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6번 교향곡 ‘비창(Pathetique)’ 4악장

▲ 차이콥스키(1840~1893)의 초상화. 그는 살아있는 동안에도 작곡가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러시아의 천재 작곡가. 클래식의 거장.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그는 러시아 고전주의 음악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다. 많은 클래식 작곡가들과는 달리 그는 살아있을 당시에도 작고가로써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로미오와 줄리엣’ 등 유명한 곡을 작곡했다. 차이콥스키가 쓴 많은 곡 중 교향곡 6번 ‘비창’의 4악장을 함께 음미해 보자.

고전주의 시대 교향곡(Symphony)은 4악장으로 구성된다. 비창 또한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일반적인 교향곡과는 구성이 약간 다르다. 보통의 교향곡은 3악장에서 4분의 3박자의 느린 왈츠풍의 곡이 나오고 4악장에는 빠르고 화려한 피날레 곡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하지만 비창은 여느 교향곡들과는 다르게 3악장에서 빠르고 화려한 곡이 등장하고 반대로 4악장에서는 아주 슬프고 느린 곡이 흘러나온다. 또한 대부분의 교향곡들이 장조의 화음과 현란한 박자로 교향곡의 끝을 장식하는 것과 다르게 비창은 끝없는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마무리 된다. 차이콥스키의 죽음을 알아보면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러시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차이콥스키는 콜레라에 의해 사망했다. 하지만 음악계에서는 자살이라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동성애자였는데 당시 러시아에서 동성애는 최소 종신형이었다. 이 때문에 차이코프스키의 법률학교 동창들은 그에게 명예로운 자살을 종용했고, 그는 비소를 먹고 자살했다는 것이다. 차이콥스키가 비창을 세상에 내놓은 지 9일이 지난 후였다.

비창 4악장을 들어보면 이 곡이 그가 죽음을 앞두고 쓴 곡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비창 4악장은 현악기들이 우울하고 구슬픈 주제를 연주하며 시작한다. 차이콥스키도 악보에 ‘비탄하듯이 느리게’라고 적어 놓았다. 또한 대부분의 멜로디들이 아래로 내려가는 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초반의 바이올린을 들어보면 교묘하게 멜로디를 조합해 둔 탓에 음이 끝을 모르고 낮아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4악장이 더욱 서글픈 것은 간간히 있는 위로 올라가는 멜로디이다. 이 멜로디는 위를 향해 절규하듯 처절하고 구슬프게 올라가지만 이내 다시 끝없는 밑으로 추락하게 된다. 아무 희망 없이 추락하기만 하는 것 보다 약간의 희망이 보이는 듯하지만 절대 닿을 수 없는 상황이 더욱 비참하다. 이 곡 또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을 처절하게 꺾음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큰 비창을 느끼게 한다.

이 4악장에서 슬픔이 절정에 달하는 부분은 곡의 후반부에 있는 탐탐(징처럼 생긴 타악기로 낮고 긴 잔음을 발생시킨다)이다. 앞선 주제들이 반복되며 음이 낮아지다가 어느 순간 장례식장의 종소리처럼 탐탐 소리가 공연장을 메운다. 마치 완벽한 패배와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신호처럼 들린다. 이 소리가 어찌나 강렬한 인상을 주는지 어떤 지휘자들은 이 탐탐의 여운을 남기고자 탐탐 이후 1마디를 쉬기도 할 정도다. 이후에는 선율이 단조로 바뀌며 현악기들은 더욱 슬픈 음악을 낸다.

▲ 비창 4악장의 초반부 퍼스트와 세컨 바이올린 악보. 두 바이올린이 오르내리는 음을 연주하고 있음에도 내려가는 음처럼 들린다. 악보에 ‘비탄하듯이 느리게(Adagio lementoso)’라고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비창 4악장이 슬픈 이유는 4악장 안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악장 다음에 위치하고 있다는 그 구조적 특징에서도 그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비창 3악장은 행진곡풍의 악장으로 즐겁고 신나는 곡이다. 또한 화성이 풍부해서 듣는 내내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감상자를 흥분시킨다. 곡의 후반부에는 심벌과 북이 가세해서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즐겁고 신나던 3악장이 끝나자마자 슬픈 멜로디의 4악장이 시작된다. 두 악장 간의 극명한 대조는 4악장을 더욱더 슬프게 한다. 빛이 강할 때 그림자는 짙어진다. 마찬가지로 기쁨 뒤에 찾아오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다. 이것이 차이콥스키가 보통의 교향곡들과는 다르게 3악장에 가장 신나는 곡을 배치해 둔 이유다.
이 교향곡은 마지막에 첼로의 무거운 지속음이 점점 작아지며 끝이 난다. 소리가 아주 조금씩 작아지기 때문에 끝의 경계가 모호하다. 감상자로 하여금 마치 끝없는 심연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두고 평론가 ‘리처드 타루스킨’은 ‘더 이상 끝나지 않고 죽어간다’라고 표현했다.

차이콥스키가 자살하기 전에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썼던곡. 비창 4악장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으로 불리는 것은 차이콥스키의 그 심정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최강록 기자 rkdfhr123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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