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홍콩은 하나의 나라
중국 역시 홍콩인의 ‘애국심’에 대한 불신과 의심을 키워왔다. 중국 사람들에게 홍콩과 대륙은 하나의 나라다. 하남석 교수는 “중국 사람들에게 아편전쟁 이후 불평등 조약을 맺고, 영국에 홍콩을 할양하게 된 역사는 아픈 역사다. 중국 본토 사람들의 입장에서 홍콩 반환 사건은 서양의 제국주의 영향에 의해 뺏긴 땅을 되찾은 올바른 역사다”고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인들에게 ‘홍콩’을 ‘중국 본토’와 분리해 표현하는 것은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우리대학 중국유학생 A씨는 기자의 ‘중국, 홍콩, 대만’이라는 표현에 불편함을 토로했다. 홍콩과 중국은 한 나라인데, 마치 중국 본토와 홍콩을 다른 나라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 이외에 많은 곳에서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며, 학내에서 일어난 관련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바로, 우리대학에 붙여진 제주항공 구인광고에서 ‘대만인, 중국인 및 홍콩인 대학생’ 이라는 문구를 쓴 것이다. 이를 본 우리대학 중국인 유학생이 광고물에 ‘대만인과 홍콩인은 모두 중국인’이라고 쓰며, “홍콩은 국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 사건은 중국대사관까지 보고됐으며 중국의 언론 매체에 의해 보도됐다.
영국령 시절에도 없었던 민주주의
홍콩시위에는 다양한 사람, 다양한 집단이 참여한다. 그 중에는 ‘다시 영국령으로 돌아가겠다’라고 주장하는 집단도 극소수 있다. 일례로, 7월 1일 입법회 점거 당시 영국 식민지 시기의 홍콩기가 의사당에 걸렸고, 홍콩특별행정구와 중국의 국가 휘장 등 중요한 상징물을 훼손한 일 등이 있다. 일부 시위대의 이런 행위는 중국 사람들을 크게 자극한다. 오랜 고난의 시기를 거쳐 겨우 회복하기 시작한 중화의 민족적 자존심을 훼손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령 홍콩 또한 민주주의 기반은 취약했다. 하 교수는 홍콩시위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 시절 당시 많은 민주주의를 누리다가 중국 반환 이후에 민주주의를 빼앗겼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 싸우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영국식민지 홍콩인들의 정치적 권리는 매우 제한돼 있었으며, 당시 홍콩의 입법기관도 ‘자문기구’에 불과했다. 비교적 폭넓게 누렸던 언론의 자유와는 달리,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결사나 집회의 자유도 제한적이었다. 그 당시 헌법은 총독의 절대적 권력을 강조했으며 시민권은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 1980년대 중국과 영국이 반환 후의 헌법인 ‘기본법’을 제정하면서 비로소 사법권 독립과 대법원이 주어졌다. 그러나 반환 후에도 완전한 법치가 보장되지는 않았다. 하 교수는 “홍콩의 민주주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불완전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시위 속 중국을 향하는 혐오표현
홍콩 시위의 일부 참여 단체 중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와 혐오 발언도 종종 나온다. 하 교수는 “일부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홍콩 시위에 참여한다”며 “그들은 중국 본토 사람들을 메뚜기 떼에 비유하는 등 ‘너희와 우리는 달라’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들은 같은 중화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본토 사람들을 이등민족이라고 정의한다. 심지어 광둥어나 영어를 구사할 수 없는 사람을 시민권에서 제외하거나 중국 대륙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이 홍콩에서 기본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홍콩 시위는 민주인사들만이 진행하는 시위가 아니라 반중감정을 가진 일부 극단적인 입장의 인사들이 함께한다는 독특성이 있다. 하 교수는 “홍콩시위는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운동이 주 흐름이지만, 그것이 운동의 전부는 아니다”라며 “이 시위의 다양한 모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글_ 박은혜 기자 ogdg01@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