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신문
문화
성벽 따라 걸어보자, 한양도성 ‘新’순성놀이
글·사진_ 한승찬 기자  |  hsc703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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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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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과 순성놀이

사적 제10호로 지정된 한양도성은 조선의 도읍 한양의 성곽이다.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은 날씨 좋은 봄과 가을에 한양도성을 따라 걸어 다니며 도성 안팎의 자연 경관을 즐기는 ‘순성놀이’를 했다. 한양 사람들의 명소였던 한양도성은 근대화와 도시화로 원형의 3분의 2밖에 남지 않게 됐다. 남아있는 구간 중에서도 일부 구간은 보안상의 이유로 출입이 차단된 적도 있었다. 이렇다 보니 자연히 서울 사람들과 도성 사이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도성과 도성 주변의 명소에 대해 낯설어 할 독자들을 위해 한양도성 ‘신’ 순성놀이 코스를 소개한다.

 
   
   
 

도성 서북구간
윤동주와 1.21의 순성길

   
 
한양도성 서북 구간은 인왕산에서 북악산에 이르는 산이 많은 구간이다. 그만큼 성곽의 보존 상태도 평지에 비해 좋은 편이다. 그러나 이곳은 한동안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던 곳이었다. 이곳으로 북한의 무장공비가 침투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1968년 1.21 사태이다. 무장공비들은 북한산 자락을 넘어 자하문 인근 경찰 초소에서 총격전을 시작했다. 이 사건으로 수십 명의 사람이 사망했다. 1.21 사태로 출입이 금지된 한양도성의 북악산 구간은 2007년이 돼서야 신분증 지참을 조건으로 정해진 시간 동안만 출입할 수 있게 됐다.

산지에 있던 숙정문을 대신해 주로 사용됐던 창의문(자하문)이 위치한 부암동은 북악산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모여 시원한 계곡이 있다. 바로 백사실계곡이다. 백사실계곡은 예부터 선비들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아 정자와 건물을 지어서 자연을 벗 삼아 놀았다고 전해진다. 현재도 맑은 물이 흘러 북악산을 등산하는 사람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부암동에는 윤동주문학관과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이곳에서 자취를 했는데, 그때 자주 인왕산 언덕에 올라 시상을 가다듬었기 때문에 언덕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 또한 인근의 오래된 수도 가압장 시설을 개조해 만든 윤동주문학관은 천장이 뚫려 하늘을 볼 수 있는 특별한 건축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윤동주의 시 구절을 건축으로 구현한 것 같은 이 건물은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도성 동북구간
한옥의 멋과 함께하는 순성길

   
 
한양도성의 동북쪽 구간은 북악산 자락에서 낙산을 지나 흥인지문에 이른다. 이 구간은 언덕배기를 따라 지어진 마을들이 성곽을 따라 있는 곳이다. 특히 성곽이 지나는 성북동과 이화동 주변으로 전통 한옥과 오래된 마을들이 남아 있다.

먼저 성북동에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이 만년을 보낸 심우장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이자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의 옛 집이 남아있다. 이곳 성북동의 한옥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지어졌는데 익선동, 북촌 등의 한옥마을을 조성한 정세권(鄭世權, 1888~1965)이 일대를 개발했다. 정세권은 귀족의 집터였던 곳을 작은 필지로 나눠 ㅁ자, ㄷ자, ㄱ자, ㅡ자의 이른바 ‘도시 한옥’을 조성했다.

우리가 쉽게 도시 한옥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TV드라마에 나오는 ‘마당 있는 집’인데, 대부분 중심부에 마당과 같은 지붕 없는 공간이 있고 주위에 방들이 모여 있는 구조다. 도시 한옥은 건물 특유의 아기자기함으로 인해 소위 ‘감성’ 넘치는 카페나 식당 등으로 많이 개조돼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성벽 자락에는 오래된 저층 주거지들이 밀집해 있다. 특히 성북동의 북정마을과 이화동의 이화벽화마을은 대표적인 성곽 안팎의 마을이다. 서울시에서는 고층 건물이 들어서 성곽의 경관을 해치는 것을 방지하고 저층 주거지 주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자 ‘성곽마을’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성곽마을’은 개발보다 보존에 초점을 둬 한양도성의 경관을 지키고 마을공동체 사업을 통해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이 구간에는 한양도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혜화동에는 옛 시장 공관을 개조한 한양도성 전시·안내센터가 있으며 흥인지문 바로 옆에는 한양도성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도성 서남구간
표지판과 안내판의 순성길

