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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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 깊게 스며든 지하철 2호선서울 지하철 2호선 개통 35주년 기념특집
한승찬 기자  |  hsc703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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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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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강남, 잠실, 홍대, 사당, 건대…. 여기에 제시된 지명들은 서울 시내의 ‘번화가’라고 부르는 곳이다. 소위 ‘불야성’이라고 부르는 서울의 번화가는 내국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외국인도 즐겨 찾는 서울의 명소가 됐다. 이곳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바로 ‘서울 지하철 2호선(이하 2호선)’이 지나는 곳이라는 것이다. 서울의 ‘핫 플레이스’를 순환선으로 이어주는 2호선은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11억 2천만 명이 이용하며, 하루에 300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지하철 노선이다. 이 수치는 전국의 지하철 노선 중 가장 많은 수치다. 1984년 완전 개통된 2호선은 운행을 시작한 이래로 서울 대중교통의 중심이 됐다. 서울시립대신문에서는 2호선 개통 서른다섯 해를 맞아, 2호선이 우리 사회와 문화에 끼친 영향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국내 유일 순환선 2호선, 이용객 수 1등 역과 꼴등 역은?

2호선은 을지로-왕십리-건대-잠실-강남-사당-영등포-홍대-신촌을 지나 다시 을지로로 돌아오는 60.2km의 지하철 노선이다. 2호선은 고리 모양의 순환선(48.8km)과 성수-신설동, 신도림-까치산을 잇는 지선(支線)으로 구성돼 있다. 출발했던 곳에서 한 바퀴 돌아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올 수 있는 순환 구조는 2호선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우스갯소리로 2호선을 타고 잠이 들었다 깼더니 처음 탔던 곳으로 되돌아와 적잖이 당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2호선의 또 다른 특징은 여타 지하철 노선과 달리 행선지가 정해져 있지 않고, 순환하는 방향을 구분해 행선지를 안내한다는 것이다. 시계 방향으로 순환하는 내선순환과 반시계 방향으로 순환하는 외선순환이 바로 그것이다. 내선순환과 외선순환으로 이름이 붙은 이유는 지하철 모양이 동심원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동심원 안쪽의 원을 내선순환, 바깥쪽의 원을 외선순환으로 이해하면 된다.

2호선 순환선 상의 43개 역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은 강남역이다(2호선 기준). 강남역은 지난해 7,450만여 명이 이용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강남역에서 2호선을 타고 내렸다는 것이다. 반면 이용객이 가장 적은 곳은 아현역이다. 아현역은 지난해 768만 명이 이용했다. 범위를 넓혀 전국의 지하철 이용객 수를 살펴봤을 때 최다 이용객 수 1위부터 10위 중 고속터미널역과 지하철 서울역을 제외한 8개 역이 2호선 상의 역이었다.

   
▲ 1984년 전 구간 개통한 2호선(출처: 서울교통공사)

20분 만에 연필로 쓱싹, 2호선 건설 비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2호선, 서울의 주요 지역을 골라 지나는 노선인만큼 계획 과정에서 치밀한 사전 조사와 연구가 진행됐을 거라 미루어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2호선 노선이 당시 서울시장의 손으로 단 20여 분만에 그려진 것이라는 사실이 믿겨지는가.

우리대학 도시행정학과 교수를 오랫동안 지내고 지난 2016년 작고한 고 손정목 교수는 2호선 계획 과정에 참여한 인물 중 하나다. 그는 그의 저서인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제3권에서 2호선 노선 구상의 뒷이야기를 흥미롭게 저술했다.

손정목 명예교수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인 1975년 초의 어느 날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구자춘(具滋春, 1932~1996)의 호출을 받았다. 시장 집무실에 도착한 그는 책상에 서울시 전도를 펴놓고 골몰히 생각하는 시장을 봤다. 구 시장은 책상 앞에 도시계획, 지하철 관련 책임자들을 세워놓고 지도 위에 색연필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 그는 “구로공단 앞은 통과해야 하겠지…”, “서울대 앞은 이렇게 지나가야겠군…” 라는 말을 하며 20여 분 동안 선을 그었다. 선 긋기를 완료한 구 시장은 실무자에게 지도를 건네며 이대로 지하철 노선을 계획한 후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국내 유일의 순환선 노선인 2호선은 이렇게 극적으로 계획됐다.

2호선은 본래 서소문-시청-을지로-왕십리를 잇는 노선으로 계획됐다. 또한 순환선은 기존의 노선들이 방사형으로 조성된 이후 건설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서울에 지하철 노선이라고는 서울역 앞과 청량리역을 잇는 서울 지하철 1호선밖에 없던 시절, 다음으로 건설하는 노선을 순환선으로 계획하는 것은 엄청난 위험이 수반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구자춘 시장으로 하여금 지하철 계획을 급격하게 변경하도록 만들었을까. 그 주된 요인은 바로 ‘3핵도시론’이다.

