의 발전만을 맹신하는 인간과 자연으로 대표되는 부해의 대립을 이를 통해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공들여 쌓아올린 산업문명의 성과는 단 7일만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문명의 붕괴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 끼친 영향이다. 그로부터 1천년이 지난 작중의 시점에도, 지구는 여전히 이전의 자연상태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문명의 금자탑은 7일만에 무(無)로 돌아갔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지구는 1천년 째 폐허 상태로 남아있다. 자연을 회복시키는 일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작품의 인류와 실제 오늘을 살아가는 인류의 환경관(環境觀)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작중, 트로메키아는 균류를 저지하기 위해, 세상을 폐허로 만든 원인인 ‘거신병’을 다시 깨워낸다. 거신병이 문명붕괴의 원인이었음에도 필요에 따라 그 과오를 다시 범하는 그들은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 우리 역시 환경보다는 개발을, 공존보다는 발전을 맹신하지 않는가. 미세먼지 등 각종 환경오염이 심화되는 현실 앞에서 우리 역시 현실의 거신병을 깨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중 인간과 부해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바람계곡에는 ‘바람’이 그친다. 자연의 분노가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일 것이다. 부해의 독과 균류는 때를 기다리지 않고 마을을 습격한다.

현실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자연의 ‘한계’를 시험해서는 안 된다. 바람계곡의 바람이 거짓말 같이 멈춘 것처럼 우리 세상의 바람도 언제 그칠지 모르는 일이다. 힘 없이 파괴되는 자연의 나약함을 보는 동시에 수배의 재앙으로 찾아오는 자연의 무서움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기태 기자 gitaeuhjin0330@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