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민트, 뜨거운 고추. 영어로도 두 음식은 cool과 hot으로 표현됩니다. 다른 많은 언어에서도 곧잘 매운 맛을 온도와 관련시키죠. 이는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요, 과학적 필연일까요?

이제는 매운 맛은 ‘맛’이 아니라 촉감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실제로 매운 고추를 피부에 바르면 따끔따끔하고 아프기 시작하죠. 이상하지 않은가요? 만지는 것이 아닌데 촉감이라니요. 기본적으로 우리가 감각을 느끼기 위해서는 ‘감각기’가 자극돼야 합니다. 우리 피부에는 촉감을 위한 다양한 감각기가 있습니다. 감각기들은 눌리는 압력, 진동, 온도 등 물리적 상황에 반응하여 뇌로 신호를 보내죠. 하지만 매운 맛은 화학적 반응입니다. 매운 맛을 내는 분자는 감각기의 이온 채널에 결합하여 감각기가 신호를 내도록 유도합니다. 이 신호가 강하고 지속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 시나몬이나 오레가노, 유칼립투스 모두 매운맛을 내는 음식이다. 이 음식들은 TRPV3를 자극한다. TRPV3는 약 33도 이상의 온도에 반응하는 감각기이다. 때문에 시나몬을 먹으면 따뜻한 매운맛을 느끼게 된다. 시린 겨울 시나몬이 올라간 핫초코가 그리워지는 이유중 하나다.

매운 맛은 다양한 종류의 감각기 중 온도를 감지하는 감각기를 자극합니다. 매운 맛이 흔히 온도와 연결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왜 민트는 차갑게 느끼고 고추는 뜨겁게 느껴질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감각기의 원리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선 온도를 느끼는 감각기는 각자 느낄 수 있는 특정 온도 구간이 있습니다. 이 구간이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 피부는 온도를 세밀하게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중 고추에 들어있는 캡사이신은 TRPV1이라는 감각기를 자극합니다. 이 감각기는 42도 이상의 열에 반응하는 감각기입니다. 캡사이신이 이 감각기를 자극하면 뇌는 42도 이상의 열과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반대로 민트에 들어있는 멘톨은 TRPV8라는 감각기를 자극합니다. 이 감각기는 26도 이하의 온도에 반응하는 감각기입니다. 따라서 민트를 먹었을 때는 차가움을, 고추를 먹었을때는 뜨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매운 맛을 느끼게 하는 물질은 다양합니다. 대표적으로 고추냉이나 양파, 마늘 등이 있습니다. 이들에 들어있는 분자는 TRPA1이라는 감지기를 자극합니다. TRPA1이 온도감지기인지는 아직까지 논란이 많습니다. 뱀과 같은 동물들에겐 열 감지기로 쓰이나 인간의 TRPA1은 열에 거의 반응하지 않습니다. 좀 더 인간 중심적으로 보자면 ‘고추냉이 감지기’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고추냉이나 겨자에는 ‘알릴이소티오시아네이트’라는 물질이, 양파와 마늘에는 ‘알리신’과 ‘디알릴디설파이드’라는 물질이 들어있습니다. 이 물질들은 TRPA1과 TRPV1를 자극합니다. 따라서 고추냉이나 양파를 먹으면 뜨거우면서 따끔따끔한 매운 맛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고추냉이 속 ‘알릴이소티오시아네이트’라는 물질은 기화가 아주 잘 됩니다. 고추냉이를 먹고 숨을 내뱉으면 기화한 물질이 코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고추냉이를 많이 먹으면 콧속이 얼얼하게 되는 이유죠. 보통 양파를 썰 때 눈이 ‘맵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는 완전히 과학적인 표현인데, 양파를 자를 때 양파에 들어있는 ‘디알릴디설파이드’라는 물질이 기화돼 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각막에 있는 TRPA1을 자극하여 눈이 매워지는 겁니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게 되지요. 또한 이 물질은 가열하게 되면 설탕의 50배에 달하는 단맛을 내는 물질로 바뀌게 됩니다. 그 때문에 양파와 마늘을 익히면 달달하게 변하여 먹기 좋게 됩니다.

또한 마늘과 양파를 먹고 나면 특이한 입 냄새가 납니다. 이는 ‘알리신’이 내는 냄새입니다. 이 물질을 먹고 소화를 시키면 핏속에 알리신이 많이 녹아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 물질은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폐에서 기화되게 되죠. 따라서 날숨에 알리신이 섞여 나오게 되고 입 냄새가 나게 되는 것이죠. 양파나 마늘을 먹고 나는 입 냄새는 입에서 나는 게 아니라 폐에서부터 나는 냄새이기 때문에 아무리 이를 박박 닦아도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캡사이신과 멘톨 모두 물보다 기름에 잘 녹는 ‘지용성’입니다. 이 때문에 매운 맛은 보통 오랫동안 입에 남아있고 물을 먹어도 잘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유에 들어있는 지방에는 잘 녹습니다. 매운 음식을 먹고 난 후 우유를 먹으면 매운 맛이 빨리 사라지는 이유입니다. 반면에 고추냉이의 매운 맛은 조금만 참으면 금방 없어지는데, 고추냉이에 들어있는 물질은 물에 잘 녹는 ‘수용성’이기 때문입니다. 매운 맛, 알고 먹으니 좀 더 맛있게 느껴지지 않나요?


최강록 기자 rkdfhr123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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