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신문
문화
900년 역사로 빚어낸 술, 삼해주
최강록 기자  |  rkdfhr123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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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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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무형문화재 8호, 김택상 명인을 만나다

창덕궁 바로 왼쪽 마을. 한옥들이 건듯건듯 보이는 동네에 서울의 술 삼해주가 만들어지는 공방이 있다. 공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술 익어가는 냄새가 기자를 반겼다. 누룩의 그 달콤한 냄새. 이곳에서 정말 맛있는 술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코끝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기자를 안내한 직원은 “물을 드릴까요, 술을 드릴까요?”라고 물어봤다. 기자는 술을 골랐다. 한 잔의 소주가 나왔다. 소주에서는 향긋한 누룩 냄새가 풍겨왔다. 45도의 독주였음에도 아주 부드러웠다. 기자가 술 한 잔을 비울 때쯤 서울시 무형문화재 8호 삼해주 보유자 김택상 명인을 만나볼 수 있었다. 쌀과 누룩, 물 그리고 정성으로만 만든 술, 삼해주를 만나보자.

   
▲ 서울시 무형문화재 8호 삼해주 보유자 김택상 명인. 그의 옆으로 발효되고 있는 삼해주의 항아리가 보인다.

   
 
양반의 술, 삼해주

삼해주(三亥酒)는 그 이름에서 술 만드는 방법을 엿볼 수 있다. 음력으로 새해가 돼 처음 맞이하는 돼지날(亥日) 처음으로 술을 빚기 시작해서 36일 뒤 있는 돼지날에 쌀을 추가하길 두 번 더해 총 3번에 걸쳐 술을 빚는 삼양주이다. 술을 빚는데 총 108일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고급술이다. 오랜 기간 술을 빚는 탓에 실패할 확률도 높았다. 또한 3번에 걸쳐 빚기 때문에 쌀이 많이 들어간다. 이런 이유로 예로부터 양반만이 마실 수 있던 귀한 술이었다.

삼해주의 명성은 문인들의 작품에 잘 나와 있다. 고려 중기의 문신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나는 또 특별히 시 한 수를 지어 삼해주(三亥酒)를 가져다 준 데 사례하다’라는 시가 있다. 또한 박인로의 「누항사」에도 “다만 어젯밤에 건넛집 저 사람이 ..(중략).. 갓 익은 삼해주를 취하도록 권하였거든 이러한 은혜을 어찌 아니 갚겠는가”라는 구절이 나온다. 삼해주가 귀한 술로 대접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사자산 동유기」에서는 “삼해주를 사고 나란히 함께 산에 올랐다”라는 구절이 있고 「지봉집」에는 “맛난 술 삼해를 가득 기울이고”라는 문장이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문학 작품에서 삼해주를 마시며 즐겼다는 묘사를 찾아볼 수 있다. 양반들 사이에서 삼해주가 고급 술로써 향유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 삼해소주. 기자가 태어나서 먹은 술 중 단연 1등이라 자부한다.
서울의 술, 삼해주

고려 중기에 쓰인 『동국이상국집』에서 언급됐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삼해주는 고려시대부터 즐겨 먹었다. 또한 조선시대 중반에 와서는 삼해주를 증류해 소주(燒酒)로 만들어 먹으며 인기를 더해갔다. 삼해주는 보통 양반들이 집에서 빚어 먹는 가양주(家釀酒)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올수록 삼해주에 대한 수요가 늘며 마포에서 대량으로 삼해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조선 시대 마포에서는 옹기를 만드는 옹막이 수백 개가 있었다. 옹기는 겨울이 되면 수요가 떨어져서 옹막의 가마가 쉬었는데 겨울에 만드는 삼해주와 그 시기가 딱 맞았다. 또한 흙으로 만들어져 있는 가마는 습도와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돼 삼해주를 빚기에 그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었다. 거기다 마포나루는 한양으로 쌀이 들어오는 입구였다. 이런 요소들이 맞아떨어져서 마포는 삼해주의 최대 생산지가 됐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소주는 서울 마포 공덕에서 대흥동 사이에 있는 독막 주변에서 만드는 삼해주가 최고 좋은데 수천, 수백 독을 빚어낸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숱한 고비를 넘긴 삼해주

하지만 삼해주는 그 명맥이 끊길 뻔한 고비를 여럿 넘기기도 했었다. 삼해주는 쌀이 많이 들어가는 탓에 금주령(禁酒令)의 표적이 되곤 했다. 쌀이 귀했던 조선에서는 삼해주를 금지하자는 상소가 자주 올라왔다. 조선 영조 때 형조판서 김동필이 “서울로 들어오는 쌀이 삼해주 만드는 데로 쏠려 들어가니 미곡정책상 이를 금함이 옳다”라는 상소를 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영조 때 금주령이 내려지며 삼해주는 첫 번째 위기를 맞게 된다. 몇 십 년 동안 술을 빚지 못하자 술 빚는 법을 잃어버릴 뻔한 것이다.

