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영(융전 18)

대한민국의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이 찾아왔다. 텔레비전 속 뉴스에서는 고속도로 교통상황을 전달하고, 몇몇 채널에서는 추석 특선영화와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누가 봐도 설레는 명절의 풍경이다. 그런데 이런 즐거운 명절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명절이 마냥 즐겁게 느껴지진 않는 듯 하다.

나는 이번 추석에 고향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안 그래도 긴 휴일에 시간이 많이 남았고, 주변 친구들에게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몇몇 친구들은 친척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런 친구들의 경우 대개 두 종류로 나눠졌는데, 집으로 내려갈 교통수단 티켓을 구하지 못한 경우와 친척에게 잔소리를 듣는 경우였다.

고향집으로 내려가지 못한 몇몇 친구들은 내게 외로움을 호소했다. 한 친구의 경우에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뒤늦게 버스 티켓을 구해 고향 집에 내려가기도 했다. 명절을 외로이 보내는 친구들과 얘기를 해본 결과 명절의 즐거운 분위기가 이 친구들에게는 외로움 증폭제가 되어 다가오는 듯했다. 마냥 명절의 즐거운 분위기에 취해 있던 나는 명절이 즐겁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친척에게 잔소리를 듣는 친구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척들로부터 받는 잔소리가 너무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성적, 연애, 취직 등등 친구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요소들은 다양했다. 이 얘기를 듣고 나니 몇일전 SNS에서 본 잔소리 메뉴판이 생각났다. 친척들이 주로 하는 잔소리에 가격을 매겨두고 해당 잔소리를 할 경우 돈을 줘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잔소리 메뉴판은 즐거운 명절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만큼 누군가에게는 친척을 만난다는 것이 스트레스인 것이다.

고향집으로 내려가지 못한 친구와 친척에게 잔소리를 듣는 친구. 어찌 보면 이 두 친구는 하나의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가족들의 사랑’ 문제이다. 집을 내려가지 못한 친구는 가족들과의 사랑을 느끼지 못해 외로움을 느끼고, 잔소리를 듣는 친구는 과한 사랑에서 발현한 잔소리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니 말이다. 같은 문제로 다른 스트레스를 받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과거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덕에 대해 배운 기억이 있다. 너무 과해도, 너무 적어도 좋지 않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이 나는 내 친구들을 보며 생각났다. 너무 과한 사랑, 너무 부족한 사랑이 내 친구들을 스트레스 받게 했기 때문이다. 명절은 행복이 가득 차야 한다. 명절이 행복한 이유로 가족간의 사랑이 하나의 이유를 차지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명절에 가족에게 보내는 사랑도 신중해야 할 것 같다.

평소 보지 못한 가족에게는 좀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평소 너무 많은 관심을 보이던 가족에게는 조금 절제된 사랑을 표현해 주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가족관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명절을 만드는 것은 과한 사랑도, 부족한 사랑도 아닌 ‘적당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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