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기준을 정하기 힘든 추상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가 무수히 많다. 사랑, 증오, 동경 등 타인을 향한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있고, 행복, 우울, 분노 등 본인의 현재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들도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행복’에 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행복’ 역시 그 기준이 너무나 모호하다. 누군가에는 소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소소하지 않고 상당한 정도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감정적 차원의 행복과 물질적 차원의 행복 또한 다른 것이고 이를 구분 짓는 방법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책 제목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UN에서 제시한 세계행복지수 지표를 살펴보면 매년 덴마크는 최상위권인 1,2,3위를 오르내린다. 덴마크 국민들은 ‘객관적으로 행복한’ 나라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가 출판된 2014년 당시만 하더라도 세계 41위를 기록했었으나 작년 기준 10점 만점에 5.875점을 기록하며 57위로 추락했다. 이는 4년 만에 나라가 ‘객관적으로 불행해졌음’을 시사한다. 덴마크와 비교했을 때 대한민국이 상대적으로 불행한 나라에 속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규정짓기 매우 힘들겠지만 공동체 단위의 행복 추구 정도가 행복지수에 반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행복한 공동체는 개인의 행복만 추구하지 않는다. 불행한 개인들이 협심해 행복한 사회를 만들었고, 그 행복 사회가 다시 개인의 행복을 지탱해주는 선순환이 덴마크에서 일어나고 있다. 개인의 부와 성공을 행복의 척도로 여기지 않는 덴마크의 문화가 커다란 공동체의 행복을 낳은 것이다.

약 150년 전 전쟁에서 상당한 영토와 인구를 잃은 덴마크 국민들. 이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사회를 재건했다. 지금의 덴마크 시민정신과 교육정신의 큰 틀을 마련한 그룬트비, 대대적 황무지 개간 운동을 통해 농업 부흥의 기초를 닦은 달가스와 같은 리더가 상실 극복의 시대를 이끌었다. 또한, 그룬트비가 세운 성인용 자유학교인 호이스콜레에서 교육받은 시민들은 전역에서 협동조합을 무수하게 만들어 연대의식을 키우고 이익을 극대화시키고자 했다. 불과 150년 전만 해도 패전의 아픔에 절망했던 덴마크가 현재 세계행복지수 최상위권의 나라가 됐다는 사실은 우리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행복한 공동체는 결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다.

덴마크는 나라 전체가 불행에서 행복으로 전환된 경우 중 매우 좋은 선례에 속한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은 행복한 나라의 방향성을 제시할 뿐, 행복한 나라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완전한 지침서는 아니다. 결국, 완전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글의 최종 도착지는 행복이란 결국 상대적인 것이며 발상의 전환에 달렸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빚어내 경제지표를 높이기도 했던 우리나라 국민들이, 현재는 ‘헬조선’ 등 자국에 대해 비판 이상의 표현을 서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상이한 행복의 기준을 초월해 모두가 동등하게 행복해지는 날을 기대해본다.


허인영 수습기자 inyoung32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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