또한 일제 강점기 때는 전통주에 대한 탄압으로 그 명맥이 완전히 끊길 뻔했다. 일제가 가양주에도 면허제를 만들고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주세법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양조 면허를 대물림할 수 없게 해 30만 개가 되던 자가양조(自家釀造) 면허를 완전히 없애 버렸다. 이후 가정에서 술을 빚는 것은 모두 밀주로 처벌을 받게 됐다.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김치를 담그듯 집집마다 술을 빚었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가양주라는 개념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 때 삼해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많은 전통주의 명맥이 끊어지거나 끊어질 뻔했다.

   
▲ 전자식 발효실의 내부 모습. 항상 삼해주 발효에 적합한 온도인 10도로 유지된다고 한다.

   
▲ 삼해주를 가지고 소주를 내리는 모습. 삼해소주는 맛과 향을 위해 유럽식 증류기를 사용한다.

삼해주를 지키는 사람, 김택상 명인

다행이 삼해주의 명맥은 두 집안 덕분에 유지될 수 있었다. 그중 한 집안이 통천 김씨 가문이다. 가문의 술을 잇고자 김택상 명인은 ‘삼해소주가(家)’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술은 한옥들이 자리하고 있는 북촌에서 익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삼해주를 지키고 있다. 인터뷰 내내 그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술에 대한 자긍심이었다.

그는 술의 맛을 좌우하는 첫째 요인은 ‘정성’, 둘째는 온도, 공기와 같은 ‘환경’, 셋째는 쌀, 누룩, 물과 같은 ‘재료’를 꼽았다. 첫째가 정성이기 때문에 어디서든 마음만 제대로 돼 있다면 보통 이상의 술을 만들 순 있다고 했다. 또한 삼해주는 서울의 물인 아리수를 이용해 만든다. 김택상 명인은 “생수나 정수기의 물은 술이 될 수 없는 물”이라며 서울에서 쓸 수 있는 물 중 술을 만들기 제일 적합한 물은 아리수뿐이라고 했다.

알려지지 않은 전통, 전통주

김택상 명인은 많은 청년들이 전통주를 고루하고 격이 떨어지는 술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청년들이 우리 전통주를 먹어 보았으면 한다고 했다. 우리의 탁주와 소주가 외국에서 수입되는 와인과 양주에 비교해서 몇 배는 우리의 입맛에 맞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니듯 맛있는 술을 찾아 먹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또한 초록색 병에 담긴 희석식 소주와 시중에서 파는 막걸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라고 불리는 것도 안타까워했다. 그는 “희석식 소주는 에탄올 주정에 첨가물만 많이 넣어 만든 근본이 없는 술”이라며 “그런 술이 전통주를 밀어내고 한국을 대표하는 술로 자리 잡았는데 안타깝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는 공방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술 체험 행사를 열고 있다. 전통주가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 되도록 하려는 그의 노력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삼해주는 어떻게 먹는 것이 좋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삼해주와 같은 고급술은 절대 과하게 먹는 술이 아니라고 했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라 맛과 향을 즐기는 술이기 때문이다. 또한 술 자체의 향을 거스르지 않는 삼삼한 안주와 같이 먹는 것이 삼해주의 고급스러운 향을 즐기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김택상 명인은 기자에게 술이 살아가는데 활력소가 될 정도만 먹는 것이 술을 대하는 자세임을 잊지 말아 달라고 했다.

어제와 오늘을 함께 담은 술, 삼해주

김택상 명인의 술에는 물과 누룩, 쌀 이외의 것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음료수가 아닌 ‘술’을 만든다는 그의 자부심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옛날의 것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술의 맛을 위해 유럽식 증류기를 이용해 소주를 내리고 전자식 발효실을 사용하는 등 현대의 것을 접목시키고 있다. 옛 것과 현재의 것이 섞여 최상의 맛을 내는 삼해주야 말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과 꼭 닮아 있는 술이 아닐까.


글·사진_최강록 기자 rkdfhr123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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