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학교박물관에서는 지난 6월 20일부터 새 전시 <서울 만화방> 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2016년 <우리들의 한강> 전 이후 3년 여 만에 열리는 전시로 한국 만화의 역사와 김광성, 이희재 등 원로 만화가들이 그린 서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대학 박물관에서는 신문, 잡지, 단행본 등 다수의 만화 자료를 수집해왔는데, 박물관 측에 따르면 이번 전시에는 총 250여 점의 사진과 유물이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시립대신문에서는 전시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과거부터 오늘날까지의 한국 만화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만화,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

<서울 만화방> 전시가 한창 열리고 있는 우리대학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외신이나 외국인의 눈에 비친 19세기 말의 조선을 먼저 만나볼 수 있다. 수많은 문물들과 마찬가지로 만화 또한 서양에서 유입됐다.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된 만화는 주로 만평이나 삽화와 같이 문자 매체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려졌다. 서양인들은 섬세한 펜 선으로 당대 조선 사람들이 입었던 의복이나 생활 풍속을 그렸다. 이렇게 그려진 조선 사람들의 모습은 서양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와 달리 동양의 문화는 미개하다’와 같은 인식을 심어줘 제국주의 침략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도구로 쓰였다. 한편 우리나라 사람이 그린 최초의 만화로 여겨지는 것은 1909년 신문 『대한민보』에 게시된 이도영(1884~1933)의 시사만화다. 한국 만화계에서는 1909년을 한국 만화 원년으로 여겨 2009년 한국 만화 100주년을 기념해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후로는 일제강점기 당시 신문에서 연재됐던 삽화나 만평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당시의 생활 문화를 그대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말씨나 생각 역시 엿볼 수 있었다. 예컨대 잡지 『신동아』 1933년 6월호에 실린 나혜석의 삽화에는 당시 ‘경성’으로 불렀던 서울의 생활상이 들어가 있다. 삽화에는 경성역 승강장에서 “도시락, 사이다, 맥주에 정종, 담배에 성냥, 우유에 커피 등”을 외치며 간식거리를 파는 상인과 자전거를 타고 시내 이곳저곳을 누비는 냉면 배달부,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며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을 한탄하는 ‘모던 보이’의 모습이 묘사됐다.
만화는 좌우대립이 한창이던 1940~50년대 국가의 이념을 선전하는 데에도 사용됐다. 한국 전쟁 당시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양측은 각각 자신들의 체제의 우월성을 민간인들뿐만 아니라 상대측 군인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만화를 선택했다. 만화가들은 군 내 심리전 부대에 소속돼 만화를 그렸다. 내용은 주로 상대 체제의 잔학성과 야만성을 고발하고 안전을 보장해줄테니 무기를 버리고 귀순하라는 것이었다. 만화는 휴전 이후에도 상대편에 살포하는 삐라(전단)에 인쇄됐다.

▲ <서울 만화방> 전의 입구. 복고풍의 입구 디자인이 인상깊다.

▲ 전시회장 내부에 마련된 만화방. 90년대 만화방을 모티브로 당시의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소품들이 준비돼 있다.

▲ 전시회의 마지막, 체험 코너는 만화 컷을 직접 구성해보고 대사를 써넣을 수 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해 온 현대 한국 만화

