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동안 에브리타임은 ‘퀴어’에 대한 논의로 뜨거웠다. K교수님과 퀴어시대의 논란에 대한 논의들도 있었지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글들이 게시판을 채우기도 했다. 낯이 뜨거웠다. 원색적인 비난과 혐오. 어쩌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모욕받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게 됐나. 어쩌다 우리는 오롯이 자신만을 생각하게 됐을까.

‘편견의 말들’ 전시회 기사를 준비하며 이런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이런 문장도 편견의 말일까?’라고 생각했던 것도 상대의 입장이 돼 생각해 보니 충분히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라는 말. 자신이 내뱉는 문장을 상대의 입장이 돼 생각해 본다면, 조금의 존중만 더한다면, 적어도 혐오의 말을 함부로 쓸 수는 없지 않을까.

이번호를 준비하며 정말 많은 사람과 인터뷰를 해 봤다. 서울퀴어문화축제,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 참가자와 진행자 등 다양한 생각을 가진 분들과 말을 나눴다. 양측의 말을 들어보며 좁혀야 할 골은 깊다는 것을 느꼈다. 서로가 상대의 말에 반대만 할 뿐 경청하지 않는 탓에 허수아비를 향한 반박이 오갔다.

중립을 맞추기 힘든 기사였다. 서로 반대편이 주장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을 하고, 소통만 된다면 간단히 넘어갈 문제를 가지고 오해를 쌓아가는 게 보였다. 경청 없이 반박만 하니 제대로 된 결론이 나올 리 만무했다.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라고 쓰여있는 성경의 말씀처럼 우선은 상대를 들어야, 상대를 존중하며 말해야 소통도 가능하다. 혐오나 불통의 방법보다는 경청과 존중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최강록 학술부 정기자 rkdfhr1234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