   
 
한양도성이 남산 동쪽 자락을 지나 서쪽 자락으로 내려오면 안중근기념관 앞을 지난다. 이곳은 현재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신궁이 있었다. 조선신궁은 일제가 세운 일본식 신사로 일제의 정치적 강점을 상징하는 조선총독부와 더불어 일제의 사상적 강점을 드러내려 세운 곳이다. 해방 후 이곳은 일본인들이 직접 철거했다.

현재 조선신궁 터는 도성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남산 자락을 내려와 숭례문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남대문시장이 있다. 남대문시장은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유서 깊은 시장으로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 지주와 상인들이 한국인 상인들을 몰아내고 영업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곳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미제 상품이나 수입 상품들을 주로 사고파는 장소가 됐다. 수많은 품목 중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바로 카메라다. 카메라는 예나 지금이나 고가의 수입품이었는데, 수입품을 거래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곳이 바로 남대문시장이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필름카메라부터 디지털카메라, 각종 렌즈와 부속 장비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숭례문에서 인왕산 자락에 이르는 구간은 거의 모두 사라졌다. 따라서 한양도성 순성길을 안내하는 안내판과 표지판에 의존해서 걸어가야 한다. 숭례문에서 돈의문 방향으로 걸어가면 서양식 건축물이 모여 있는 정동이 나온다. 정동은 개항 이후 외국인 선교사와 외국 공사관의 외교관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서양 문화의 도입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또한 이화학당과 배재학당 등의 신식 학교도 이곳에서 처음으로 터를 잡았다. 정동은 서양 건축물이 자아내는 이국적인 모습으로 여전히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다.

도성 동남구간
시장과 먹자골목의 순성길

   
 
낙산 언덕에서 흥인지문으로 내려오면 성곽의 평지 구간으로 접어든다. 산이나 언덕을 지나는 성곽에 비해 평지에 위치한 성곽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구간이 거의 없다. 동대문 이남에서 남산 자락에 이르는 구간도 마찬가지이다. 이 구간은 성벽이 헐리고 시장이나 운동장과 같은 여러 시설이 들어섰다.

평화시장과 동대문시장은 우리나라의 의류업계의 중심가로, 산업화 시대에는 수출의 역군이었고 최근에는 한류 열풍의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 동대문시장은 우리 민족자본으로 지어진 근대 상설시장으로, 배오개시장으로도 불렸다.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로 지정된 이곳은 오토바이로 원단이나 의류를 나르는 사람들과 원단 샘플을 한가득 비닐봉투에 넣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패션타운 옆으로는 특이하고 낯선 모양의 건물이 있다. 이제는 서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소가 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다. 이곳은 본래 한양도성이 지나던 곳으로, 남산 등지에서 발원한 개천이 지대가 낮은 이곳을 통과했다. 냇물의 통과를 위해 아치 모양의 시설을 두었는데, 이것을 ‘이간수문(二間水門)’이라고 불렀다. 또한 이 구간은 지대가 낮고 평탄해 특별한 방어시설이 필요했다. 치성(雉城)이 바로 그것이다. 치성은 성벽 밖으로 튀어나와 있어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다. 현재 DDP 옆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복원돼 있다. 모두 일제강점기 동대문운동장(당시 이름은 경성운동장)을 짓기 위해 모두 헐리게 됐다. 이간수문과 치성은 2010년 DDP를 짓기 위해 운동장을 철거하고 땅을 파면서 발견돼 복원이 이뤄졌다.

DDP를 지나 남쪽을 향해 걷다 보면 먹자골목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장충동의 족발 골목과 신당동의 떡볶이 골목이 있다. 족발과 떡볶이 모두 한국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두 음식 모두 전쟁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만들어서 팔았기 때문이다. 이후 시간이 지나며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골목 대부분의 가게에서 저마다 ‘원조’임을 주장하는 문구를 써넣었다는 것이다. 먹자골목을 지나 장충체육관 방향으로 가면 성벽은 남산을 넘어가게 된다.


글·사진_ 한승찬 기자 hsc703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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