앞에서 다룬 만화들은 초창기의 만화여서, 신문 한 구석에 연재된 몇 컷 혹은 몇 장으로 완전한 책의 형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인쇄 기술이 발전하고 만화 산업이 확장되면서 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만화책의 형태에 가까워졌다. 소재 또한 매우 다양해졌다. 예컨대 단순히 우리나라 전통 이야기를 재창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외의 만화를 번역해 배포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이른바 ‘딱지본’ 만화다. ‘딱지본’이란 그 표지가 울긋불긋 화려한 것이 마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딱지와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화려한 색감과 제목의 캘리그래피(글씨의 모양)를 중심으로 관람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한 과거 인쇄기술로 인쇄된 책인 만큼 당시 인쇄 기기의 한계로 그림의 라인과 채색이 어긋나며 만들어내는 느낌도 하나의 관람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가장 대표적인 딱지본 만화는 김용필 작가의 『강감찬의 전술』(1947)로, 고려 병사들을 이끌어 귀주대첩을 이뤄낸 강감찬 장군의 영웅담을 그렸다.
이후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위 ‘장르 만화’의 등장으로 역사, 순정, 명랑 만화 등의 다양한 장르의 만화가 제작됐다. 순정 만화는 사춘기 여학생을 독자층으로 해 청춘남녀의 연애 서사를 다루며, 명랑 만화는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만화로, 윤승운 작가의 『맹꽁이 서당』, 길창덕 작가의 『꺼벙이』와 같이 재밌으면서도 교훈을 주는 만화이다.
한편 작가의 원화(原畫)를 실제로 전시함으로써 만화가 제작되는 과정 역시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원화 중간중간 덧칠해진 화이트의 흔적이나, 연필선 자국 등이 생생함을 더했다. 그 옆으로는 1990년대 만화방을 재현해 관람하는 사람들이 만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놨다. 만화방 특유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직접 만화책을 읽어볼 수 있다. 진분홍색 소파와 책상, 복고풍 간판으로 흥미를 돋우는 공간 기획이 돋보였다. 만화방에는 김종래 작가의 『엄마찾아 삼만리』와 같은 고전 만화부터 강풀 작가의 『26년』까지 세대와 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이 있어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한국 만화의 제2막

1970~8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한국 만화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시련을 맞게 됐다. 한국 만화가 쇠퇴하게 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 중 주요한 이유는 바로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인쇄 매체가 쇠퇴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만화책을 읽거나 만화방을 가는 행위를 청소년의 일탈 행위로 간주하는 사회 통념 또한 한국 만화 쇠퇴에 일조했다. 실제로 과거 기성 언론에서는 잊을 만하면 정부 당국에서 불법 만화방을 단속했다는 기사를 실으면서 동시에 만화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것이라는 논조를 피력했다. 이에 더해 정부는 계속해서 만화에 대한 규제를 통해 만화 산업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했다. 종종 무명 만화가들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올 정도였다.
결국 2000년대 들어 종이책 만화(출판만화) 시장은 전성기에 비해 쇠퇴하게 됐다. 그러나 한국 만화에게 한 줄기 빛이 비춰졌다. 바로 인쇄 매체의 쇠퇴를 가져온 정보 기술을 이용한 ‘웹툰(Webtoon)’의 등장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시작된 웹툰 서비스는 오늘날 주요한 문화 콘텐츠가 됨과 동시에 해외로 번역·출판돼 또다른 ‘한류’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웹툰은 영화, 드라마, 연극, 애니메이션 등으로 각색돼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 만화의 제2막이 열린 것이다. 전시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러한 한국 만화의 미래를 다루고 있었다.

만화 속의 서울, 서울 속의 만화

서울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우리대학의 박물관이니만큼, 이번 전시에서도 서울과 밀접하게 연관된 만화 관련 전시품이 있었다. 특히 박완서 원작의 만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김광성 작가와 명랑만화 『악동이』의 이희재 작가가 그린 영화 장면 속 서울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김광성 작가는 근현대 영화 『미몽』, 『서울의 휴일』 등에 나오는 과거 서울의 모습을 마치 사진과 같이 그려냈다. 이희재 작가는 청계천 인근의 황학동 시장의 풍경과 중계동의 달동네 백사마을의 풍경을 정감 있게 그려냈다. 이러한 ‘만화 속의 서울’과 더불어 ‘서울 속의 만화’에 대한 전시도 이어졌다. 강동구 성내동에는 거리 곳곳에 강풀 작가의 만화 등장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지하철 5호선 강동역 인근의 노후 주택지에 조성된 ‘강풀만화거리’는 강동구의 새로운 명소가 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만화방> 전의 전시가 끝난 뒤, 조그맣게 마련된 관람객 체험 코너에서 만난 김규태(스과 13) 씨는 ‘학교를 다니며 이전에도 흥미로운 전시가 열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박물관을 직접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며 ‘공간이 넓지는 않았으나 공간 기획이 잘 돼 전시가 알찼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한 기자가 관람한 당일 지역 중, 고등학교 학생들이 방문해 직접 전시를 관람하고 만화를 읽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서울 만화방> 전은 우리대학 박물관에서 내년 4월 29일까지 계속된다.


글·사진_ 한승찬 기자 hsc7030@uos.ac.kr
주다빈 수습기자 binda96@uos.ac.kr
자료제공: 서울시립대학교박물관 김버들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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