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신문
사회
노동자의 정신적 지주, 전태일을 만나다
허인영 수습기자  |  inyoung32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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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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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개관>


2018년 12월 11일 새벽, 한국발전기술 소속 계약직인 김용균 씨가 태안 발전소 석탄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현장에서 사망했다. 고 김용균 씨 사망 이후 국회에서 장기간 계류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의 개정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와 노동계가 적극적으로 산안법 개정을 요구한 결과, 지난해 12월 27일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비롯해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안법 개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아직 이 법안 역시 개선점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과거로 돌아가 1970년대를 돌이켜봐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 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는 무수히 많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노동운동가 전태일이다. 1970년 11월 13일, 분신자살로 20년 남짓의 짧은 일생을 마감할 때까지 노동 조건 향상을 요구하며 자본가에게 강력히 항거했던 전태일. 서울시립대신문에서는 전태일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전태일기념관’을 방문했다.

   
▲ 전태일이 어린 시절을 회상한 수기의 일부분으로 유명한 구절이다. 그가 남긴 대학노트 7권엔 이 외에도 일기와 친구들에게 쓴 편지, 미완의 소설, 노동청에 보낼 진정서, 사업 계획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근무 실태 조사를 위한 설문지 등이 기록돼 있었다.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여사, 노동자를 위해 평생을 바친 모자의 이야기

전태일기념관 내 3층 상설전시장에서는 전태일 열사와 그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가 걸어온 길을 엿볼 수 있었다. 전태일은 1948년 8월 26일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서 전상수(全相洙)와 이소선(李小仙)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난 때문에 거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17살 때인 1965년 학생복을 제조하던 청계천 평화시장의 삼일사에 보조원으로 취직했다. 1966년에는 재봉사가 돼 통일사로 직장을 옮겼다. 당시 전태일이 일하던 청계천의 평화시장은 의류 상가와 제조업체가 밀집돼 있는 곳이었다. 공장들은 모두 영세한 규모여서 6.6m²의 공간에서 13명이 일하는 곳도 있었고, 40m²의 공간에서 50여명이 일하는 곳도 있었다. 이처럼 좁은 공간에 다락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밀집시켜 일을 시키다보니 노동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노동자들은 햇빛도 비추지 않는 좁은 다락방에서 어두운 형광등 불빛에 의존해 하루 14시간씩 일을 했다. 환기 장치가 없어서 폐 질환에 시달리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전태일은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1968년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돼 법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지를 더욱 다지게 됐다. 1969년 6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바보회’를 만들어 설문으로 평화시장의 노동환경을 조사하며 근로기준법의 내용을 알렸다. 그러나 이 사실이 사업주들에게 알려지면서 전태일은 해고됐다. 한동안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지내던 전태일은 1970년 9월 평화시장으로 돌아와 삼동회를 조직했다. 이후 전태일과 삼동회 회원들은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벌여 근로기준법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하기로 했다. 경찰의 방해로 시위가 무산되려는 상황에 놓이자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병원에 실려 간 전태일은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이소선은 아들의 유언을 지키고자 1970년 11월 전태일의 친구들과 함께 청계 피복노조 결성을 주도했고 고문에 추대된다. 1980년대 중반까지 헌옷장사 등을 통해 번 돈으로 노동운동가와 수배자들을 돌보고 노동운동에 동참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의 어머니’, ‘노동운동의 대모’라는 별칭을 얻었다. 1986년에는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를 창립해 1993년까지 초대회장으로 활동했고,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 고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고문 등을 맡기도 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전태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 전태일기념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05(관수동 152-1)에 위치한 전태일기념관은 한국노동운동사에서 중요한 기점을 마련한 전태일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해 서울시가 건립한 노동복합시설이다. 2017년부터 서울특별시, 전태일재단 및 유가족, 노동계, 종교 및 문화예술계 15인을 중심으로 전태일노동복합시설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돼 2019년 4월 30일에 정식 개관했다. 정식명칭은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으로, 서울특별시가 설립했고 전태일재단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다. 1층엔 수장고, 2층엔 ‘울림터(공연장)’, 3층엔 ‘이음터(상설전시실)’, ‘꿈터(기획전시장)’, 4층엔 노동허브, 그리고 5층엔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전태일기념관 홍보기획담당 관계자는 2층 울림터(공연장)에 대해 “노동자, 청년들이 함께할 수 있는 문화의 장이 되고, 소통을 통해 노동의 가치와 의미,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 울림터에서는 개관 특별공연으로 음악극 <태일>, 개관 초청 공연으로 어린이극 <안녕, 태일>, 음악콘서트 <탈환의 시작 - 고백>, 제1회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노동영화제, 연극 <자본> 등이 진행됐다.

3층 꿈터(기획전시장)에서는 전태일의 꿈을 주제로 한 개관 기획전 <모범업체: 태일피복>을 이번 달 30일까지 진행한다. 이 기획전은 전태일이 1969년 겨울부터 1970년 봄까지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업계획서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사업의 목적부터 사업의 운영방법, 홍보계획 등을 비롯해 구체적인 사업 실현계획까지 자세하게 서술돼 있다. 전태일의 사업계획서에는 봉제기와 다리미 개수부터, 직원의 숫자와 공장부지 넓이, 이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각각의 단가와 총 비용까지 공장을 설립하기 위한 계획이 상세하게 서술돼 있다. 기계류 일부를 전시해 태일피복 공장부를 상상할 수 있도록 꾸몄다. 또한, 태일피복의 사업계획서에는 업무 공간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휴식할 수 있는 휴게공간에 대한 고민도 담겨있다. 이 중 전태일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교육기능을 담당할 ‘도서실’과 질 높은 휴식이 가능하도록 마련한 ‘음악감상실’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 전태일기념관 내 상설전시장에서 1970년대 당시 노동자들이 일한 다락방을 재현했다. 공장은 대부분 소규모로 노동자들은 1.5m가 안 되는 낮은 천장 때문에 허리를 펴고 일어설 수도 없었다.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사람 중심의 세상이 오길”

‘김용균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상이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으나 김용균 사고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사고는 무수히 많았다. 과거에 노동자의 근무 환경은 개선된 양상을 띠었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극악의 상황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전태일기념관 관계자 역시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준수를 외쳤던 1970년대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다”며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한 관심을 요구했다.

또한 이들은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사람 중심의 세상이 오길 희망한다”며 노동자에게 정당한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있음을 언급했다. 전태일기념관은 ‘학생, 청소년,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교육의 장이 되고, 시민 모두가 노동의 가치와 참된 삶의 의미를 깨닫는 문화의 전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설립 취지에 적합한 활동을 진행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글·사진_ 허인영 수습기자 inyoung3210@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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