현대 서울의 도시 구조 확립에 기여한 2호선

3핵도시론은 도시 내에 3개의 핵, 즉 도심지역을 배치해 기능과 인구를 분산하는 방식을 뜻하는 말이다. 이전까지의 서울은 종로와 을지로, 세종로 등이 있는 사대문 안의 지역만이 도심인 단핵도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로 인해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서울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면서 더 이상 기존의 도시구조로는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서울시의 고정 과제는 시가지를 확장해 인구를 분산시키는 것이었다.

정부와 서울시는 이러한 맥락에서 기존의 도심과 함께 영등포 지역과 강남 지역을 새로운 도심으로 육성하기로 결정했다. 강남과 영등포 등지의 너른 땅에 대규모 택지를 조성해 늘어난 인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국회를 여의도(영등포)로, 법원과 검찰청을 강남으로 이전시키는 등 주요기관을 새로운 도심으로 옮겼다. 또한 기존 도심에 백화점이나 식당 등의 시설을 새로이 짓지 못하게 하는 등 개발 억제 정책을 동시에 실행하기도 했다.

2호선은 본격적으로 강남과 영등포 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도심과 강남, 영등포 지역을 연결하기 위해 계획된 노선이다. 만약 2호선이 순환선으로 지어지지 않았다면, 2호선이 지나가는 강남과 영등포 지역의 개발이 빠르게 진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 전대협 회원들이 선로를 걸어가 한양대역으로 가 사다리로 캠퍼스를 넘고 있다.(출처: 한대신문)

서울 주요 대학을 지나는 2호선이 학생운동에 미친 영향

인터넷 상에서 재치 있는 학교 급훈으로 알려진 것들 중에서 ‘2호선을 타자’라는 급훈이 있다. 급훈의 의미는 2호선을 타고 통학할 수 있는 대학교를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자는 것이다. 2호선을 타고 갈 수 있는 주요 대학은 홍익대,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한양대, 건국대, 서울교대, 서울대 등이 있다.

서울 내의 많은 대학을 지나는 만큼, 수많은 대학생들이 통학을 위해 2호선을 이용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2호선이 개통된 이래로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의 대학생들은 2호선을 통학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음은 과거 학생운동이 치열하던 시절 2호선에 관련된 대학생들의 일화다.

1989년, 국내 최대 학생운동 단체 전국대학생대표자 협의회(이하 전대협)가 전경들에 의해 한양대에서 봉쇄된 채 농성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한양대 주변을 원천 봉쇄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2호선 한양대역은 마찬가지로 정차하지 않고 통과했다. 전대협 회원들은 한양대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한양대역 바로 옆의 역이었던 뚝섬역에서 모두 내린 후 승강장에서 선로로 뛰어내려 선로를 따라 한양대역 옆의 담을 넘어 캠퍼스 안으로 진입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당시 학생운동을 했던 연세대 학생 A씨는 “선배들이 선로로 걸어가 한양대로 진입했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구전됐던 이야기라 매우 유명하다”며 이 일화를 소개해줬다.

이외에도 당시 학생운동을 벌이던 대학생들이 직·간접적으로 2호선을 이용한 사례들이 눈에 띈다. 『동아일보』 1992년 4월 20일 기사에 따르면 2호선 전철을 타서 모인 대학생 2백여 명이 기습적으로 을지로입구역에 하차해 과거 미국문화원 건물로 쓰였던 서울시청 을지로청사에 화염병을 투척했다고 한다. 2호선이 학생들의 기동성을 높여준 것이다. 이런 측면을 보여주는 다른 예시로 당시 집회가 예정돼 있던 곳을 경찰들이 미리 봉쇄했을 때 학생들은 2호선을 타고 이동해 다른 대학에서 집회를 했다고 한다. 한편 학생들이 2호선 전철 안을 돌아다니며 학생운동을 위한 자금을 모금했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 1999년 재시공된 당산철교의 모습

2호선,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다

1994년 10월, 한강을 가로지르는 성수대교가 붕괴됐다. 이 사고로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더불어 안전 불감증에 의한 참사로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 서울시는 한강교량의 안전성에 대한 일제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2호선의 당산역과 합정역을 잇는 당산철교가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실 이전부터 각종 언론 보도에서 당산철교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돼 왔던 터라, 곧바로 철거 후 재시공을 결정했다.

당산철교는 1997년부터 전면 폐쇄돼 철거작업을 진행했다. 아찔했던 것은 철거작업을 진행하던 중 철교가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만약 열차가 지나가던 중 무너져 내렸다면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당산철교가 재시공되던 기간 동안 2호선은 순환선의 기능을 잃었다. 당산역에서 홍대입구역 간은 대체 셔틀버스가 운행됐다. 성수대교 사고로 인한 당산철교 재시공은 시민들에게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글·사진_ 한승찬 기자 hsc703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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